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60n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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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60noh
세상에는 다양한 이별이 있지만, 누군가를 평생 볼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할 때면 세상의 덧없음을 여실히 체감하게 된다. 모든 것엔 끝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모르쇠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걸까?
오늘은 사랑하는 반려조 두 마리의 죽음을 겪은 뒤 허무주의를 겪고, 이를 작업으로 승화하는 과정 속에서 인생과 허무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애니메이터 60noh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유경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애니메이터 60noh 입니다. 제 본명이 노유경이라, 일종의 말장난으로 6(육) 0(영)이라는 필명을 가지게 되었어요. 중학생 때부터 쓰던 닉네임인데 아마 한국의 대부분의 유경들은 60이라는 닉을 쓰지 않을까 싶네요.
고등학생 시절 만화과 입시를 했고, 우연히 계원 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거기서 마이크 누엔 교수님을 만나고 애니메이션의 참맛을 알게 됐는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정말 재밌어서 진로도 이쪽으로 정하게 되었네요. 제가 애니메이터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은 캐릭터 컨텐츠 회사 '모스테입스'를 약 9년 정도 다니다가, 얼마 전에 퇴사했습니다. 요즘엔 VCR WORKS에 출근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어요.
유경님이 애니메이터가 되기까지 영감을 준 애니메이션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나요?
제가 애니메이션을 자주 챙겨보는 편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적은 많이 없는데요, 대신 회화 작업을 좋아해요. 앙리 마티스와 이성자 화백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약간은 기괴하다면 기괴하고 이상한 중세그림도 좋아해요. 책, 노래 등에서 좋은 자극을 받기도 하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에서 그림 소재나 애니메이션 소재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도 최근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 <미드나잇 가스펠>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철학적인 소재가 정말 좋았고, 개성있는 캐릭터 디자인도 좋았습니다. 제 작업을 보신 분 들 중에 가끔 <미드나잇 가스펠> 생각이 난다며 언급해주시는데,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열심히 해서 그런 애니메이션들 만드는 게 꿈이에요.
그러면 유경님은 그림이나 애니메이션 작업의 영감들을 어디서 얻나요?
단순해요. 이건 이래서 싫다, 저건 저래서 좋다 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해요. 이랬으면 좋겠다,하는 희망 사항도 그림으로 그려요. 제가 느끼는 감정-분노, 슬픔, 허망함, 행복, 어이없음, 웃김-을 가감 없이 그리기 때문에 많은 분이 공감하고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거든요.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습니다.
유경님의 작업을 관통하는 감정이나 유경님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주감각이 궁금해요.
저는 19살 때부터 세상을 절망적으로 느끼는 허무주의자였어요. 삶과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고, 난 이미 태어나버렸고,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20대의 대부분을 저와 함께한 모란 앵무 삐삐와 코코 중에 정말 건강하던 코코가 갑자기 병으로 몇 달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때 삶과 죽음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긍정적 허무주의자로 진화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체험! 삶의 현장>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애니메이션이 영화제 상영을 시작하기 며칠 전 삐삐도 떠나버렸어요.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삐삐랑 코코를 생각하면 마음이 괜히 헛헛합니다. 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 웃으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배급을 시작한 <무기력 어드벤쳐>도 제가 무기력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셋팅했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애니메이션이고요. 현재 막바지 작업 중에 있는 세 번째 애니메이션도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얼른 마무리해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젠타 핑크, 네온그린 처럼 강렬한 색과 자주 등장하는 특이한 캐릭터들 때문에 유경님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천사나 애벌레 같은 요소들의 이야기가 궁급합니다.
천사가 자주 등장하는 건 아무래도 제 무의식에 있는 희망 사항 같아요. 저는 딱히 천주교나 개신교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무신론자인데 어디엔가 천사가 살아있고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는 걸 믿고 싶어 하나 봐요. 제 그림에는 나비나 애벌레 같은 곤충들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미물에 대한 측은함이 있기도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벌레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서 애벌레나 개미 행렬도 그림에 자주 그립니다. 그리고 뚱뚱하게 생긴 꽃도 자주 그리는데 이건 그림 장식요소 입니다. 웃기게 생기기도 해서 유머를 위해 집어넣기도 해요.
