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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Mar 15. 2024

사망신고는 천천히


사망 신고가 들어왔어.
40대로 보이는 남성 분이 혼자 오셔서 신고서를 작성하시고 계셨어.
보통 고인 분 자녀들이 함께 와서 신고하는데 이번엔 아드님 혼자 오셔서 별다른 의심없이 그런가 보다 했지.
게다가 복잡한 신청란을 깔끔하게 잘 작성해주셨더라고.
손이 많이 안 가서 편했어. 그렇게 잘 끝난 줄만 알았던 그때...그 분이 다시 오셨어.


사망 신고를 취소해 달라는 거야.
담당자가 이미 처리해서 안 된다고 했지. 사망 신고 처리하는 데 약 5분. 그 시간이 지나면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돼.
옛날 같았으면 수기로 했기 때문에 업무처리에 며칠이 걸렸겠지만 지금은 전산으로 즉시 처리가 되어버리니까 물릴 수도 없는 거지.
담당자 재량의 문제가 아니었어. 이미 법원 등 여러 기관에 실시간으로 연계되어 버린 후였어.
그러니 알겠다고 하고 돌아가셨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지. 어머님과 같이 오셨네. 이유를 살펴보니 사망 신고를 너무 빨리 해서 재산 상에 문제가 좀 있나보더라고.
장례비도 치러야 하고 여러가지로 현금이 필요해서 사망자의 계좌에 있는 돈을 빼야 하는데 이미 사망 처리 된 사람의 계좌는 묶여버려서 출금하려면 자식들의 인감증명서 모두가 필요했나봐.
번거로워진거지. 그래서 사망 신고를 물러 달라는 거였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신고된 사망자가 살아 돌아오지 않은 이상 복구할 수가 없다고 했지.

사정하시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셨어. 아들이 진정시키려고 밖으로 모시고 나가셨다가 얼마 후 이어진 3차 방문. 이번엔 동네 마을 남자 어르신 분들을 모시고 오셨어.
아까 했던 이야기 반복하며, 우기고 사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려드리니 그제서야 다시 오지 않으셨어.

팀원들이 나와서 어르신을 응대하면서 모두가 안타까워했어.
어르신이 우시면서
'아이고. 이 모자란 애가 말도 안하고 혼자 신고를 해 가지고...'
'엄마.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나는 돈 때문에 자식 탓을 하는 어르신을 보니 더 마음이 아팠어. 아들은 죄인 마냥 엄마한테 잘못을 빌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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