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yadesign Aug 10. 2019

디자이너는 영원히 박봉일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끓는 물속의 개구리보다 못하거든

나는 2010년 하반기 대학교 졸업도 하기 전부터 실무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행사 대행사에서 시각디자인 파트를 맡았다. 부산에서 인턴으로 근무를 하였는데, 월 80만 원씩 받고 아침 9시 출근에 새벽 2시 퇴근 그리고 주 6일 근무를 하였다. 어쩔 땐 주 7일로 근무를 한적도 있었다. 20대의 혈기로 그때는 그런 게 즐거웠다. 아니 디자이너는 다 그런 건 줄 알았다. 하지만 50일쯤 근무를 하게 되니까 몸이 벌써 반응이 오더라. 아직 졸업 논문도 남은 상황인지라, 퇴사를 하고 졸업을 하여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원래 브랜드 디자인 쪽으로 전공을 하였지만, 광고동아리도 운영을 해보고, 아이디어를 짜서 디자인 산출물을 만드는 광고 공모전이 너무 재미있어 그쪽으로 실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잠원동에 있는 광고대행사로 첫 취직을 하였다. 물론 월 100만 원을 받으면서 전보다 더한 야근을 하면서 디자인 실무를 하였다.


그때는 디자이너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다. 그냥 잡땡땡땡 사이트에 구직 활동을 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아무튼 실무를 하다 보니 내가 하던 것이 맞는가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고, 몇몇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 연봉이 굉장히 박하단 이야기를 들었다.


디자인 아닌 다른 친구들은 중소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초봉부터 월 200 이상 받고 일하는 친구가 많던데... 난 왜 월 150도 못 벌고 야근은 야근대로 하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걸까. 누구 말마따나 '좋아하는 일을 해서' 이런 것일까. 일종의 등가교환인가 등등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업계 연봉 테이블에 대한 인지도 생기고, 회사가 몇 번 망하는 꼴을 보면서 임금체불도 겪어보니 노동법에 대해 눈이 뜨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인자해 보이던 사장님이 검찰로 송치된다는 문자를 받으면서 그 사장님에게 "선생님"이라는 소리도 듣고, 겨우겨우 반년만에 밀린 임금을 받아내며 얻은 경험이었다.






포괄임금제

다른 직군도 마찬가지지만 디자이너 역시 '포괄임금제'라는 악덕 노동법 안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괄임금제. 그게 과연 무엇일까.


포괄임금제란 근로계약 체결 시 근로형태나 업무 성질상 법정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이 당연히 예정돼 있는 경우나 계산의 편의를 위해 노사 당사자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미리 정한 후 매월 일정액의 제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소정근로시간 및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 등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한편,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수당, 주휴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기초하여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실무 노동용어사전, 2014., (주)중앙경제


한마디로 우리는 야근을 하여도, 철야를 하여도, 주말에 나와 근무를 하여도 그것에 대한 보상 없이 공짜로 사장님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중견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이런 임금 구조를 암묵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영세한 사업장들은 사람을 많이 고용을 안 한다.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갈아서 가성비가 좋은 산출물을 뽑아내고 싶어 한다. 그게 돈 버는 건 줄 알고 있으니까.


내가 과거 주니어 때 구땡땡땡땡땡땡역 쪽에 연봉 2200짜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난 분명히 1~2년 차 디자이너로 지원을 했었고, JD에도 그렇게 명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디자인 스킬을 물어보는데 굉장히 과도하게 물어보더라.


캐릭터 디자인을 할 줄 아느냐? 플래시를 할 줄 아느냐? 액션 스크립트를 할 줄 아느냐? 편집 디자인을 할 줄 아느냐? 포스터 디자인을 할 줄 아느냐? 로고 디자인을 할 줄 아느냐? 웹디자인을 할 줄 아느냐? 영상 툴은 만질 줄 아느냐? 등등등


내가 황당해서 처음으로 면접 자리에서 불쾌한 내색을 면접관에게 비추었다.


