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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Oct 28. 2024

토지.2권

* 책 속 내용 일부 포함되어 있음

* 1부 2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확실히 종이책을 읽으니까 읽기가 편하다. 아직 2권 밖에 안됐는데 뭔가 터지기 직전인 것 같아 불안하다. 귀녀는 물론 수동이도 약간 불안불안하고 강포수도 칠성이도 아슬아슬. 일촉즉발. 왜 내가 조마조마한 건지. 아무래도 최 참판 댁 네는 이제 망할 건가 보다.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대화인데. 대화를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이야기하면서 숨기고 싶은 부분을 꼭꼭 숨기면, 결국 오해만 쌓이다 끝나겠지. 상대방의 마음은 짐작하는 게 아니고 직접 들어야 하는데. 진실을 마주하기 무섭더라도 피할 게 아니라 마주 보아야 하는데.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는 건 어른이 돼서야 할 수 있는 걸까. 어른이 되어서도 할 수 없는 걸까.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피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상황이든, 마음이든.


 진짜 이렇게 전개가 빠르게 진행될 줄 몰랐다. 그래도 귀녀가 계획했던 일이 어느 정도는 진행이 되고 속고 속이는 그런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다. 이렇게 방해된다고 바로 죽였다가 바로 걸린다고?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았던 윤씨 부인이지만 역시 최씨 가문을 이끌어가는 사람답게 예리하다. 모두가 끔뻑 속아넘어가고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었는데 최치수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니. 아니 그렇다면 서희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가짜 아이를 핑계로 1부는 끌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어 내려갔었는데 참지 못하고 자꾸 다음 날 분량까지 슬금슬금 읽게 된다. 이제 보니 이거 완전 막장인데. 어쩌지. 원래 이런 책이었나. 


 용이와 월선의 사랑이 일단락되고, 용이와 강청댁은 영영 남이 된 듯하고,  최치수가 살해당하고, 귀녀가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고, 함안댁은 자결하고.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과연 그런 걸까. 강포수는 어디로 갔지? 주막에서 술에 곯아떨어져서 잠들었는데 그리고 귀녀가 그 난리가 나서 잡혀갈 때까지 강포수는 어디에 있는 건지. 내가 놓친 건가 싶어서 뒷부분을 다시 살펴봤는데도 없다. 강포수 어디 간 거지.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이는 용이다. 책임감과 사랑 사이. 강청댁을 사랑하지 않지만 오로지 책임감으로 그녀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혹시 큰일을 낼까 봐 일말의 걱정과 책임감으로 그녀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강청댁이 바라던 대로 그녀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용이를 꼭 닮은 아들딸이 주렁주렁 있었다면, 그럼 책임감이 강한 용이는 아들딸도, 그리고 그 아들딸의 어미도 애틋하게 아껴주지 않았을까. 그게 사랑이 아니었어도. 사랑은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둔다고 사랑이 혼자서 커지는 게 아니라 아끼고 애정을 주고 키워야 내 마음속에서 사랑의 크기가 커지는 것 같다. 지나간 사랑들을 모두 똑같은 크기로 사랑하는 건 아니지. 결국은 내가 키워가는 사랑만 남고 커지는 게 아닐까. 강청댁도 아이가 있고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용이도 그럭저럭 마음을 키워나가고 알콩달콩 좋았을 텐데. 




46. 죄를 지었다면 모를까 사람을 보고 피해가는 것은 오물을 보고 피해가는 것처럼 그 이상의 모욕이 없다. 

나를 피하는 눈빛과 태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알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피하면서 상대방이 모르겠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도 나도 모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최대한 서로 모른 척한다. 그것은 모욕이기 때문이었을까.


74. 그는 백성들을 우중으로 보았었고 배우기를 잘못한 권력자들이 배부른 돼지라면 우매한 백성들은 배고픈 이리라 하였다. 체모 잃은 욕심, 권력을 휘두르며 권태로운 삶을 즐기려는 수탈자에게 우중들은 쓰기 좋은 도구요, 우중이 만일 깨우쳤다고 보면 무지스런 파괴의 독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계기가 와서 이 상호간의 자리가 뒤바뀌었을 때 소위 그것을 혁명이라 일컫기는 하나 정신적 영역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는 악순환의 되풀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깨우쳤는데도 무지스럽다니. 어리석다는 건 바뀌지 않는 부분일까. 매번 한 쪽이 어리석어 계속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걸까.


125. 오로지 소망을 들어달라는 다짐만이 간절했을 뿐이다. 신은 이 여자에게는 악도 선도 아니었다. 오로지 소망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 영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한 일이었을뿐이다. 

신에게 선악을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지. 그렇다면 과연 신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168. 왜 쫓지 않았는지, 치수는 그러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소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증오, 보복,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사실을 구명하고자 하였고 구명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또 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갈등이 차라리 풀리지 않았는다면 모른척할 수 없지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으면, 내가 행동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고 이야기하고 끝날 수 있다면. 


194. 그러나 오십몇억 년을 기다리는 동안 미륵불께서는 곧장 구경만 하실 모양이다. 그렇다면 한결같이 세상은 악역과 선역이 있어 늘 정해진 대본대로 움직이는 무대이며 인간은 광대인지 모를 일이다.

너무 무기력한 말 아닌가. 그저 광대라니. 나는 내 상황을 어떻게든 나아지게 만들려고 이렇게 발버둥 쳤는데. 이 모든 게 정해져 있었던 거라고. 나의 의지도 이미 대본에 있었던 거라고. 그러니 좋아할 필요도, 화낼 필요도 없어.


260. 제 머리를 와둑와둑 뜯으며 울 적에 용이는 강청댁 옆에 와서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아니 용이도 참. 달래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옆에 와서 서있는담. 그게 책임감인가. 난 잘 모르겠다. 외면할 거면 아예 확실히 외면하던가. 애매하다.


298. 양반의 체통도 소중하기야 하겠으나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닌 터인데

그래. 그런 거 지키자고 태어난 건 아닐 텐데.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꼬.


373. 굶주리고 헐벗어야 하는 흉년이 들지 않는 한, 수탈이 자심하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은 농민들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반네 일은 양반네 일이지. 


404. 거짓으로라도, 아픔 위에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라도 치수에게는 어머니였어야 했던 자기 자신을 깨달은 것이다. 

항상 너무 늦게 깨닫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엄마도 처음이야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처음이라 서툴겠지만 그게 아이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똑같은 사람으로 아이보다 몇십 년 더 산 어른이라면 좀 더 깊게 고민하고 행동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지. 처음이라는 말로 도망가서는 안된다. 윤씨 부인도  너무 늦게 자식이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 결국 산산 조각이 나버렸다. 처음이라고 산산조각이 안날 수 없으리라.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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