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O and FRO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 아니고 기린 Jul 24. 2019

연극, 프라이드(2014) +

A letter from Sylvia


“당신은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어.”


*


1958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달빛.
꿈이었구나. 나는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숨을 쉬어.

필립, 난 언젠가부터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어.
깜깜한 어둠 속 당신과 나, 둘만이 희미한 빛을 따라 끝없이 뛰고 있는 꿈.

그러다 갑자기 겁이 나서 “필립” 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얼굴은 당신이 아닌 꿈.
놀란 내가 손을 놓으면,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당신, 그리고 나.

요 며칠 작업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힘들었던 날, 그날도 꿈을 꿨어.
당신을 애타게 부르다 눈을 떴을 때, 자고 있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였어.
떨리는 손을 힘겹게 뻗어 어깨에 닿으려는데, 갑자기 두려워졌어.

“필립, 자고 있어? 나 무서운 꿈을 꿨어.” 하고 당신을 불렀을 때,  
돌아보는 모습이, 꿈속에서처럼 당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건 꿈이 아니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맘을 다 잡아도 자꾸만 두려워졌어.

나는 결국 당신을 깨우지도, 부르지도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어.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어.
이곳으로 이사하고 적응이 되지 않아 한참 불면증에 시달리던 때,
눈을 뜨면 잠이 든 당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었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늘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당신의 잠든 얼굴.

필립, 오늘처럼 막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을 마주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언제부터였을까. 눈을 떠도, 여전히 서로를 마주 볼 수 없는 우리의 시간들은.

필립, 오늘도 등을 돌린 채 잠들어 있는 당신 뒤에서 조용히 기도해.

이 침묵의 신전을 떠나 어딘가 새로운 곳에 도착할 언젠가의 당신과 나를 위해.




해당 글은 연극 <프라이드>의 내용을 기반으로 쓴 2차 창작물이며,

연극/뮤지컬 웹진 ‘월간 이선좌’ 2015년 3월 호에 기고했던 글을 수정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