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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아니고 기린 Aug 02. 2019

영화, 환상 속의 그대(2013)

방법이 없잖아, 담담해지기엔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저마다의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을 바꿀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꿈을 꾸는 듯 황홀한 영상미를 담았거나 등등. 나의 경우 문득 다시 보고 싶어 지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다. 오늘은 집에서 영화를 봐야지 하는 나름의 계획이 있을 때가 아니라, 그냥 문득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몇 있다. 특별함이나 강렬함은 없을지 몰라도, 평범한 일상에 어느 때나 스며들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있는 리스트 중에 조금 독특한 작품이 하나 있다. 평범한 어느 날 익숙한 듯 다시 보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해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담고 있는 이야기. 영화 <환상 속의 그대>다.


*


<환상 속의 그대>는 가까운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다룬다. 갑작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긴 시간 준비하는 죽음도 물론 있겠지만, 그마저도 그 이후의 빈자리가 크고 낯설게 느껴지는 건 같을 수밖에 없다. 익숙하게, 담담하게. 그런 말들을 앞에 붙일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니까. 이전에 함께 했던 기억들도 마찬가지다. 잊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한다고 하루아침에 지울 수는 없다. 단지 견디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기억들에 발이 묶인 채 걸어 나간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 자체가, 애도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어쩌면 거대한 아이러니다.


혁근과 기옥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경에 대한 기억을 붙잡는다. 기억의 굴레는 환영이 되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된다. 붙잡는 건 스스로 선택했을지 몰라도, 손을 놓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잊어버리는 방법은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문제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더 깊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이야기는 애써 평범한 척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일상에 파고들어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천천히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방법은, 시작이 그랬듯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내야만 한다.


담담하게.

뜻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낯선 말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되냐는 거다. 원치 않는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쉽게 담담해질 때가 있지만, 정작 담담해지고 싶은 것들 앞에서는 언제나 서툴고 어려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물론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온다. 남은 기억도, 사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저 나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고 그럴듯한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건 아니다. 익숙해진 듯 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날들이 있고, 평범한 어떤 날을 한없이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하니까.


*


그러니 그저 조금 씁쓸하게 웃고 다시 걸을 수밖에.

문득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날에는 그냥 그렇게 잠시 눈을 감을 수밖에.


어쩌겠어, 방법이 없잖아. 담담해지고 싶은 것들에 대해 담담해지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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