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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스러운 마을이었다고?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 Port)

by 그린망고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 Port)’.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자리한 산골 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이 시작되는 곳.






"이렇게 사랑스러운 마을이었다고?"


미리 알았더라면 며칠쯤 머물다 갔을 것이다.


생장피에드포르는 그저 순례자 여권을 받기 위해 거쳐가는 동네라고만 생각했다.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에게 '생장피에드포르'라는 지명은 왠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듯한 어감이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한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뭐 어쨌든 별다른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는 극단적인 P 성향의 인간인지라, 나의 여행은 언제나 계획도 정보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저지르는 식이었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으로 론세스바예스까지 숙소를 미리 예약해 놓은 건지. 이제와 일정을 변경하기엔 이래저래 복잡하다.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훗날'이라고 하면 이생의 날이 아닐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순례길은, 순례길만은 정말로, 언젠가 꼭 다시 오게 될 거란 예감이 든다.




생장피에드포르 기차역에 내려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 좁고 경사진 골목길을 오른다. 바닥엔 투박하게 조각낸 코블스톤이 오밀조밀 박혀 있다. 길 양쪽으로는 하얀 회벽에 빨간 지붕을 얹어 놓은 귀여운 전통가옥들이 나란히 서 있다. 버건디빛 나무로 덧댄 창틀에는 알록달록 꽃화분이 가득하다. 중세 어느 즈음을 배경으로 한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수제 디저트 가게 앞에 서 있는 입간판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당나귀가 반겨준다. 상점이고 레스토랑이고 겉에서만 봐도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데 내부는 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마을 외곽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능선 위로 파란 하늘을 가르며 마녀배달부 키키가 날고 있다 해도 이질감이라곤 전혀 없을 법한 풍경이다.


장 보러 가는 길에 만난 레트리버 한 쌍은 또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도미 비늘처럼 윤기 나는 모발을 흩날리며 우아하게 등장해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발라당 배를 까고 누워버린다.

“날 만져라. 양껏!”


길거리의 빈티지한 나무 탁자 위에는 턱시도 고양이 한 마리가 반쯤 감긴 눈으로 식빵을 굽고 있다.

“야옹아, 안녕!”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도도한 매력쟁이.


생장피에드포르는 순례길의 출발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산뜻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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