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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몰락의 긍정 역발상

by 신성규

이천 년 전 로마의 풍경은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계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영토 확장에 성공한 로마는 주변국에서 끌어온 노예 노동을 기반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 부는 대부분 귀족들의 몫이었다. 노동력을 제공하던 소농과 장인은 경쟁력을 잃었고, 로마의 평민들은 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식량 보조와 오락을 기다리는 존재로 전락했다.


로마 정부는 폭동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술과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었고, 콜로세움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잔혹한 쇼가 열렸다. 분노와 허무, 불안과 권태를 가진 시민들은 점점 정치적 주체에서 문화적 소비자로 변했다. 그렇게 로마 중산층은 붕괴했고, 국가는 소수 귀족의 나라가 되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걷는 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산성이 아니라 자본의 집중이 부의 분배를 결정하고, 기술과 자동화는 중산층의 기반을 잠식한다. 플랫폼은 돈을 벌지만, 그 안에서 노동하는 다수는 플랫폼의 일부로 통합된다. 국가는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을 막기 위해 각종 지원 정책과 오락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관객’이 되어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묘한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중산층의 몰락은 분명 자본주의의 위기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그 위기가 변화의 속도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안정된 중산층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기존 질서가 끈질기게 유지된다. 이들은 변화보다는 안정, 구조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조정을 선호한다. 하지만 중산층이 붕괴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제도적 보상이 사라진 사람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혁명의 동력은 언제나 대다수의 상실감에서 나왔다.

로마의 몰락은 경고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경고가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여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만든 중산층의 몰락이야말로, 지금의 체제를 다시 쓰는 가장 빠른 통로가 될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통찰이다.

몰락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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