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을 들여다보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기업들은 은근히 단단하고, 재무는 미국보다 보수적이고, 부채비율은 100%를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장도 잘 돌고 기술력도 나름대로 높다.
그런데도, 이 시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늘 축축하다.
어떤 기업도 ‘잘했다’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숫자로만 보면 한국 기업은 충분히 올라야 한다.
올라야 한다는 말조차 우습다.
이미 올라 있어야 할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주가는 묵묵부답이다.
마치 “그래, 네가 잘한 건 알겠는데… 그건 네 사정이고”라고 말하듯.
이런 분위기는 단순한 저성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한국 시장에는 언제나 묘한 무력감이 깔려 있다.
투자자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좁고, 그 좁은 문 앞에서 대주주가 서 있다.
기업은 돈을 벌지만, 그 돈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현금성 자산은 쌓이고 쌓여 거대한 저수지가 되지만, 그 물은 주주에게 흘러오지 않는다.
수익은 생성되는데 보상은 없다.
이 시장에서는 주식이 곧 기업의 소유라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조차 흐릿해진다.
미국에서는 실적을 내면 주가가 오른다.
중간에 설명이 필요 없다.
자본주의의 최소한의 약속이 지켜진다는 신뢰가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주주도 성장하고, 기업이 실수를 하면 주주가 떠난다.
너무나 당연한 기초적인 룰이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약속이 종종 뒤틀린다.
기업은 주주에게 책임지지 않고, 주주는 기업에게 요구할 힘이 없다.
배당은 형식적이고, 자사주는 사들여도 소각하지 않는다.
대주주는 내부거래와 복잡한 구조를 통해 자기 제국을 강화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
그 사이에서 소액주주는,
기껏해야 조용히 분노하거나
아예 시장을 떠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시장은 싸다.
싸다는 말은 매력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기회의 가격’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한국 주식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
“이 시장은 주주에게 너무 인색합니다”라는 말의 완곡한 버전이다.
한국 기업은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기업을 둘러싼 생태계는 좋지 않다.
한국 기업이 성장하면, 그 성장은 내부에서 순환될 뿐 외부로 뻗어나오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시장 전체가 재평가되기 어렵다.
한국 시장은 지금도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기업을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는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한국 시장은 앞으로도 싸게 유지될 것이다.
기업이 아니라, 체계가 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