그 밖에 동그란 새, 비 맞는 사람, 피 흘리는 사람, 담배가 자주 등장하는데, 기분에 따라서 크록스에 지비츠 달 듯이 이런 감정을 나타내는 요소들을 그림에 넣는 편이에요. 인물이 핑크색으로 표현되는 이유는 단순해요. 제가 핑크톤을 좋아해서 제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피부색을 핑크로 칠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의 형태는 나중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고려해서, 재밌으면서도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걸 시나리오 형태로 바꾸기 시작해요. 공책이나 메모장에 시나리오를 몇 번이고 고쳐 씁니다. 제가 글을 읽고 납득이 될 정도로 완성이 되면, 그걸 러프 콘티로 옮겨요. 저는 보통 작은 포스트잇을 이용해서 노트에 순서대로 붙인다거나 하면서 콘티작업을 하는데요. 그리고 그걸 컴퓨터로 옮겨서 콘티 비디오를 만듭니다. 전체적인 영상을 보면서 더 필요한 컷을 추가하거나, 지루하면 러닝타임을 조절하기도 해요.
그 중에 몇가지 장면을 참고해서 키 샷*을 잡아요. 이 과정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배경아트를 겸해서 작업합니다. 원래 제작 인원이 많으면 콘티, 레이아웃, 배경아트도 따로 제작하는데요, 저는 1인 제작이라 그냥 한 번에 다 해버립니다. 아트워크가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나머지 콘티 컷들도 씬 넘버를 붙이고 레이아웃 화*를 합니다.
모든 컷의 레이아웃이 완성되면 드디어 그걸로 캐릭터 작화를 합니다. 저는 벡터 컷아웃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애니메이트를 사용하는데, 애니메이트를 사용하더라도 러프 애니메이션 작업은 컷아웃이 아닌 손작화를 하는 편이에요. 그게 더 연기가 자연스럽거든요. 애니메이션 작화가 다 끝나면 러프 작화를 깔끔하게 다듬는 클린업을 합니다.
저는 비트맵이 아니라 벡터로 작업을 하는 편이여서 라인 클린업과 채색을 동시에 합니다. 그 다음 애프터 이펙트로 넘겨서 영상 보정을 해요. 그림자나 하이라이트, 블러처리같은 비쥬얼적인 보정도 하고, 디졸브나 페이드인 같은 영상 편집도 합니다. 영상을 계속 깎고 깎아서 완성되면, 이제는 사운드를 입힙니다. 남자친구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을 하고 사운드작업을 취미로 하는 터라 남자친구 집에 녹음 장비가 있어서요, 가끔은 남자친구와 제가 직접 캐릭터 연기를 하기도 해요. 이렇게 사운드를 입히고 최종 편집까지 하면, 완성입니다. 그리고 배급사에 배급신청을 넣으면 됩니다.
*키샷: 작품의 키가 되면서 전반적인 아트워크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장면
*레이아웃화: 배경에 캐릭터가 어떤 각도나 표정, 포즈로 있을 것인지 정하는 것. 카메라 이동에 따라서 배경이 세로로 높아질 수도 있고 가로로 길어질 수도 있다.
이번 10월부터 노트폴리오에서 워크숍을 진행하시기로 했는데,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첫째로는 웃긴 거 만들기를 좋아하시는 분. 저도 제가 웃으려고 이런저런 짧은 작업을 만들거든요. 재밌는 거 만들면서 같이 웃으실 분 추천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신 분들. 알짜배기로 프로그램에 대해 쏙쏙 집어서 알려드립니다.
짧은 애니메이션 짤을 만드는 건 예전부터 종종 해 왔어요, 단편을 만들기엔 호흡이 너무 길고 웃긴 아이디어를 그냥 멈춘 그림 한 장으로 풀기엔 성에 안 찼거든요. 이 워크숍을 듣고나면, 길가면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에 웃긴 아이디어를 더해 웃긴 것들을 뚝딱뚝딱 만드실 수 있어요. 공원에서 거대 애벌레가 웃긴 춤을 춘다든지, 도로 위에서 똥이 빙글빙글 도는 그런 것들이요. 제가 어렵지 않게 진짜 컴퓨터로 놀듯이 알려드리겠습니다!
최근 오래 다닌 직장을 퇴사하고,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그림 작업을 통해 전시도 진행하셨는데요. 유경님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하고 계신가요?
1년에 한 편씩은 10분 정도 되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여러모로 행복해요. 내 얘기를 할 수 있고, 작업을 하면서 활력도 얻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제 작업을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거든요. 할 수 있다면 매년 만들고 싶습니다. 저도 저를 어떤 작업자로 정의해야할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직업으로 말하자면 인디 애니 감독이 가장 적절한 것 같고, 성격으로는 솔직하고 재밌는 작업자로 불리면 좋겠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유경님의 작업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오는 10월에 노트폴리오와 함께 워크샵을 열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이 있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긴 인터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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