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bar 천국] 전창걸 감독의 "떨"

가버린 초록 공동체를 그리며

by 이수정

금기시되는 대상이 대개 그렇듯 대마초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떨 역시 대마초를 칭하는 은어 중 하나다. 푸릇푸릇한 식물을 배경으로 여주인공의 붉은 드레스가 강한 보색 대비를 이룬다. 영화 "떨 "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푸른 잎 사이로 구름처럼 떠다니는 흰 연기의 정체를 알만하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이 식물-대마라 불리는-에게는 죄가 없다. 늘 그렇듯 인간의 과욕이 화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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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떨"은 이 '풀'을 둘러싼 은밀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약류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태도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생의 코너에 몰려있다. 삼류 건달 조준은 싸움 도중 뇌전증을 일으켜 위험에 처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약용藥用으로서의 대마초다. 남편과 헤어진 미나의 인생 역정 역시 서럽다. 그들은 깊은 산속에서 몰래 대마를 재배하는 초성의 집에 모여든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모여든 그들이지만 그들은 곧 '떨'을 통해 하나가 된다. 초성의 집은 일종의 해방구로 변

한다. 준과 미나는 대마초를 흡입하며 숨겨둔 감정을 대면한다. 금지된 약물은 세계의 생생함과 신비, 경이로움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도구가 된다.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의 허를 찌른다. 무거울 법도 한 이야기는 곳곳에 숨겨진 웃음 코드를 통해 균형을 잡는다. 물담배 도구로 등장하는 의외의 물건에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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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대마초를 제조하는 초성의 자세는 구도자에 가깝다. 초성은 단 두 그루의 나무를 길러 소량의 대마초를 제조한다. 꼭 필요한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다. 초성은 우리 고유의(?) 딸을 발굴하는 장인이기도 하다. 파란 운동복 바람으로 연기가 가득한 방에 둘러앉아 피안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60년대 히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마리화나에 의지하던 낭만의 시대는 태평양 너머 이역만리에서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떨'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미나는 대마를 대량재배하자며 초성을 꼬드긴다. 지긋지긋하던 가난에 대한 공포가 그녀의 욕망을 추동한다. 깊은 산속에서 질 좋은(?) 대마초만을 생산하는데 몰두하는 초성의 욕망이 그녀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을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하다.


흰 가루(아마도 합성마약으로 보이는)는 권력과 돈, 조직력이 동원된 마약 카르텔을 상징한다. 수공업적으로 생산한 궐련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기업형 범죄조직이다. 초록 잎이 상징하는 자연 속 웃음의 공동체는 무심한 주사 바늘과 흰 가루가 놓인 공간 앞에 무너지고 만다. 그 칠흑 같은 공간에 관객들은 버닝선 사건을 오버랩한다.


이 영화는 대마초가 무해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약 카르텔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도 아니다. 대마초의 합법화 여부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전창걸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마약을 소재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자칫 소재주의로 흐를 수도 있는 영화를 뻔하지 않게 하는 힘은 웃음을 통한 객관화와 균형 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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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새 있는 시나리오가 영화 전체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능청스럽고도 순수한 대마 농부 초성으로 분한 배우 이달환의 연기가 영화의 구심점을 잡는다. 초반부 전개는 다소 지루하며 감독의 말처럼 화려한 미장센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의도한 듯한 'b급 정서'가 이 영화의 분위기에 걸맞는다. 단 6일 만에 촬영한 이 저예산 영화는 묵직한 주제를 경쾌하고도 발칙한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다.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ott를 통해 배급된다. 전창걸 감독은 영화 해설가와 배우를 거쳐 처음으로 이 영화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직접 영화의 대본도 썼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이 영화는 바르셀로나 인디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풀' 때문에 곤욕을 치른 감독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씁쓸한 블랙코미디에는 역시 씁쓸한 흑맥주가 어울린다. 암갈색 빛깔과 풍성한 거품이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무겁고도 거친 흑맥주의 맛에 중독되면 다른 맥주는 심심하게 느껴진달까. 라거 맥주를 베이스로 하기에 다른 흑맥주에 비해 탄산과 청량함이 살아있다. 알코올 도수 5%인 이 맥주는 캐러멜 몰트의 달큼함 역시 느낄 수 있다. 씁쓸하고도 유쾌한 블랙코미디에 딱 어울리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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