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좁혀지고 있는 미중 간 외교적 체급과 국제적 역량
지난 4월 6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유럽집행위원회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양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중국의 리창 총리와 만났으며, 시 주석과도 만나 정상 외교에 나섰다. 이어 삼자회담까지 진행했다. 프랑스 대통령과 유럽집행위원장이 동시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 유럽의 관계 개선은 물론 프랑스와 유럽의 관계 개선을 위해, 본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중국과 유럽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잇따른 회담에서 중국은 유럽에 엄청나 규모의 투자는 물론 다층적인 차원에서 국제적인 사안에 대해 두루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공교롭게도 4월 말에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렸으며, 많은 미 동맹과 우방국이 미국이 조금 모자라다고 동맹인 한국을 어떻게 대하는 지 확실하게 봤다.
유럽 정상의 이번 방문은 지난해 말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2022년 12월 말에 베이징을 찾았다. 숄츠 총리는 연중에 워싱턴 D.C.에 이어 연말에 베이징을 들리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함께 할 뜻을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적극 협력하기로 했으며,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는 전쟁 완화를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독일과 중국의 통상 관계를 적극 유지하기로 당연히 합의했다. 즉, 마크롱 대통령도 곧바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2월 초에 워싱턴에 백악관과 미 국무부를 찾았다. 비록 미국의 엄청난 간섭과 관여로 인해 프랑스는 호주와의 잠수함 거래를 파기해야 했으나, 그럼에도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고 미국과 프랑스는 중요한 동맹인 만큼, 관계 악화의 요소에도 불구하고 좋은 관계를 당연히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미 동맹과 우방을 위한다고 말만 번지르게 저지르는 사이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저지른 행보를 확실하게 경험했다. 독일은 러시아와 천연가스 거래를 전격 중단했다. 발트해를 거치는 두 번째 가스파이프라인인 노르드스트림2를 완공했음에도 이를 개통하지 않기로 한 것. 물론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러시아의 침공에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 사이 유럽은 겨울을 지나면서 난방비 상승이라는 엄청난 사안과 마주했다. 이 틈을 미국이 메웠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무려 기존가의 네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유럽에 수출하면서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연중에 유류 비축을 국제적으로 풀면서 유가 안정에 기여한 바 있으나, 이를 엄청난 가스 판매로 다시 채웠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미국의 군산복합체로부터 많은 무기를 매매했다. 여기에 가스까지 수입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그 사이 유럽 정상들을 비롯한 각국의 다른 정상들이 중국으로 향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정상은 거의 없었다. 이념적인 전선에 사로 잡혀 외교(라기보다는 굴종)하는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난 중국-유럽 회담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프랑스와 EU의 정상이 동시에 찾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20년 말에 열린 4+1 회담과 엇비슷한 형태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없었다면 유럽 정상들은 당시 베이징과 서울을 순차적으로 찾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외교가 중단된 사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당시 독일의 안젤라 메르켈 총리가 함께 시 주석과 화상회담에 나섰다. 물론, 이 때 확정된 엄청난 중국발 유럽 투자는 유럽의회가 인권 문제로 인해 비준을 거부하면서 거절이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럽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입장에 놓인 만큼, 중국발 투자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물론, 지켜봐야 한다.).
즉, 미국이 한국이 모자란 틈을 타 엄청난 이익꾸러미를 챙기는 것을 기존 동맹들이 모두 목도했다. 유럽은 미중 사이 중간으로 자리잡길 바랐다는 것이다. 지나치에 미쪽으로 기울 경우 경제적 이익이 없기 때문. 뿐만 아니라 이번 전쟁이 서방(사실상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인 점을 고려하면, 유럽측 정상이 중국이 중간자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2월에 열린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장관과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옌스 스톨텐버그 사무총장의 회담에서 중국의 무기 지원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중국은 무기 지원에 임하지 않았으며, 시 주석이 오히려 모스크바를 찾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설득했다. 중국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중간자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중-프, 중-EU, 삼자 간 회담의 공동선언문을 보면, 유럽 정상들도 이를 전격적으로 바랐다.
공동선언문을 보면, EU도 중국에 많은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만큼, 이를 일정 부분 바로 잡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물론 무역 증진과 향후 교류 확대까지 포괄적이면서도 다층적인 합의안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돋보이는 부분은 시 주석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회담에서 중국과 EU 회원국 사이의 관계 개선을 확대하는 가운데 다른 3자의 개입이 없어야 할 것이 명기되어 있다. 이는 미국의 간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도 이를 받아들인 것을 보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자 하는지, 이번 겨울을 나면서 얼마나 실망했는 지 엿볼 수 있다. 중국와 EU는 금년에 전략적동반자관계를 맺은 지 20년이 되는 만큼, 중요한 기점에 왔다고 본 것이다. 이미 중국의 무역량에 맞설 수 있는 국가가 없기 때문. 프랑스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이고, 내년이 외교 수립 60주년인 만큼,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기로 했다. 다층적인 합의로 안정된 양자 관계, 상호 이익과 공동 발전 추구, 다양한 인적 교류, 국제적인 거버넌스를 좀 더 촉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당연히 미국이 겨냥된 사안이라 봐야 한다.
종합하면, 중국은 지난 3월에 중동 정세에서 확실한 중간자로 나서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과 외교 재수립을 전격 중재했다. 이어 이번에 유럽 정상들과의 회담을 통해 유럽에 미 영향력을 줄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EU 모두 중국의 정치외교적으로 엄청난 협력과 지지를 받기로 한 것과 함께 경제통상적으로 무역 유지와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협업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을 막 다루는 사이 유럽은 미중 사이의 중간 진영을 꾸리면서도 전쟁 중인 시기인 만큼, 지나친 미 경중을 대비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정세 안정에 나섰다는 점이다. 반대로, 한국도 독립적인 외교를 주창하는 당시 대선 후보가 당선이 됐으면 이들과 연계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 사이 유럽은 한국이 미국에 당하는 것을 보며 더욱 미중 사이 외교에서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유럽 정상은 중국이 이번 러시아 침공의 중재자로 나설 것을 독려했다. 앞선 두 가지(중동 문제 중재, 유럽 관계 개선)에 더해 전쟁마저 중재한다면 중국의 외교적 체급은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커질 데로 커졌으나 정작 외면하고 싶어하는 대가를 우리는 조만간에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미국과 일본 모두 중국과 반도체를 포함한 정상 거래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만 제약이 걸린 것이 거듭 확인이 됐으며, 오히려 미측의 되도 안한 요구(미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런이 제재를 받는다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지 말 것을 권고)에도 항변이라는 것을 했는 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중국이 외교의 전면에 거듭 나서고 있으며, 내딛는 발자국이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국과 인접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모르고 싶어 하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