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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Sep 09. 2023

집에서 누울 수 있는 자유

나에겐 없다




주말 오후.
외출하고 돌아오면 남편은 거실 소파에 누워 잔다.

종종 있는 일이다. 운전이 그렇게 힘든가?

아까까지도 차에서 자고 와놓고선 또.
옆에서 놀고 있는 4살 짜리 아이한테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하고는
도망가고 싶다. 산책이나 할까.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나무 사이를 혼자 조용히 걸으면 너무 좋겠다.'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나 혼자 나가면 아이는 나를 찾을테고,

감기걸린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집에 그냥 있기로 한다.
컴퓨터 방으로 도망가서 글이나 쓰자.

아이 몰래
블루투스 키보드를 폰과 연결하고 메모장을 켠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엄마 어딨어~' 아이가 부른다.

거실로 소환된 나는 블루투스 키보드와 휴대폰을 그대로 들고 쓰던 걸 마저 쓴다.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글을 속사포로 내뱉는다.  
남편은 여전히 소파에 누워 잘 잔다.
'저렇게 금방 잠들다니...성격 너무 부럽네.'

삐뚤한 속마음
왜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는 걸까.
남편의 낮잠으로 나 혼자 뒤집어쓰게 된 독박 육아가
짜증나는 것일까.

육아보다 글쓰기가 더 재밌어서일까.




ㅡㅡㅡㅡㅡ



조금 자고 일어난 남편은 뾰루퉁한 나를 보고

눈치를 챈다.


'마누라가 화났구나.'


요며칠 무리한 탓에 허리 진통제를 먹었더니 잠이 자꾸 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주말에 자주 잤음. 흥)



코로나가 한창 심해서 집콕육아의 답답함이 극에 달했을 때의

어느 주말에도 남편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휴직 중이라, 일하는 남편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던 터였다.


쿨쿨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너무 답답해서
무작정 아이를 차에 태워 떠돌다가 울며 돌아온 적이 과거에도 있었다.




아니, 주말에 잠 조금 잤다고 야박하게 구는 여자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엄연한 직장인이다.

피곤한 건 마찬가지이고 무엇보다 눕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감기나 몸살로 아파도 집에선 누울 수가 없다.

아이는 내가 눕는 꼴을 못보고 계속 놀아달라 한다.


그래서 맘 편히 눕고 싶은 대로 누워 잠까지 청할 수 있는 저런 자유가

나는 너무 부럽다는 말이다.







육아도 하고 레깅스 사업체도 이끌고 있는 안다르 대표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에 관심이 없어서 화가 난 적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운전만 해줘도 만족한다고.


안다르 대표는 육아와 사업으로 몸이 2개라도 모자랄텐데 남편이 저러면 진짜 야속할 것 같고

어떻게 운전만 해주는 것에 만족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더라.

남편은 고작 운전만 해주는 것이 아니고

아내에게는 '금'과도 같은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대신 운전해 줄 때 만큼은 뒷자석에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그러니 엄마도 집에서 좀 누울 수 있게

주말 반나절은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라도 나갔다 오는 센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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