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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Sep 08. 2023

워킹맘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

그 날 나는 당직을 하느라 저녁 9시에 퇴근한 날이었다.


남편이 퇴근 후 아이를 하원시켜서 놀이터도 가고

걸어서 15분 거리의 동네 붕어빵 가게도 갔다가 집에 들어왔다고 카톡을 보냈다.


'어젯밤에 아이의 컨디션이 안 좋았고 무리를 시켜서는 안 되는데 괜찮으려나...

괜찮으니 갔다 왔겠지'하고 깜빡 잊어버렸다.


퇴근 후 집.


"아이를 벌써 재웠어!" 남편은 의기양양했다.


'이렇게 빨리 잘리가 없는데...문득 스친 생각이지만 잘 놀아줘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아이를 만져보니 열이 나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갑자기 열이 나는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내가 당직하는 날 애가 꼭 아픈거지...'


애먼 남편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애가 아프면 원인을 어디서든 찾게 마련인데 이번엔 남편이 타겟이다.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남편도 하루종일 일하고 애 보느라 애썼을 것이기 때문에.(사실 남편 탓도 아니지)







'그건 그렇고 내일 회사에 어떻게 이야기 하지? 반차만 쓸까? 한 3일 열 때문에 어린이집에 못 갈텐데

대체 며칠을 휴가 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적게 휴가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두뇌가 풀가동된다.


아이는 아프면서 클 수 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힘든 건 저 고민들은 나의 몫이라는 거다. 왜?


공무원이 아닌 남편은 휴가를 내기가 어려우니까.




고민 끝에 노(no)눈치 밉상 팀장한테 전화를 건다.


'저.. 애가 열이나서 하루 집에서 돌봐야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 어떡하냐(영혼없음) 어쩌고 저쩌고~ 그나저나 A만 죽어나네.'





말 한마디에 잘 꽂히는, 뒤끝 많은 나다.


민원대에 나 포함 2명이나 빠지게 되어서 A주사님 혼자 업무보면 얼마나 바쁜 지 안다.


그래도 바빠봤자 면사무소에 바쁜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고작 1~2시간 정도지.

(물론 혼자는 힘들긴 함)

가뜩이나 미안한데

말이라도 상대방 맘 편하게 해주면 좀 덧나나?

그러면서 출산율 어쩌고 저쩌고 애는 더 낳으라고?

가당치도 않다. 내 인생에 둘째는 없다.




오후에라도 가야 맘이 편하겠다싶어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 .. 지금 애가 열이 좀 떨어지기도 했고, 급한 일이 생겨서 오후에라도 등원 가능한가요?"


절박한 목소리 때문인지 등원해도 된다고 하셨다.




코가 잔뜩 나와 하얗게 말라붙은 아이의 얼굴과 몸을 씻기고 여차저차 출근과 등원 준비를 마쳤다.


근데 씻기고 나니 애가 또 열이 난다.


재보니 39도


대. 환. 장.


이대로면 못 간다.

착한 A주사님이 안 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다음 날,

연차를 하루 더 쓰고 싶었지만 밀린 일이 있어 얼굴에 철판깔고 반차라도 쓰기로 했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해서 출근했는지 모르겠다.

흰색 카니발이 왜 이른바 '아빠 차'로 유명한 지 알 것 같다.

과속에, 급정거, 잦은 차선 변경... 나는 출근길 폭주족이었다.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옆 동료와 대화도 없이

급한 일을 오전 내로 끝낼 수 있었다.


회사 가니 노(no)눈치 밉상 팀장 왈


'애는 아프면서 큰다.'




'누가 모르냐고요.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아픈 동안 심각해지지 않도록 간호하는 건 엄마의 몫이라고요.

애 아픈 게 절로 낫나요?


때마다 약 먹여야 해. 밥도 잘 먹여야 해.

평소보다 칭얼대는 애를 짜증없이 사랑으로 보듬어야 해.

컨디션 체크해가며 병원에 갈지 말지 판단하는 것도 엄마가 해.

다 나아서 크는 거 볼 때 까지 엄마 손이 얼마나 가는 지 알고 하는 말일까.'



속마음과는 다르게

언제나 그랬듯이



'네 그렇죠. 아프면 훌쩍 크죠'라고 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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