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인턴십 이야기
" -- Roma termini. Roma termini. "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다양한 언어가 섞여 들렸다. 한시간 반가량을 달려 떼르미니에 도착해 역사를 나서자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지독하고 익숙한 냄새. 로마에 온 게 실감났다. 역 건너편에 있는 타바끼에 가서 일회용 버스 티켓을 두 장 샀다.
오랜만에 일정이 없어 로마로 여행을 왔다. 거창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반나절 워킹투어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동네로 돌아갈 계획이다. 워킹투어는 나보나에서 시작해 도시 이곳저곳을 지나 콜로세움에서 마무리를 짓는 동선으로 약 4시간 코스다.
투어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광장 근처에서 젤라또를 주문했다. 복숭아와 레몬. 엄지손가락 만한 스푼으로 젤라또를 떠먹으며 가볍게 걸었다. 도시의 활기. 확실히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거리마다 빽빽한 상가와 식당, 번쩍번쩍 높은 건물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관광객들의 들뜬 표정.
투어시간이 되자 여행사 깃발이 보이고 그 주위로 한국인들이 모여 들었다. 다들 가족 아니면 연인, 친구. 혼자 신청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이드는 자기소개 후에 일정을 소개하고 곧 나보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로마는 올 해가 첫 방문이었다. 작년 겨울 전남자친구와 이탈리아를 왔었지만 그 때는 피렌체와 베니스를 갔었다. 첫 유럽여행. 그 때는 유럽에 발을 디뎠다는 것도 실감 나질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살게될거라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평생을 서울에서 고만고만하게 살 거라고 확신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1년 전 유럽여행은 참 심심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랜드마크 한 두개 정도 구경하고 동네를 산책하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일찍 자는게 다였다. 전 남자친구도 나도 유럽여행이 처음이라 뭘 해야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의 나라면 더 알찬 여행을 같이 보낼 수 있을텐데. 그 때 걸었던 피렌체거리, 베니스거리. 같은 거리도 지금 다시 걷는다면 훨씬 더 흥미로울 수 있을텐데. 이탈리아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페리티보가 얼마나 즐거운지 알려줄 수 있을텐데. 아쉬워한들.
로마의 해는 뜨겁다. 뜨거운 햇빛때문에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병사들이 많아 행군길에 그늘이 될 우산소나무를 심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파는 족족 유물이 나와 십년이 넘게 완공이 되지 않고 있다는 로마의 지하철. 길바닥 돌맹이 하나하나도 자세히 보면 몇 백년이 넘는 연식이 쓰여져 있는 곳.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니자 슬슬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시고 15분 뒤에 여기에서 다시 모일게요-"
시청 앞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계단에 앉아 내려다보니 도시는 주황색 볕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멋지게 빼입은 사람들이 시청 건물에서 우르르 나왔다. 그리고 신랑 신부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 쌀을 던졌다. 이탈리아에서는 결혼하는 이들에게 쌀을 던진다. 웃음 가득한 결혼 생활이 되라는 (이태리어로 웃음과 쌀은 발음이 같다) 데서 시작된 전통이라는데 누구는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에서 그런거라고도 하고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보기엔 즐겁다. 던지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결혼이라. 저 둘은 어쩌다 결혼하게 됐을까.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투어, 모일게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저녁은 뭘 먹으러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