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 사람, 그리고 자연과 함께한 여행 후기
나는 24년 1월부터 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6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결심한 것이 바로 책 쓰기였다.
그중 책 쓰기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당진으로 북투어를 다녀왔다. 6/14일 금요일 아침, 북투어 출발을 앞두고 설렘 반, 무거움 반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함께 수업 듣는 분들과 처음 떠나는 여행에 설렘이 가득했다. 반면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와 아이 없이 떠나는 첫 여행이라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왕 가는 거 내 가슴에, 지쳐있는 내 영혼에 좋은 것을 전해주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아내도 가서 동기분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고 오라며 웃으며 말해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녀온 지금, 나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다시 당진에 방문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만큼 좋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북 투어 후기는 느꼈던 내 마음과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려고 한다. 시간적, 공간적 이동에 따라 적어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2박 3일간,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떤 감정과 마음이 들었는지 적어보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 당진 북 투어는 <내 삶을 돌아보고, 복직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자연, 맛있는 음식, 서로를 위하는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시선과 싹트는 작은 마음. 이러한 키워드들이 북 투어 내내 나와 함께해 주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 벗어나 당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났다. 물론 내가 거주하는 곳 어디에서나 자연을 만나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익숙한 곳에서 잠시 떨어져 만나는 자연, 바람과 하늘, 펼쳐진 풍경은 새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의미 없이 채우려는 내 마음이 아니라 비워내고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느껴보고자 하는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산과 바다, 넓게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군데군데 피어오른 꽃들. 눈길을 돌릴 때마다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있다. 박노해 시인이 쓴 글로 알고 있다.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다. 우리는 탐방하며 그 길을 스쳐 지나가지만, 자리에 머문 꽃들은 그 자리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꽃이 내뿜는 다양한 고운 빛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의 존재, 피어남. 그 자체를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콩국수를 나는 싫어했다. 밍밍한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평양냉면을 한번 먹어본 뒤 다시는 먹지 않았다. 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지? 그런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로 ‘음식’의 진정한 맛이다. 나에게 음식은 섭취해서 소화하고 몸의 영양분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인스턴트 음식과 대충 때우는 식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음식에 진심인 그, 나와 동년배인 우리 매제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에 페어링 할 술까지 좋아하는 그가 나는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음식의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원하고 진한 콩국수에 약간의 소금을 넣어 한입 맛본다. 맛있다. 새로운 고소함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살얼음과 뒤섞인 진한 콩물을 들이켠다. 참으로 맛있다. 왜 몰랐을까? 이 맛을. 나는 콩국수가 좋아졌다.
이뿐 아니다. 회는 어떤가.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먹는 회란. 분명 이전에도 회를 먹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분명 달랐다. 회의 신선도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이 열려있고 함께하는 분들과 우린 지금 여기 있어. 그리고 맛있는 회를 먹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회를 먹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본격적인 회가 나오기도 전에 신선한 해산물과 미역국 등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배가 부르지만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좌쌈우술(?) 외치며 맛난 회를 먹었다. 자연이 준 바다의 노을, 공감러분들이 전해준 따스한 말, 이 모두가 내게 선물처럼 느껴졌다.
당진 면천에서 연꽃을 바라보며, 그리고 고흐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을 바라보며 옛사랑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나에게 수많은 엽서와 그림을 선물해 줬었다. 그녀의 방안에는 캔버스들이 넘쳐났다. 나에게 준 그림 선물 중 아몬드 나무가 있었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기도 했다. 나는 미술관에서 그 그림에 꽤 오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짧은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문득 고마워졌다. 그러면서 아주 빠르게 그녀와의 추억이 내 안을 훑고 지나갔다. 북촌에서의 데이트, 첫 편지와 그림, 단풍잎에 써준 글귀, 코팅된 그것들을 선물해 주며 수줍어하던 그녀의 모습.
수국과 연꽃을 좋아하던 그녀가 생각난다. 연꽃은 6월이라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않고 수줍게 잎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듯했다.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연꽃잎. 그녀와 나 사이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직 피지 못한 연꽃처럼 우리의 미숙했던 사랑은 비록 미완성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웠던 것은 아닐까?
신리성지에서 남긴 사진들은 모두 작품이었다. 내 생에 어디에서도 이렇게 사진을 남겨본 적 없었다. 무더웠지만 하늘과 어우러진 낮은 건물들의 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찍으면 작품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미처 몰랐던 천주교의 역사를 알게 되고 자신이 믿는, 오직 그것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 내놓을 용기를 배웠다. 자신의 삶의 신념은 아주 작은 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감자꽃님의 그림책 오리건 이야기를 들으며 뭉클했다. 밤이 되었고 흘러나오는 라디오 속 노래와 어우러져 이야기에 더욱 몰입했다. 앞으로 그림책을 더 자주 찾아볼 것 같다. 빡빡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더 많이 그림책과 이야기를 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러 분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통기타와 함께한 시간. 우리는 노래 속으로,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며 몰입했다. 다들 가수인 듯하다. 노래를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시 낭독 시간이 있었다.
나는 톨스토이, 박노해 시인 중 자기 해방, 고통의 극복을 위한 더 큰 존재 인식과 관련된 시를 낭독했다.
책 쓰기 사부님은 한용운의 ‘복종’이란 시를 낭독해 주셨다.
1,100년이 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그 시를 함께 만끽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나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라는 문장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자유가 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있다.
이 시가 내게는 그랬다.
아마도 추측해 보건대 역설적으로 ‘복종’은 저 대상과 내가 하나 되고, 진정한 자기로, 즉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여길 수 있을 때 그때 느끼고자 하는 복잡한 어떠한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잘 모르겠다.
책 쓰기 주제, 마흔에 쓰고 싶은 것. 바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더 와닿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를 접하고 낭독해 볼 예정이다.
책 쓰기 수업을 하면서 인문학과 예술, 깊은 내면의 목소리 등의 단어를 만났다. 비즈니스, IT라는 삭막하고 딱딱한 삶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번 북 투어를 통해 나는 깊게, 고요하게 숨 쉬는 법,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자연, 그리고 고요함은 항상 곁에, 아니 내 안에 있었다.
동기분들 한 분 한 분과 더 많은 따스한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어 감사했다. 삶은 힘들 것이고 앞으로도 불확실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주 힘이 들 때 우리의 추억 사진을 꺼내어 들춰보며 다시금 내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여행 전 혼자만 적어두었던
박노해 시인의 짧은 문구를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