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 빠지기 장인들의 만남
내 맘처럼
최종득
교실에서 강낭콩을 키운다.
내 강낭콩 화분을
영주 화분 옆에 뒀다.
조금씩 조금씩
줄기가 뻗더니
영주 거랑 내 거랑
서로 엉켰다.
이대로
칭칭 엉켜 있으면
참 좋겠다.
국어활동 교과서에 재미난 시가 나왔다. 시에서 말하는 친구의 마음을 짐작해 보자는 문제에 대한 답을 아이들이 교과서에 열심히 쓰고 있을 때, 곁에 다가가서 무어라 쓰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랑'
'좋아하는'
'짝사랑이다'
'좋아하는 마음'
'뚜뚜루뚜~~~♬'
발표 시간이 되자, 과연 이 시에 드러난 마음을 짝사랑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했다.
'난 네가 좋아!',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 이렇게 공개 고백을 못하고, 강낭콩 화분만 슬쩍 옆에 두었으니 짝사랑이 확실하다는 의견.
시 어디에도 강낭콩 화분을 '몰래', '슬쩍' 둔 것이라는 표현은 없으니까 짝사랑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반론.
만약 시에 등장한 영주 역시 그를 좋아하고 있다면, 이건 서로 좋아하는 게 되니까 짝사랑이 아니라 쌍방이라는 새로운 가설.
점점 샛길로 빠지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와중에, 한 아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선생님, 그런데 있잖아요.
영주 거랑 내 거랑 얽히라고 옆에 뒀는데
만약에 영주 말고 딴 애랑 얽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혜성처럼 등장한 '내 맘처럼' 번외 편 '삼각관계'에 아이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샛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고, 온 교실이 쫑알쫑알 소리로 가득 찼다.
막장 드라마다.
막장 드라만 본 적 있니?
요즘은 사각관계가 기본인데
난 일곱 살 때 여자친구 있었다.
너는 살면서 고백받아본 적 있니?
2반 누가 우리 반 누구를 좋아한다던데.
우리가 과학 시간에 키우는 게 강낭콩 맞니?
나도 저 샛길 빠지기 장인들의 티키타카 대열에 동참해서 한바탕 수다를 즐기고 싶다. 샛길 빠지기라면 나도 완전 자신 있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제지해야만 하는 일이 내가 맡은 역할이니까, 나는 다음 진도인 '할아버지의 보청기'로 넘어가야만 한다.
허나, '할아버지의 보청기'는 이미 열한 살 어린이들의 가슴에 활활 불붙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덮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할아버지의 보청기'는 좋은 이야기다.)
아이들이 수다를 좀 더 즐기도록 두었다.
격앙된 말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리면서, 언젠가 동시 읽기 연수에서 소개받았던 ppt 자료를 클라우드에서 찾았다.
동시의 비밀을 재빨리 눈치챈 어린이들은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자꾸 눈을 마주친다.
비밀을 소리 내어 낭송하면서, 꺄르꺄르꺄르륵 웃음소리가 교실 한가득.
비
밀
정유경
동네에선 알아주는 싸움 대장
수업 시간엔 못 말리는 수다쟁이
동수 장난이 하도 심해 혀 내두른 아이들도
수십 명은 되지, 아마?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그런 동수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자애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참 한심해.
좋아할 남자아이가 그리도 없나?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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