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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D Aug 24. 2019

아프니까 청춘일까?

영화 <거인>, <수성못>, <소공녀>로 본 밀레니얼 세대들의 현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진짜로 아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이 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는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성숙해지면 가난, 실패 등 아픔에서 벗어날 것처럼 청춘을 포장한다. 마치 20대 때의 실패와 그에 따른 불행은 당연한 것 마냥.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발전의 시작에 서 있던 X세대에게 허락된 ‘딛을 수 있는’ 고난과 역경이었을 뿐일지 모른다. 


힘겨운 청춘을 겪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X세대가 말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반기를 든다.  우리가 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풍자하며, 이것이 정말 그 이전처럼 ‘딛을 수 있는’, 아니 애초에 ‘견딜 수는 있는’ 아픔인 것인지 사회에게 반문을 던진다. 아픔은 곧 청춘이라는 공식, 애초에 답도 없는 그 공식 속에서 희망도 없는 뻔한 위로는 더 이상 건네지 않는다. 




청춘, 그 삶의 민낯


영화 <거인> 스틸컷

<거인>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던져진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재는 혼자 책임져야 하고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영재의 말처럼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고작 십 대 소년이 감내하기엔 너무 큰 아픔이고 시련이다. 영화는 청춘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지만, 정작 세상의 가장 최전선에 놓여있는 청춘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보다 불쌍한 사람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어딜 가던 네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마”

세상이 영재에게 쥐여준 감당할 수 없는 짐은 너무나도 무겁고, 죄책감을 덜기 위한 말의 무게는 참 가볍다. 그럼 도대체, 세상에 버려진 영재들은 누굴 탓하라는 걸까. 



청춘의 황금기로 여겨지는 20대들의 삶 역시 녹록지 않다. <수성못>은 다양한 20대들의 삶을 보여준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편입준비생 희정, 그와 대비되게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의욕 없이 사는 히키코모리 희준과, 심지어 자살클럽의 회장인 영목까지. 희정은 유일하게 X세대가 말하는 청춘에 부합하는 인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희정에게 결과적으로 주어진 것은 편입 낙방 소식이 다였다. 그 앞에서 희정은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요.”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사회 속에서, 우리 밀레니얼 세대들은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영화 <수성못> 스틸컷

겉으로는 우아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 미친 듯이 발을 젓고 있는 수성못의 오리배. 끝없이 발버둥 쳐도 수성못을 벗어날 수 없는 오리배는, 마치 우리 청춘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영화 <소공녀> 스틸컷

마찬가지로 <소공녀>는 따뜻한 색감과 그저 슬프지만은 않은 이야기 전개로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지만 어딘가 모를 찝찝함을 안겨준다. 크레딧이 내려가고 영화를 곰곰이 다시 돌이켜 본 관객들은 미소에게서 20대 청춘들의 팍팍한 삶을 엿볼 수 있음에 끝내는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집은 없어도 취향은 있다고 말하는 미소를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최소한의 삶의 영위 공간조차 항상 보장받을 수는 없는 위태로운 청년들의 모습이 마냥 남 일 같지는 않기 때문이리라. 




밀레니얼 세대들이 말하는 청춘 영화는  


<거인>은 영재와 마찬가지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그룹홈에서 자란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성장영화’의 진부한 클리셰를 버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대개 성장영화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시선으로부터 타자화된다. 세상이 이유 없이 던져준 시련들을 아이가 그저 감내하고, 묵묵히 견뎌내는 것. 그것들은 모두 어른들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청춘들을 다룬 이야기를 하면서도, 진짜 청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픈 걸 견뎌내면, 그때는 비록 힘들지라도 곧 괜찮아질 거야’ 하는 안일한 생각을 그리는 이야기들은 이제 너무나도 진부하고, 더 이상 공감받을 수 없다.

 

<수성못> 또한 유지영 감독이 자신의 20대를 회상하며 쓴 이야기이다. 그 또한 20대 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또 희정처럼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30대가 된 지금, 그는 굳이 그렇게 치열하게, 빠르게 달리기만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좀 게을러도, 늦어도 좋으니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조건‘노-오-력’만 바라는 사회, 마치 아픔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직접 겪어본 밀레니얼 세대만이 꼭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역시 희망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영화에 담고자 했다고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 세상의 정답에 부합하는 삶만이 성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의 진정한 청춘 영화는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 의해 타자화되어 먼발치에서 던지는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직접 겪고 부딪히고 있는 이들이 말할 수 있는 경험담이다. 



영화 <거인> 스틸컷


정말로, 아프니까 청춘일까? 청춘이 아프다는 것은 병든 사회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청춘들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플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청춘 영화가 정말 원래 뜻 그대로의 청춘 영화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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