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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트폴리오 Sep 12. 2023

서울 인디애니페스트 감독 인터뷰 - 김준하

interview with 김준하 감독

18만 창작자 회원이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는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노트폴리오 픽으로 선정된 작업의 창작 과정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인터뷰 - 김준하 감독

interview with 김준하 감독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이자,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울 인디애니페스트>가 올해로 19번 째를 맞았다. 19회 서울 인디애니페스트2023(Seoul Indie-AniFest2023)은 9월 14일부터 9월 19일까지 6일간 이어진다.

올해 행사는 '한국 독립애니메이터들의 실험적 시도와 가능성에 주목하고, 애니메이션의 영역 확장을 통한 비전을 제시'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포스트 휴먼 병동>을 선보인 김준하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통한 애니메이션의 실험적인 시도와 새롭게 확장된 영역을 엿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준하 감독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김준하입니다. 



작품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포스트 휴먼 병동>은 제 대학원 졸업작품인데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데, 상상속의 병원에서 탈 인간 환자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관찰 형식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작품을 기획하게 된 계기, 배경이 어떻게 되나요?

이 작업은 도나 헤러웨이의 에세이 <사이보그 선언문 A Cyborg manifesto>(1985) 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이 에세이에서 헤러웨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과학의 산물의 호환이 가능해지고, 그 혼종성이 강화된다고 말했는데요, 동물이랑 인간, 기술의 혼종의 이미지로 헤러웨이가 디자인한 사이보그의 이미지입니다.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가 흐려지는 사이보그의 이미지가 크게 인상깊었고, 저도 제 작업을 통해서 존재를 구분 짓는, 경계가 흐려지는 그런 새로운 세상, 아니면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이미 공존하고 있는 혼종들의 모습들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출발점이 되는, 가장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나 장면이 무엇인가요?

조금 주제랑 관련되지 않게 들릴 수도 있지만, 출발점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였는데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물과 사람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라는 분석을 듣고, 그럼 인간과 동물이 이 병을 공유한다면, 나중에는 기계와 생명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서로 바이러스를 공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이게 작업으로 표현된 게, 작업 중간에 컴퓨터 랜섬웨어에 감염된 개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더욱 확장된 능력을 갖춘 신인류의 뜻을 가진 “포스트휴먼” 이라는 소재와 “병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병원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렵지 않게 포스트휴먼을 만나고 관찰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제 인류가 의료 기술을 통해서 신체를 강화하잖아요?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데, 이 신체에 기술을 접목시키는 오래 된 시도가 점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피부 아래에 보형물을 넣는 성형수술? 의족, 의수 같은 인공사지? 인공장기까지 이식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인간은 육체를 강조하고, 기술로 이를 향상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신체가 점점 증강을 넘어서 대체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인간이라고 불리는 것을 어떤 것인지 규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님 규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체의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구요.


뭐 어찌 되었든 간 그 변화의 최전선이 병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이를 영화의 주 무대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세계의 병원은 인간 환자뿐만 아니라, 기계-비인간 동물들도 중요한 주체, 환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동물 병원이나, 식물원, 기계 수리점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진 합의 공간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포스트휴먼들의 작동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기계와 인간의 인체를 연관짓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구상했던 감독님만의 방식이 있나요? 


포스트 휴먼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되게 직관적인데요. 방식은 직관적으로 구성하되, 그 이미지를 왜곡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작업 등장하는 환자를 보면 대체로 거창하지 않고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잇는 친숙한 개체들인데요. SF 장르물에 등장하는 거대 로봇들이 아니라 세탁기, 렌즈, 파이프, 청소기같은 친숙한 개체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개발된 목적 자체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래 수행하는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몇 가지 이미지를 왜곡시킬 수 있는 장치를 추가했습니다. 익숙했던 이들에 대해 색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처음엔 기계가 나오고 나중엔 점점 사람이나 인간 형태를 한 사이보그 같은 존재들이 나옵니다. 그들을 어떻게 정의 하시나요?기계, 동물, 인간의 경계가 흐려짐을 느낀 후로는 처음에 나왔던 세탁기 장면은 마치 세탁기가 토를 한 것 같이 느껴졌어요.

