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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D Aug 25. 2019

꼰대 사용 설명서

2017년 4월, 군대를 갓 제대하고 복학한 나는 당시 새내기였던 17학번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야 14학번 ooo선배, 이번에 총엠 온다던데?"

"아니 ㅋㅋㅋㅋ 14학번이 대체 총엠을 왜 온다는 거냐? 무슨 꼰대 짓을 할려고?"

"아 그러니까 ㅋㅋㅋㅋㅋ 좀 알아서 빠지지."

낄끼빠빠하지 못한 대화 속 '14학번 ooo선배'는 나와 꽤 친한 후배였다. 지금까지도 차마 그 친구에게 이 대화를 전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 짧은 대화를 엿듣고 나서 두 가지 가슴 아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어리지는 못해도 젊다고 믿었던 내가 이제 꼰대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는 점, 둘째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연장자는 너무나도 쉽게 '꼰대'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며 사회로의 진출을 앞둔, 혹은 이미 사회 생활을 시작한 우리가 꼰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윗세대 꼰대, 혹은 보다 젊은 young 꼰대와의 갈등을 이겨내야 함과 동시에, 아랫세대로부터 꼰대라고 불리지 않기 위해 그들의 변화를 주목하고, 이해해야 한다. 꼰대와의 갈등이 싫고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모든 밀레니얼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나 때는 말이야, 마!" 만들어진 꼰대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 역)는 백발이 서린 노인이다. 젊은 시절의 그가 어땠을지는 몰라도, 지금 그의 모습은 소통이 불가능한 고집불통 늙은이다. 가족들은 그를 쏙 빼놓고 가족여행을 떠나고, 누구도 그와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덕수가 소리치며 고집 피울 때마다 그의 과거를 보여준다. 그가 왜 "가수는 남진이지!"라며 별 것도 아닌 일로 다른 사람과 다툼을 벌이는지, 장사도 잘 되지 않는, 이제는 없애도 될 '꽃분이네'를 바락바락 우겨가며 지키려고 하는지, 그의 과거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 중간 덕수의 아내 영자(김윤진 역)는 덕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구요!"


이 한 마디에 덕수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전쟁통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살아온 그.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떠나고, 자신과 가족의 삶의 기반이었던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선장이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접고 전쟁 중인 베트남으로 떠나 기술 근로자로 일을 시작한다. 독일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그의 삶은 가족을 위한 희생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기 내 팔자라꼬! 내 팔자가 그런데 우짜란 말이고!"라고 울부짖는 덕수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 주변 사람들을 이해할 여유 따위는 없는 삶이었다는 것을, 덕수의 그런 '팔자'가 지금의 꼰대를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기찻길 위에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영호(설경구 역)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박하사탕. 박하사탕은 기차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영호가 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무엇이 이 남자를 이토록 울부짖게 하는지 보여준다. 꽃을 좋아하고 손이 따뜻했던, 순수했던 청년 영호는 군대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되면서, 사람을 고문하는 경찰이 되면서, 사업에 실패하고 사람에게 처절하게 배신당하면서 순수한 자신을 잃고 만다.


"내가 혼자 죽기 억울해서 내 인생 망쳐 놓은 놈 중에 딱 한 명, 딱 한 명 죽이려니깐 내 인생 조져놓은 놈이 너무 많아서 그 한 명을 못 고르겠더라."


위 대사를 통해 영호를 '망쳐 놓은' 것이 어느 한 개인이 아님을, 그를 괴롭힌 수많은 인생 풍파를 느낄 수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앞에 개인은 항상 약자일 뿐이다.


국제시장의 덕수도, 박하사탕의 영호도 처음부터 무뚝뚝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자기 고집만 강한 꼰대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툴게 호감을 표현하고, 강가에 함께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던 순수한 사람이었다. 단지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 덕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팔자'가 가혹했기에 변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나때는 말이야~'식의 윗세대 꼰대들을 옹호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우리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유가 어찌 되었건 우리는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꼰대들의 라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며, 그들이 처음부터 꼰대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조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대부분의 꼰대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시대 감정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박하사탕의 영호처럼 순수했던 자신을 찾기 위해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임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인상깊게 읽은 책 속의 문장으로 답을 대신한다.


