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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Dec 02. 2022

바야흐로 사주의 계절

내 인생은 언제나 잘 풀리나요

미리 밝히자면 나는 모태신앙 크리스천이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가 사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한약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다. 한약 이론이 동양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약학개론 첫 시간부터 음양오행을 다루고, 동의보감 첫 장도 세상 만물의 형체와 기운의 시초를 찾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음양오행을 공부하다 보면 십이간지, 태양력, 사주팔자까지 자연스레 흘러가기 마련이다.


내가 신입생이던 2018년은 유난히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각한 해였다. 그날도 하늘이 황토색으로 뿌연 날이었는데 개론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창밖을 보더니 "올해 왜 이렇게 공기질이 안 좋은 지 알아요? 올해 토(土)가 많아서 그래요. 봐봐요. 올해가 제일 심하고 내년부턴 좀 덜할 거야." 하는 거다.


그때는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중국에서 공장을 하도 많이 돌리니까 그렇지~' 하며 의기양양하게 아주 큰돈을 주고 공기청정기를 샀다. 그해 산 공기청정기는 딱 그해만 열일을 했다. 그러면 나는 해가 갈수록 점점 노는 날이 많아지는 그 값비싼 공기청정기를 보면서 '음.. 교수님 말이 일리가 좀 있는 건가?'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리'의 문제이지, '믿음'과는 전혀 다른 거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고, 죽임을 당하신 후 부활한 것은 덮어놓고 믿지만, 사주팔자는 일리가 없으면 안 믿는다 이거예요!


하여튼, 나는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아져 버렸다. 공부해서 내 사주를 직접 풀어보려 했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한두 번쯤 사주풀이를 들으러 가봤었고, 이번에도 시간을 내어보았다. 마침 지인에게 용~하다는 곳을 소개받아 궁금했던 차였는데 때마침 12월, 바야흐로 사주의 계절 겨울이었다. 겨울의 찬 바람은 나를 술사의 방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가격은 40분 상담에 5만원. 목적은 내 사주를 보는 것이었고 호기심 많은 남편이랑 같이 갔는데,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술사가 대뜸 남편을 보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러는 거다.


"남자분, 풍이나 치매가 좀 일찍 올 수도 있겠는데? 집안에 풍, 치매 오신 분 있어요?" 

"어.. 없는데요."

"술 많이 마셔요?"

"어.. 술 잘 안 하는데요?"


우리 남편은 맥주 한 캔도 다 안 마시는 사람이다. 첫인상부터 내가 얼마나 용한지 뽐내려고 던진 수작이라면 완전히 실패다. 남편네는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에 중풍이나 치매 이력은 대를 건너도 없었다. 그래도"풍이나 치매가 일찍 와서 시끌시끌할 수 있겠어, 건강 관리 잘해요~" 하는데 이건 뭐 악담이야 뭐야. 처음부터 기분이 팍 상했는데 이번엔 내 차례였다.  


"여자분은 친정엔 큰 일 없어요? 친정이 지금 시끌시끌한데~?"

뉘앙스가 딱 친정에 아주 나쁜 일이 있는데 너 알고 있어? 였다. 웃긴 건 아직 내 생시를 불러주기도 전이었다. 사주를 까기도 전에 뭘 안다고 저리 나불대는 것인가, 신내림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수작이지 하면서도 정말 친정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게 없었다. 뭔 일이 있다면 울 엄마의 숙원사업인 서른 중반 남동생의 결혼 프로젝트가 완료된다는 것, 이것은 집안의 경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 시끄러운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니 어이없다는 듯 "친정이랑 연락 잘 안 해요?" 이러는 거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두 번째로 기분이 나빴다.  


술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갑자기 애가 있냐고 묻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본인의 교육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갑자기요? 교육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정도라고 생각하는데요."

"흠~ 교육관이 달라서 남편이랑 시끌시끌 의견 충돌이 있을 것 같은데~?"

"음.. 전혀 없는데요."


