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2학기, 인턴으로 4년 간의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날이 코 앞으로 다가오니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뭘 해야 하지?" 방향을 잃고 우두커니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기분에 어디가 되었든 뒤로 도망치고 싶었다.
목적 없이 살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내 분명한 목표는 마케터였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회며, 공모전이며, 프로젝트며 나름 바쁘게 살았다. 점점 내 목표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오히려 '목적'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정말로 마케팅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이미 발을 들여놓았으니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물장구를 친 것인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형용하기도 어려운 심경에 잠시 나를 내려놓아 버리고 싶었다.
몰입과 환기. 나의 모든 인생 사이클은 '몰입과 환기'로 축약된다. 고등학교 시절은 대입을 위해 달려와서 대학교 1학년 때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했다. 그 흔한 취미 동아리도 참여하지 않았고 동기와의 접점도 드물었다. 그렇게 한 템포 쉬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무언가 했다. 그것이 '미래'를 위한 계획이든, 단순히 즐기기 위한 활동이든.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많이 울기도 했다. 내가 멈춰있는 동안 시간과 사람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가있다. 그래서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일부터 시작하며 '몰입'의 보상을 찾으러 다녔다.
그리고 대학교를 마친 지금 이 시점은 다시 환기의 시간이다. 이것이 이제 마치 하나의 의례와 같이 느껴진다. 인생의 새로운 페이즈가 펼쳐지기 전에 한 템포 쉬는 것. 그러면서 뒤쳐지는 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합리화할 이유를 찾았다. "어학연수를 가는 거야." 발전적인 경험이라는 포장지로 감싸진 나를 위한 포상이었다.
인턴을 마친 9월, 어쩌면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가장 적절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를 위해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취업을 위해 꾸며진 내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한층 더 넓어진 시야를 갖게 될 나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24살, 아직 어리디 어린 나이가 아닌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고, 모두가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아." 직감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내려진 단순한 한 줄의 결론이었다. 어쩌면 그곳에서 원하던 바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내가 기대한 것과 달라 실망할 일이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국을, 아니 서울조차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에겐 알을 깨고 나간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