네 맞습니다! 경계 해체가 제 작업의 주요한 테마인데요. 그 존재들을 어떻게 정의하냐고 물어보면 저도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예술가는 답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도 동감하고, 관객들이 이미지를 보고 난 후에 그들의 존재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순간이 잠깐이라도 있었다면 굉장히 기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인간에 대해 확고했던 정의가 점점 기술의 발전으로 위협받을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가 계속해서 이야기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세탁기가 토를 한 것이 맞나요?

네! 의도로는 그게 맞습니다. 세탁방에서 빨래를 뺄 때 너무 빨래가 많아서 잠깐 쉬었었는데 그 모습이 딱 보여서 시작을 한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이 주로 느끼는 AI의 관련한 거부감을  3D 표현방식 특유의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임팩트 있게 표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주는 특유의 낯선(언캐니한) 정서를 연출하시기 위해 가장 신경 쓰신 포인트가 있을까요?  

우선, 관객들이 이를 그로데스크하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는 일상적인 존재들이 모여서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는 관객들이 조용히 관찰하는 프로세스가 좀 기괴한 정서를 느끼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관객들이 이 괴리를 효과적으로 느끼길 바랐고, 이들의 비일상적인 이미지를 관찰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이미지 감상에 방해되는 내레이션이나, 텍스트를 최대한 배제하고 각 씬마다 단순한 애니메이션이로 구성을 했습니다. 관객들이 마치 처음보는 미지의 생물을 관찰하는 관찰자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자 했습니다.


컴퓨터들이 둘러앉아서 충전하면서 AA Meeting 하는 것 같은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장면은 컴퓨터들의 집단 심리 상담 장면인데요, 컴퓨터들의 고민을 듣는 인간 상담사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기계들과 이를 들어주는 인간의 소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소리도 들어보시면 기계음이랑 인간의 음성이 섞인 모호한 소리가 들리는데요, 재밌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미지 관련해서는 어느 날 작업을 하다가 제 윈도우 노트북이 다운이 됬는데, 그때 떴던 화면이 작품에서 보셨던 파란 배경에 울상 이모지였습니다. 이 화면을 띄우면서 컴퓨터가 스스로 오류를 복구하더라고요, 0에서 100까지. 그 모습이 재밌어서 그 화면을 캡처한 다음에 제 영화에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혀로 된 잎을 가지치기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머릿속에 오래 남는 이미지이고, 보면서 “입에 가시 돋는다” 같은 말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의도된 지점인지 궁금합니다.

처음 듣고 재밌고 흥미로운 감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실험 애니메이션이 멋진 장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한 가지 이미지가 단지 각자의 내러티브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관객들이 비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보고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감상을 들을 때 마다 기쁩니다.

제가 장면을 연출할 때의 목적은, 식물에게 하는 가지치기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가지치기는 식물의 더 나은 성장을 위해, 혹은 아름다운 외관을 위해 식물의 기관을 절제하는 과정인데, 그걸 외과의 수술이랑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잎이랑 가지의 형태의 유사성을 고려해서 뼈와 혀 형태를 빌려왔는데, 그 형태만 인간의 기관으로 대체되어도 가지치기가 다른 경험으로 보일 수 있겠다 생각해서 연출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동차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자동차의 장례를 지켜보는 사람들과 장례지도사 역할의 중장비가 등장하는데 이 장면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간 고유 문화의 전유물이잖아요. 의식이라는 범주를 더 확장해서 비 인간인 기계에도 이를 적용해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고인의 대한 감사함과 애정을 담아서 그 마지막을 함께하고자 하는 것처럼 또 그 대상을 비 인간에게도 적용을 해보자라는 시도였어요. 실제로 지금도 현재 많은 반려 동물의 주인들이 나와 함께 해준 고마움으로, 그 아이들의 마지막을 장례식으로 보내주고 있잖아요. 그래서 인간 장례 지도사분들이  장례를 도와주는 것처럼, 차량 장례지도사가 폐차를 도와주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특히 장례식 중에 한국 장례식의 모습을 그렸는데, 작업을 미국에서 했기 때문에 미국 관객을 고려해서 연출 할수도 있었지만, 비 인간에게 까지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더 그려내고 싶어서 한국 장례식의 모습을 빌려왔습니다. 작년에는 개인적인 배경도 있는데, 작업을 구상하던 해에 차량 충돌 사고가 있어서 폐차를 해야 됐어요. 제가 미국에 처음 와서 인생에서 처음 구매해보고 처음 운전해본 차인데, 견인차가 차를 끌고 갈 때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동한 함께했던 많은 추억을이 떠오르고 나중엔 슬픈 감정까지 드는데 이때 느꼈던 뭉클한 감정이 장면을 만드는데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포스트 휴먼 병동>을 보면 주된 기법인 3D와 더불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실험적인 이미지가 가장 눈에 띕니다. 이러한 실험적 이미지를 구상하실 때에 감독님만의 구상 방법이나, 접근법이 있을까요?  


