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을 “합법적 도박”이라고 부르는 설명은 절반만 맞다.
시장은 위험과 행운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은 욕망을 조절하고 노동을 지속시키는 규율 장치로 작동한다. 표면에서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 리스크 관리와 합리성이 흐르지만, 그 밑에서는 욕망을 노동 공급의 방향으로 재배치하는 통치 기술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투자로 더 벌기 위해선 일정한 소득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단순한 경제적 판단이 아니라 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구조적 장치다. 원금을 만들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더 큰 투자금을 만들기 위해 더 오래 일한다. 탈노동의 욕망으로 시장에 들어오지만, 실제로는 노동을 더욱 공고히 만드는 자기 규율의 구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투자는 자유를 위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동을 지속시키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주가가 형성되는 방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금융시장은 미래의 소득을 현재의 가격으로 환산하는 체계를 갖고 있고, 기업의 이익에는 노동자의 임금, 생산성, 근로 강도, 비용 절감 등이 내재되어 있다. 기업이 이익을 높이는 과정은 곧 노동 강도 강화와 인력 축소로 이어지는데, 그 이익 상승은 다시 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때 그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투자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바로 그 기업의 노동자들 자신이다.
이 구조 안에서 노동자는 억압에 저항하는 대신, 억압의 구조 전체를 투자 수익이라는 언어로 스스로 정당화한다.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외부에서 강제하는 권력이 아니라 욕망을 통해 스스로를 통치하는 방식—이 금융시장에서 완전한 형태로 구현된다. 강제는 제거되고, 욕망만 남는다. 그러나 그 욕망이 곧 규율이다.
시장은 감시 구조에서도 동일하게 기능한다. 기업은 주가 하락을 두려워하며 단기 실적, 비용 절감, 구조조정 같은 주가 친화적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압박의 일부는 노동자-투자자 자신이 만들어낸다. 노동자는 기업의 정책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주주로서 그 정책을 감시하고 촉구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피해자이자 감시자라는 이 이중적 위치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정교한 통치 메커니즘이다.
이 전체 구조는 고대 사회의 노름과 비교하면 더 깊이 이해된다. 옛 공동체에서 노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욕망을 외부로 발산하여 폭력적 충돌을 막고, 경쟁적 에너지를 해소하며, 행운의 분배를 통해 공동체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재확인하는 기술이었다. 즉 노름은 사회의 불안을 관리하는 장치였고, 제의적 성격까지 갖고 있었다.
현대 금융시장은 이 기능을 그대로 계승하되, 훨씬 더 방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확장했다.
정보 비대칭은 새로운 계급 구조를 만들고, 파생상품은 위험을 무한히 분절해 거래 가능하게 만들며, 알고리즘 시장은 인간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획해 수익으로 치환한다. 이는 더 이상 단순한 ‘합법적 도박’의 차원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중심 기술이다.
결국 주식시장은 두 층위에서 움직인다.
겉으로는 투자·수익률·리스크·성장이 강조되지만, 내부에서는 욕망을 규율하고 노동을 강화하며 미래를 통제하고 체제를 재생산하는 기능이 작동한다. 시장은 돈을 벌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노동을 지속시키기 위해 욕망을 관리하는 장치다. 고대의 노름이 공동체 내부의 혼란을 잠재웠듯, 현대의 금융시장은 사회적 불안을 흡수하고 욕망을 조직하여 체제의 안정으로 전환한다. 우리는 더 세련된 용어를 사용하지만, 기능은 동일하다.
주식시장은 욕망을 규율하여 노동을 유지시키는 현대 자본주의의 통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