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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연 Feb 29. 2024

나의 첫번째 춤 선생님_ 마네퀸의 윤지

강렬한 생명의 감촉이 온몸을 감쌌다.


뭐든지 첫 경험은 강렬하다. 나의 첫 번째 춤 선생님은 마네퀸의 윤지였다. 윤지쌤의 수업은 비전공생 댄서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수업이었다. 첫 수업의 마무리가 무대에 서는 것이다 보니 부담도 컸지만 그만큼 열심히 연습했고 춤에 열중할 수 있었다.


윤지 선생님의 실물은 쿼카를 닮은 귀여운 얼굴에 동그랗고 작은 체구까지! 깜찍 그 자체였다. 그러나 춤 실력은 전혀 귀엽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기가 막힌 무빙을 볼 때마다 떡 벌어지는 입을 의식적으로 닫으며 춤을 춰야만 했다. 윤지 선생님의 헤어스프레이를 빌려 쓰며 선생님께 영광이라고 말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귀여워~”라고 말하셨는데, 사실 그때 선생님이 더 귀여우셨다.


커스틴! 컴 아웃 걸~


친절하지만 탄탄한 티칭. 그리고 야무진 무대구성까지! 완벽했다. 비록 새연(새벽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후회 없는 좋은 수업이었다. 선생님도 워낙 유머러스하셔서 춤 수업 외에도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선생님이 해주신 재미있는 사담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말 내가 이 수업에 만족했던 이유는 다른 것에 있다. 나는 그때 소중한 사람을 잃었었고 실의에 빠져있었다. 그때가 기억난다. 모든 음식의 맛이 흐릿했고 모든 사람에게 다 서운했고 아프고 싫은 감정마저 둔감해지던 때가. 우울했고 방황했고 어쩔 줄 몰랐다. 나는 그때 누군가의 죽음에 너무나 큰 영향을 받고 있을 때였고 그야말로 춤출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왜 이 수업을 듣기로 했을까? 당시 왁킹 판을 휘어잡고 있었던 윤지 쌤을 실물로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가슴 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윤지 쌤은 이미 세계적인 왁커셨고 그런 선생님이 무대를 꾸민다는 것만으로 비전공생 댄서들 사이에서는 큰 이슈였다. 두 번째로는 춤을 추면 가슴 아픈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바삐 살면 잊혀지겠지. “죽음과 이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하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죽음과 너무 다른 생동감 넘치는 춤이라는 것. 이런 상황 속에서도 춤을 춰야 한다는 것이 나를 붕 뜨게 만들었다. 현실에서 나는 평형대 위를 걷는 것처럼 균형감각을 상실했었다. 나를 가장 사랑해 줬던 사람을 잃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데 시간은 너 뭐하냐고 손가락질하며 나를 지나치고 있었다. 내 현실은 참 현실감이 없었다. 이게 인생인 건가. 나는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야 했다. 내 마음속과 밖의 시간 속도 차이에 비틀거렸다. 현실이 너무 차가워서, 그래서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자꾸 쓰러졌다.


  그런데 선생님이 무대의 마지막 부분을 다른 안무원들과 몸을 부딪치는 동작으로 끝맺겠다고 하셨다. 엉덩이끼리 손바닥끼리, 발바닥끼리 부딪히며 짝짝 소리를 내었다. 15여 명의 안무원들이 동시에 각자 다른 사람과 부딪히며 박자를 맞추는 부분은 꽤 멋있었다. 거울 속 나는 너무나 경쾌했다. 선생님은 진짜로 세게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그 에너지가 전달된다고 하셨다. 각자 주변에 있는 안무원과 부딪힐 부분을 상의해서 열심히 부딪혀댔다.


  

 대망의 무대 날, 무대에서 동작을 얼추 소화하고 마지막에 다른 안무원과 몸을 부딪히는데 연습 때보다 훨씬 강하게 엉덩이와 손바닥이 부딪혔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삶의 균형감각을 되찾았다. 나는 그때 정말로 신났다. 강하게 부딪히는 느낌도 고통보다는 희열로 다가왔다. 내가 여기 지금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이고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강렬한 생명의 감촉이 온몸을 감쌌다. 다른 사람의 눈을 보니 “너도 신나?” “야나두!”가 절로 나왔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 세상은 차갑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신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 그렇게 나는 비틀거리던 몸을 추스르고 앞으로 뛰어나갈 에너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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