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샤인 연주리 Apr 29. 2022

미국 :서슴없이 직업을 물어보다

난생 처음 본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 나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여기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What do you do for a living?”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를 하고 자기 이름을 밝힌다. 그렇게 형식적인 인사와 안부가 오가고나면 그 다음에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단연 ‘직업’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직업’을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처음 미국에 와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속으로 내 이웃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나를 처음 봐놓고서는 무슨 권리로 나한테 직업을 물어봐? 제정신이야? 


학교에서 준비한 학교 첫 등교날 커피와 베이글 - 학부모들의 첫 공식모임이다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기에 나는 한마디로 지금 한량이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나는 미국에서의 평화로운 삶이 좋긴 하지만 누군가 내 직업을 물어보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처음보는 사람이 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이런… **


쓸데 없는 오해로 기분나쁜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왜 그 질문에 그토록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첫째, 직업이 없어진 현재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글로벌 기업 다니는 누구라고 뽀대나게 소개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나의 현실을 숨기고 싶었던 거서 가다. 둘째, 친하지 않은 사이에 직업을 묻는 것은 한국에서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첫 만남의 자리에서 다짜고짜 직업이 뭐예요? 라고 묻는 경우도 물음을 당하는 경우도 없었다. 


아이들과 같은 반 학부모들을 만날일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다. 한해가 끝나가는 지금 그들의 직업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순전히 나의 외국인으로서의 경험부족, 문화이해 부족에서 비롯되었음을 일주일도 안돼서 깨달았다. 그 주말에 동네 공원에서 자전거타기 축제가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다같이 갔다. 정말 동네 주민들이 다 모인 것 같은 왁자지껄임으로 가득한 공원의 모습이었다. 자연스레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우리가 새로 이사온 걸 알고서 ‘Hi’라며 인사를 먼저 건네주는 고마운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다들 하이 다음에 What's your name 그리고 자연스레 “What do you do for a living?” 으로 질문이 이어졌다. 대화를 나눈 대부분의 사람이 직업 질문을 했다. 


문화적 소양은 부족하지만 대신 눈치가 매우 빠른 나는 그 질문을 받으면 바로 상대에게도 물어보았다. 아무도 나처럼 기분나빠하지 않고 웃으면서 친절히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자신이 하는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되니 한결 가까워진 기분도 들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나의 현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에도 껄끄러움이 사라졌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기예보 방송을 하는 기상캐스터 남자, 작은 플럼빙 회사를 운영하는 남자,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는 여자, 신발 디자이너로 일하는 여자 등등 정말 다양한 직업 이야기가 오고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직업 이야기 말고 더 나에 대해서 짧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싶다. 그러니 이름만큼이나 중요한 게 현재 내가 무엇을 하느냐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문화이기에 아이들 친구 학부모를 만나면 으례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누구는 학교 잘 다니나요? 누구는 요즘 무엇을 배우나요? 등등.. 아주 부드럽고 절대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질문들마나 했다. 그것도 나자신이 아닌 아이에 대해서만. 


이런 질문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일하는 엄마가 참 많다. 아이가 어린데도 아이가 여러명인데도 열심히 일하는 워킹맘이 정말 많다. 아무도 “회사에 다녀요.”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마케팅일을 합니다. 회사가 연금관련 회사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금상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마케팅 일 이예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일을 이야기 한다.  세일즈를 해도 그냥 세일즈라고 말하기 보다는 “회사에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해요. 00같은 회사가 고객인데 주로 **관련된 보험 상품을 판매해요.” 라고 자세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설명한다.


What do you do for a living? 은 들으면 들을수록 참 괜찮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나는 현재 만족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생각한다. 나는 나의 Living 을 위해서 어떤거를 하면 좋을까? 나는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을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