이쯤 되니 에이 돈 버렸다 싶었다. 여기에는 어떠한 일리도 없다. 운세고 뭐고 이 사람한테 들을 게 있겠나 싶었지만 시간은 고작 10분쯤 지났을 뿐이었다. 하여 생시를 불러주고 뭐 궁금한 거 없냐기에 작은 가게라도 열어서 사업을 하면 어떠할지 물어보았다. 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직장생활보다 사업이 맞는 사주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어휴~ 꼭 해야 해요? 그냥 남의 밑에 들어가서 조용히 일하지? 지금 사업하면 폭망 해서 집안이 시끌시끌할 거 같은데~ 한 십 년은 조용히 살아야지 안 그럼 시끌시끌해요~ 지금 돈이 들어오는 대운이 아니야. 그냥 팍팍 나가는데 앞으로 십 년이 충이야 충~"


알았다. 이 사람이 좋아하는 말은 시끌시끌이다. 벌써 시끌시끌을 다섯 번은 넘게 들었다.


"그리고 본인 입술이 좀 비뚤어진 건 알아요? 본인 얼굴에 입술이 비뚤어지고 턱이 쑥 들어갔는데 이건 돈이 나간다는 뜻이에요."


이젠 외모 공격까지 한다. 입술이 비뚤어진 건 얼굴이 비대칭이고 기분이 나빠지다 보니 입이 삐죽 나온 탓도 있을 테고, 턱이 들어간 건 교정을 한 탓이 크다. 그럼 난 교정하기 전에는 돈을 모으는 상이고, 교정 후에는 돈이 나가는 상이 된 건가. 재수가 없어도 10년 동안 없다고 단언을 하는데 나는 당신이 더 재수가 없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치 돌잔치 선물처럼 두껍고 샛노란 금팔찌 금반지를 양손에 바리바리 둘렀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사주 풀이 전문가도 아닌 듯했다. 사주 풀어주는 시간보다 관상이 어쩌네 느낌이 어쩌네 지껄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전혀 용하지 않은 자가 자신을 용하다 믿으며 막 질러보는데 우연히 잘 맞으면 용하단 소리 듣고 하나도 안 맞으면 나처럼 기분만 나쁜 거다. 어쩜 저렇게 같은 말을 해도 재수 없게 할 수가 있는가. 돈을 받으면서 이토록 나쁜 기분을 팔아도 되는가. 더는 물어볼 게 없냐는 질문에 없다고 했더니 "오만원이에요" 한다. 지금까지 내가 쓴 돈 중에 가장 기분 나쁜 돈이었다.



 

그럼 나는 왜 사주를 보는가. 운을 믿기 때문이다. 인생 운빨이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무슨 일을 해도 온 우주가 돕는 그 시기에 해서 큰 성공을 얻고 싶은 일종의 욕심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술사가 말하길, 사람들이 자길 찾아와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제 인생은 언제쯤 잘 풀리나요?"라고 했다. 지금까진 인생이 잘 안 풀렸다고, 대체 언제 잘 풀리냐고. 애석하게도 오늘 나도 이런 질문을 했다. 10년 동안 잘 안 풀린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처럼 기분 나쁜 경험도 깨달음을 주는 게 삶이다. 술사 앞에서는 죽겠다는 투로 인생이 잘 안 풀린다 했지만, 정말로 내 인생이 그렇게 잘 안 풀렸던가 곰곰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원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운이 안 따라주는 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돌고 도는 인생에서도 나름의 성취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고, 아무튼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도 있다. 겨울에 추위를 피할 집이 있고, 나는 아직 건강하다. 양가 부모님 또한 건강하고 형제간 큰 불화도 없으니 이 정도면 평탄한 삶이 아니던가.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양귀자 '모순'


바야흐로 사주의 계절이다. 나는 이제 큰돈을 내고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할 바에야 기부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우는 게 낫다는 쪽이 되었다. 그러면 올매나 행복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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