'그런 사람(이라 쓰고 능력자라 읽는다)을 찾으시는 거면 시니어급을 뽑는 게 맞지 않느냐?'라고 질문을 하니

'가끔 주니어 중에 그런 사람이 있더라'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면 자기 사업자를 차리지 왜 당신네 회사에 취직을 합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바로 인터뷰를 마무리를 해버리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게 불과 8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그 뒤로 난 그쪽 향해 볼일 자체도 안 보고 살아오고 있다.


이 모든 게 포괄임금제 때문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을 갈아서 써도 된다고 생각을 하니 저딴 발상을 하는 오너들이 대한민국 사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신머리는 2019년 지금도 현존 중이다.


포괄임금제 때문에 우리 디자이너들은 오늘도 공짜로 보상하나 못 받고 박봉으로 야근을 하고 있다. 야근을 함으로써 시니어가 된 나는 건강을 많이 잃었다. 지금도 팀장님께 말씀드리며 점심시간 짬 내어 목디스크 재활을 위해 도수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살도 많이 쪘고 그 외에도 많은 질환을 얻어왔다.


나는 아무리 어떤 유명 회사든지간에 포괄임금제로 사람을 고용하는 오너라면 악덕 오너라고 생각하고 있다. SNS로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척 포스팅 하고 실제로 사업장에서 직원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주는는 모르겠지만 포괄임금제로 직원을 고용하는것은 직원들의 야근과 주말을 공짜로 착취 하겠다라는 의도로 충분히 보인다.


모르지 세후 한 700만원 '이상'씩 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웹디자이너의 죽음

우리 디자이너들은 작년 1월 에스티유니타스살인적인 업무와 비상식적인 대우로 과로 자살을 하신 웹디자이너분을 아는 사람이 몇명일까. 우리 디자이너들은 적어도 이분의 이름을 기억해야지 않을까.


나는 디자인 관련 아티클들은 군대 전역하고 08년도부터 시간 날 때마다 읽어왔지만, 그동안 한국 디자이너들 근로환경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는 곳 진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밖에 못 본 거 같다. 매번 디자이너들 기조에 대해서 떠들지 박봉에 월세 내는 거 걱정하며 야근에 시달리는 디자이너들에 대해서 토로한다거나 응원하는 꼴을 진짜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현재까지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분에 대해서 발언을 한다거나 성명을 한 어디 유명 스타 디자이너라던지, 유명 디자인 사업장이 있는가?


어엿한 한 사업장의 오너가 된 선배 디자이너들, 강연장 같은 데서 한번 포럼이나 강연으로 페이 챙기고 자기 배 불리면 끝이지. 후배들에게 크리에이티브니 뭐니 이러면서 기침 소리 내는것은 그렇게 잘하는데 어쩜 그리 이런 사회적이고 노동 관련 된 일에는 다들 짜고 친듯이 하나 같이 함구하고 쉬쉬 하는지. 후배 디자이너들 챙기는 척은 엄청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 디자이너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일에 대해 물어보면 아예 모르거나 그저 남일처럼 여기거나, 그리고 야근해야 한다며 SNS에 인증하고 일하면서 푸념하고 끝이다.


그래... 훌륭한 디자이너가 야지, 좋은 디자인 방법론 다 좋다. 좋은 정보고 나 또한 그런 아티클들을 통해 간간히 도움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전에 디자이너에 대한 처우부터 이야기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난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 디자이너들은 한 사업장에 귀속되어 임금을 받는 월급쟁이다. 디자이너 이전에 근로자이다. 저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있는 노동 관련 연대 사람들처럼 말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글을 포스팅한다고 하여도 디자이너들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그 누가 과로와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아 근무를 하여도, 간신히 최저임금 넘는 월급을 받고 다음 달 방세를 걱정하며 사회초년생을 보내여도 '이게 디자이너라면 당연한 과정'이라 여기고 훈장처럼 여길 테니까.


난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디자이너들 야근하고 박봉이라고 푸념 놓는 것도 솔직히 우리 디자이너들이 자초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면 바꿀 생각을 못한다던가.


마치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이 상황은 영원히 반복될 테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되겠지. 그리고서 건강을 잃던, 디자인을 그만두던 그리고 "과거에 디자이너를 했었지" 라떼 한 열 잔 마시고 있을 테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디자인 전공자 UI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피드백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