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 Jackson Hole.
미국 와이오밍 주에 터를 잡은 평화로운 골짜기. 침묵이 가득한 이 멋진 휴양지에서 매년 8월마다 전 세계 경제수장들과 이름난 경제학자들이 모여 경제 현안과 정책을 논의한다. 그야말로 잭슨홀은 경제인들의 저수지다.
이곳에서 통화 정책을 결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역대 경제 수장들은 이곳에서 중요한 발언과 힌트를 내비치곤 했다.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14대 연준 의장)가 그랬고,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3대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그랬다. 이날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 기조연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때문에 평화롭고 조용한 잭슨 홀을 뉴욕에서, 런던에서, 도쿄에서, 서울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생중계했다. 어떤 말을 해줄까? 아프게 채찍을 맞고, 박살 난 시장을 위로해 줄까? 위로한다면 어느 수준으로 위로를 해줄까?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이겠다고 말하겠지? 소망과 희망이 들끓었고 그 기대를 반영해 주가는 슬금슬금 오르고 있었다.
파월이 말을 시작했다.
“오늘 저는 메시지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전달할 겁니다.”, “물가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면 훨씬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교훈은 중앙은행이 낮은 인플레이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교훈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왔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We must keep at it until the job is done).” 그리고 끝. 8분 50초 분량. 관대함도 다정함도 없는 눈. 그저 싸늘한 눈빛의 제롬 파월은 그대로 서류를 움켜쥐고 퇴장했다.
그건 확인사살이었다.
변호사 특유의 섬세하고 중립적인 말을 해줬던 그가 단호하게 입장을 내비쳤다. 희망과 위로의 말을 해줄 거라는 당시 기대는 글러먹은 생각이었다. 그는 역할에 맞는 가면을 기꺼이 썼고 물가가 죽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시장이 부서지는 것보다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줬다. 시장에 날린 원투펀치에 희망과 시장은 다시 꺾였다. 한번 부서진 시장을 두 번이나 산산조각 내다니. 그가 말랑말랑한 비둘기라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그의 매정한 말과 행동에 툴툴거렸다.
훗날 밝혀지기를,
파월 의장은 원래 다른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잭슨 홀 미팅 연설 직전에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원래 써뒀던 연설문을 폐기하고 새롭게 짧은 연설문을 썼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주목받았다.
“We must keep at it”. 그 말을 듣고 언론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이름까지 들먹였다. 투자자들 간 떨어지게 만드는 이름. 모두가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는 이름. 위대한 별자리로 추앙받는 이름. 『keeping at it』 이라는 자서전을 남긴 남자. 폴 볼커(Paul Vol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