미디어를 다양하게 사용했는데, 경계 해체가 주제인 만큼 시각적으로도 장르 경계를 해체해보고자 여러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일단 환자들의 의료 기록이 주제이기 때문에 영상 기록 효과를 내려고 했습니다. 3D이지만 필름의 효과를 내고 싶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super 8 카메라로 회색벽을 찍은 다음에, 현상을 해서 디지털 파일로 변형한 다음 3D 이미지 랜더 오버레이에서 필름효과를 연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로이 앤더슨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분의 작품을 보시면 영화를 보는 느낌보다는 그림을 본다는 느낌이에요. 광각 렌즈를 사용해서 모든 인물을 한 장면에 담고 역동적인 연기가 없어서, 관찰자로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거든요. 저도 이처럼 관객들에게 여유 있게 이미지를 관찰하는 시간을 주고,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이미지 감상을 해치는 자막이나 내래이션, 역동적인 움직임은 다 제외하고 이미지들이 그림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그림에서 구도를 빌려오거나 입체감이 덜 느껴지도록 그림자가 많이 생기지 않게 라이팅을 한 경향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자 결심한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이때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도 궁금합니다!


제가 학부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3D 그래픽을 접했는데, 상상하는 세계를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근데 일로 하려면 보통 많은 분들이 캐릭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들어가거나 모션 그래픽, 영화 특수 효과 분야로 종사하시는데,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에는 일하는 환경들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되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았어요.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니 독립애니메이션으로는 이게 가능하더라고요. 특히 3D는 카메라나 스튜디오 공간이 필요하지 않고, 제가 앉아서 work station앞에서 노력만 하면 다른 기법에 비해 애니메이션 제작 비용이 크지 않은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제가 만드는 세상을 전달 할 수 있는데 독립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자 애니메이터는 체코인 얀 슈반크마예르 입니다. 주로 스톱 모션을 활용하고, 필름이랑 콜라주를 섞어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만드시는데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부러 제 작품에서 영화의 frame rate를 떨어트려서 스톱 모션 느낌을 낼 수 있도록 하고, 미학적으로도 기괴한 분위기를 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이 집중해서 봐줬으면 하는 하는 관전 포인트, 보는 이가 느꼈으면 하는 정서가 있으신가요?

제 작업은 내러티브에 집중하시기 보다는 관객분들이 7분간 느낄 수 있는 비일상적인 시청각적 경험, 그 자체를 위해 만들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감상을 방해하는 내래이션이나 텍스트가 아예 없어요. 그래서 이미지랑 사운드를 온전히 경험하시고, 경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실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기쁠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올해 완성을 목표를 지금 작업 하고 있는 게 있는데, 연금술상자라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제작 하고 있습니다. 조금 비밀스러워 보일 수 있는 상자 안에서 물체들이 자유롭게 복제되고 변형되고 생성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대중들에게 전지전능한 영역으로 비춰지고 있는 디지털 기술이랑 예술에 대한 제 생각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3D 애니메이션과 실사 필름을 같이 사용하면서 연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ㅣ 김주희 손예진     그림 ㅣ 장하나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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