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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토리는 내 청춘의 요람

by 그린망고

여행은 혼자 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생각을 더듬어보니, 2000년대 초반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가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호주 동부 전역을 몇 개월에 걸쳐 혼자 여행했는데, 그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낯선 땅을 홀로 떠도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를.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자유와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해적왕 루피라도 된 것마냥, 온 세상을 다 접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구나.'

가슴이 요동쳤다. 100살까지 산다 해도,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지 못하고 죽을 거 같아 조바심이 났다.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뭐든 내 멋대로 할 수 있어서다. 배려하거나 배려받을 필요 없이 그냥 내가 내키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늘어지고 싶을 때 늘어지고, 놀고 싶을 때 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한창 배낭여행을 하던 청년 시절엔 언제나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이용했다. 주로 한 달 이상의 여행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에서 이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였다. 다양한 문화권의 여행자들을 만나는 것이 설레고 즐거웠다. 어쩌다 동선이 겹치면 잠시 동행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또 자연스레 각자의 길을 간다. 만남도 작별도 승낙도 거절도 어렵지 않다.


도미토리에 머무는 여행자들 사이엔 암묵적인 선이 있다. ‘프라이버시’라는. 웬만해선 누구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그까짓 선 따위 개나 줘라 하는 몰지각한 여행자들도 있다. 가령 여성 전용 도미토리에 남성을 끌어들인다거나 하는.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요즘은 어떤 지 모르겠으나)


나는 어려서부터 잠을 깊게 자지 못했다. 불면은 나의 오랜 동무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여행지의 도미토리에서는 세상모르게 꿀잠을 잔다. 옆에서 코를 골든 이를 갈든. 심지어 나지막한 코골이는 백색소음처럼 나의 수면을 돕는다. 물론 ‘나지막한’ 코골이에 한해서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순례길의 한 알베르게에서 마치 토르가 강림한 듯한 초강력 코골이를 만난 적이 있다.)


세상 예민한 데다 잠귀까지 밝은 나란 인간이 어떻게 여행지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는 이리도 편안하게 잠을 자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추측해 보건대, 서로의 바운더리를 침범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의 누군가가,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여기서 ‘적당한 거리의 누군가’라는 것이 중요한데, 풀어 말하면 세이프티존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지인이 아닌 안전거리를 준수하는 무명씨를 얘기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도미토리에서 머무는 것이 편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도미토리에 묵는 건 민폐인 것인가? 젊은 친구들이 불편해하면 어쩌지.”

그런 시시한 생각들이 내 발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도미토리를 찾지 않게 되었다. 여행의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싱글룸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으려니 잠이 오질 않았다. 천장에 모빌이라도 매달려 있으면 그거나 쳐다보며 무료함을 달랠 텐데. 쳇.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은 ‘알베르게(Albergue)’라 불리는 도미토리 형태의 숙소에서 머문다. 조금 규모가 있는 마을에는 개인실을 갖춘 사설 알베르게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미토리를 이용한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나 자연스럽게 도미토리에서 잘 수 있는 여행인 것이다.


이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면 황당무계하려나. 그러나 사실이다. 정말 오랜만에 도미토리에서 자 보고 싶었다.


결과는 아주 흡족했다. 매일매일을 동면에 든 새끼곰처럼 곤히 잤다. 역시 나는 도미토리 체질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배낭여행하던 시절의 추억들이 송글송글 떠올라 배시시 웃음이 나곤 했다. 행복했다.


도미토리의 작은 침대는 내겐 포근한 요람이었다.


도미토리는 내 청춘의 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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