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EP04. 내 집 마련과 메리드블루
강과 미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는 내 집 마련과 결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개인적인 사정과 기타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지금 집을 구하는 것이 가장 시기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거주하는 집의 계약은 9월까지지만, 대출을 받을 자격이 될 때 미리 집을 구해놓자는 계획으로, 함께 부동산 발품을 팔게 되었다.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내내 극심한 우울에 시달렸다. 당연하게도 좋은 집은 비쌌고, 허름한 집은 조금 쌌는데, 그 모든 집들은 대출을 극한으로 끌어와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한민국에 대출을 끼지 않고 집을 바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냐만은, 생애 최초의 내 집 마련하기란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외풍이 세서 보일러를 켜도 따뜻해지지 않는 작디작은 전셋집에서 전전하고 있는데, 나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집을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런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것은 안정감 때문이었다. 불안정한 제주에서의 삶. 집이 없는 나, 직업이 없는 나,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나, 매년 공방 연세와 집 연세를 내야 하는 나. 이것들 중 어찌 보면 '집'이라는 것은 내게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항상 집에 가고 싶다. 불이 다 꺼진 아늑한 집에 누워 있을 때에도 나는 집에 가고 싶다. 이제까지 어디에 살더라도, 이상하게 내가 돌아갈 집은 없다고 느껴왔다. 특히나 힘든 일이 생기거나 우울감이 심해지면 더더욱 돌아갈 집이 없다고 느끼던 나였다. 내가 가고 싶은 집은 청주에도, 제주에도, 엄마가 계신 울산에도 없었다. 이방인처럼 붕 떠있는 삶이 늘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만약 내 집이 생긴다면, 나와 함께 언제까지고 같이 살 사람이 생긴다면, 조금은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제주시의 집들은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들은 나이가 30년에 달하는 구축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가격이 조금 싼 대신 인테리어를 새로 해야 했다. 게다가 임대가 아닌 매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집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태도 고려해야 했다. 오래된 집은 언제 수도배관이 터질지,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위치도 좋고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곳도 있었는데, 여기는 오피스텔로 가격이 비쌌고 대출도 나오지 않았다. 주택은 더욱 비싸서 차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 봤을 때, 조금 위치가 멀더라도 가격이 합리적인 신축 아파트로 가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외도'라고 하는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마을로 가 보았다. 한창 몸집을 불려 가는 지역으로, 신혼부부들이 부영아파트 등 대단지 아파트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거기서 외톨이 아파트이지만 가격이 합리적인 신축 아파트 하나를 발견했다. 1층에는 편의점이 있고, 바로 앞에 공원과 식당도 많아 인프라가 마음에 들었다. 집 내부를 살펴보니, 베란다가 없다는 점 빼고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 화장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거실 창문과 쏟아지는 햇살. 깨끗한 마감 상태와 나무 합판이 아닌 콘크리트 벽. 건설업에 종사하는 강은 아주 꼼꼼하게 집을 살폈다. 그가 합격시켰을 정도이니 상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우리는 다른 집도 더 살펴본 다음 여기만 한 집이 없다고 판단하고 계약을 진행했다.
전, 월세만 살아온 나에게 집 매매라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것이었다. 계약서에서 살펴볼 것도 너무나 많았고, 돈계산이 젬병인 내게 은행 대출은 정말이지 머리가 핑핑 도는 과정이었다. 대출을 한도까지 싹싹 끌어서 신청하고, 40년 납으로 결정하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40년 납이라니. 한 달에 백만 원 꼴로 원금과 이자가 빠져나가게 된다. 그건 강이 갚을 거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생전 처음 인감도장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타원형 막도장을 버리고 동그랗고 큰 나무 도장을 팠다. 주민센터와 은행을 내 집처럼 들락날락한 결과, 드디어 대출 신청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잔금을 치르는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나는 이게 혹시 사기는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매매가 처음이다 보니 긴장한 탓일 것이다. 심지어 잔금을 치르고 나서도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어 실제 입주는 9월에나 할 수 있어서 더더욱 불안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아는 게 없다 보니 그만큼 불안한 상상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강이 옆에서 부단히 부동산 공부를 하고 나에게 가르쳐준 덕분에 어찌어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동안 한계까지 예민해진 탓에 강과 다툼도 잦았고, 그만큼 두려움과 우울감에도 많이 시달려왔지만 어떻게든 지나갔다. 모든 게 잘 되길. 생애 첫 집에서 잘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