"성격 나쁜 동료와 일하는 법 : 도망가세요 답이 없습니다." - <마케터의 일> 중 -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려면. 휘태커에게 배우는 지혜

글머리에 등장한'14학번 ooo 선배'를 기억하자.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꼰대 취급 당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런 우리가 보고 배울만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영화 <인턴>의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역)'다. 그는 이미 수십 년의 직장생활을 경험한 후 은퇴한 70세 노인이다. 그는 은퇴 후의 삶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30세 열정 넘치는 CEO가 운영하는 회사 TPO에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일을 시작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 70세 노인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세 가지다. 그는 먼저 행동하고, 묵묵히 듣고 기다리며, 지적이 아닌 조언을 그리고 조언보다는 마음으로 공감한다.


여러분이 70살 먹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생각해보자. 삶이 지루하다고 해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에, 그것도 인턴 직에 지원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40살이나 어린 CEO가 쓰레기 더미 책상을 골치 아파 한다는 걸 먼저 깨닫고 일찍 출근해서 정리할 수 있을까? CEO의 운전 기사가 술에 취한 채 운전하려는 것을 보고 그를 '타일러서' 보낸 후에 자신이 대신 운전할 수 있을까? 26년 밖에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가 휘태커라면 이 중 단 하나의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우받아 마땅한 연장자니까. 하지만 휘태커는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생색조차 내지 않고 이 모든 일을 행한다. 어른이 꼰대가 되는 많은 경우는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지시만 내리는 이중잣대를 당연한 듯이 적용하는 때다. 먼저 이해하고 행동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휘태커가 CEO 줄스(앤 해서웨이 역)의 남편이 바람피는 것을 보고도 줄스가 먼저 이야기를 건넬 때까지 기다리는 휘태커의 태도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줄스가 휘태커를 찾아와 속을 털어놓으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는 그제서야 손수건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손수건은 상대방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이라죠."


줄스가 남편의 외도를 막기 위해 회사의 경영을 포기하려 할 때도 그는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임을 느끼면서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 그녀가 스스로 깨닫기를 마지막까지 기다린다. 결국 그녀의 남편은 자신을 위해 회사를 포기하려는 아내의 진심을 보고 돌아오게 되고 영화는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는 상대방이 처한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그들이 조언을 구할 때까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상대방이 원치 않을 때에 행하는 충고와 조언은 지적과 오지랖이란 이름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슬퍼하고 손수건을 건네며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힘을 얻고 마음을 열며 그를 베스트 프렌드이자 어른으로 대우한다.


우리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지난 4월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의 발언이 글로벌 꼰대 논쟁에 불을 지폈다.


"996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많은 기업과 직원들은 996을 행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젊어서 996을 안 하면 언제 하겠나."


996이란 중국 IT업계의 신조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뜻이다. 장시간 근로 탓에 건강이 악화되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며 근로 조건 개선을 요청하던 젊은 엔지니어들은 이 발언에 분개했고 마윈도 어쩔 수 없는 꼰대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발언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이자 '마 선생님'으로 불렸던 마윈 회장은 한 순간에 글로벌 꼰대 논쟁을 불러 일으킨 꼰대의 대표가 되어 버렸다.


이 사례는 기업과 조직에 헌신하고 기업의 성과를 자신의 성공으로 인식하던 기존 세대의 가치관과 개인의 안정, 건강, 행복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이전에 어떠한 훌륭한 행적을 보였던 그것은 중요치 않다. 다음 세대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은 한 순간에 사람을 영웅에서 꼰대로 만든다.


시간은 흐르고, 세대의 가치관은 변하며 지금은 새로운 세대인 우리들 역시 다음 세대를 이해하기 힘든 시기가 올 것이다. 우리 안에는 노인이 있다. 그 노인이 어른으로 대우받을지, 꼰대가 되어 다음 세대와 갈등을 빚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밀레니얼 세대인 우리가 지금부터 윗 세대를 이해하는 법과 아랫 세대와 소통하는 법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잊지 말자. 우리 모두는 꼰대가 될 지, 존경받는 어른이 될 지 모르는 늙은이를 품고 살아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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