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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하 Aug 01. 2022

데이브 브루벡의 오드 메터, Time Out

<Weekly Motif> 5호 2022.08.01

재즈의 '멋'을 물으신다면, 저는 그를 소개합니다.

Let's take five.
5분만 쉬고 하지.


# 이 주의 모티프

Dave Brubeck의 [Time Out] 감상하기


Editor

 음악은 춤이고, 춤은 우리의 신체입니다. 우리가 4/4 박자에 익숙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두 발을 가졌기 때문이죠. 짝수 박자는 몸을 이용해서 수를 세기도 편하고, 춤을 추기에도 익숙합니다. 이는 우리가 3/4 박자를 이해하는 방식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예요. 원투쓰리, 원투쓰리. 물론 그렇게 마음속으로 숫자를 셀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박자를 더 직관적이고, 명확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방식은 왈츠 춤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원투쓰리, 원투쓰리 - 매 카운트마다 시작하는 발 스텝이 달라지는, 그래서 어딘가 둥둥 떠있으면서도 남몰래 분주한 우아한 춤을. 그러면 이제 강박적으로 숫자를 세지 않고도 박자를 느껴낼 수 있어요. 자, 여기까지 통달한 당신이라면 - 어쩌면 - 5/4박자에서도, 9/8박자에서도 춤을 추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데이브 브루벡이 만들어낸 그 '절뚝거림의 미학' 속에서 말이에요.



① 검은 양복의 쿨 재즈 신사들, Cool Jazz Men In Black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Dave Brubeck Quartet)이 공연하던 당시의 흑백 영상들을 보면 그 단정한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 색소포니스트 폴 데스몬드(Paul Desmond), 베이시스트 유진 라이트(Eugene Wright), 그리고 드러머 조 모렐로(Joe Morello)까지. 그들은 새까만 정장에 새까만 안경을 맞춰 입고는 단지 세어내기도 어려운 박자를 침착하고 계산된 움직임으로 파고듭니다. 그 모습은 흡사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콜린 퍼스 혹은 영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토미 리 존스를 떠오르게 해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굉장한 액션 기술 선보이며 적을 쓰러뜨린 후, 마지막에 위스키까지 마셔주는 그 여유로움 말이에요.

 이들의 재즈는 차갑습니다. 1940년대 말, 도저히 규정할 수 없는 즉흥성과 극한의 테크닉으로 재즈 뮤지션들을 휩쓸고 간 뜨거운 재즈, 비밥(Be-bop)과 달리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쿨 재즈(Cool Jazz)라고 말하기엔 아쉬워요. 오히려 그 지나치게 담백하고 단순하게만 느껴지는 한계점을 타파한, 파격적이고 난해한 실험에 가까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Time Out]은 발매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재즈 앨범 역사상 최초로 백만 장의 판매량을 뛰어넘었습니다. 자꾸만 예상 밖으로 어긋나는 박자, 그럼에도 매번 정확하게 들어맞는 호흡, 폴 데스몬드의 영롱하고 캐치한 색소폰 선율과, 엇박자로 때려 박히는 데이브 브루벡의 피아노 - 그 차분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매력에 자꾸만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나도 거대한 미션을 수행하는 비밀 조직의 요원이 된 것만 같은 그 긴장감이 좋아서요.

 


② 오드 메터(Odd Meter) 속에서 스윙 찾기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Track 3. Take Five 를 먼저 들어볼까요. 앨범 내에서 유일하게 데이브 브루벡이 아닌 폴 데스몬드가 작곡한 곡인데요. 먼저 시원한 라이드 심벌의 잔향 너머로 스네어 드럼이 묘한 엇박의 리듬감을 형성해줍니다. 그 사이로 피아노 컴핑이 마치 경쾌한 구두 걸음 소리처럼 걸어 들어오고, 그 뒤로 길을 잃지 않도록 베이스가 친절하게 강박을 짚어줍니다. 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 마침내 이 절뚝거리는 리듬 속에 진한 시가 담배의 회색 연기처럼 채워 들어오는 색소폰의 멜로디, 그 여유로운 스윙감을 느껴보아요. 자, 편안해졌나요? 이제부터는 소파 뒤로 무게를 싣고 박자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

 수록곡 중에서 특별히 정복욕을 발휘하게끔 한 곡은 Track 1. Blue Rondo a la Turk 입니다. 모차르트와 터키의 악삭(aksak)이라는 민속 리듬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변박'이 대단히 중독적이에요. 언뜻 들었을 땐 화려한 박자들의 향연에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빠른 9/8 박자대로 흘러갈 뿐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욕심 많은 분들을 위한 단락이에요. 같은 박자 안에서도 분할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아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죠. 바로 세 마디의 2+2+2+3와 한 마디의 3+3+3로 이루어진 주기가 돌아가는 구조 말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부가 리듬(Additive Rhythm) - 분할 리듬(Divisive Rthythm)의 반대말 - 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원투 원투 원투 원투쓰리 *3 + 원투쓰리 원투쓰리 원투쓰리. 입으로 불러내려니 발음이 꼬이지만 괜찮습니다. 곡의 중반부터 다소 계산을 요하는 과도기 구간을 지나 스윙이 등장하고, 이후에는 홀수 박자의 절뚝거림과 짝수 박자의 스윙감이 한데 뒤엉켜 나타납니다.

 글로 읽으니 무척 난해하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실은 이렇게 강박적으로 숫자를 계산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이 곡만의 진취성, 결연성, 어딘가 들끓어 오르는 전진의 본능이 느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반면 Track 4. Three to Get Ready는 다소 귀여운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자유로운 '변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요. 앞선 3/4 박자 부분에선 주요 왈츠 멜로디가 흘러가다 4/4 박자 부분마다 베이스의 워킹과 드럼의 스윙이 엉뚱하게 치고 들어옵니다. 마치 기다란 산책길을 걷다가도 꽃 한 송이에, 잔디 한 움큼에, 나무 한 그루에 멈춰 서고 저마다의 냄새를 확인하는 작은 강아지나 어린 소녀처럼요.



③ 앨범 아트에 대한 이야기

 [Time Out] 1959 Columbia Records 통해 발매된 미국의 재즈 앨범입니다. 제가  앨범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지만, 그중에 독특한 앨범 아트도 한몫을 차지합니다. 그래픽 아티스트 S.  후지타(S. Neil Fujita)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선 전체적으로  다운된 보랏빛 색채가 차분하고 사색적인 데이브 브루벡의 머릿속을 표현해주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안의 선과 선으로 이루어진 도형 그리고 불규칙하게 나누어진 구역들은 마치 그가 탐구하는 목록들 같아요. 그의 작업실 안은 내용이 다채로우면서도 과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어쩌면 앨범 아트야말로 오랫동안 그의 앨범을 사랑하게 드는 하나의 요소가 되어주지 않았을까요.




끝으로

 재즈란 미국의 대중음악으로 시작했지만, 음악의 기하학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화성, 리듬, 테크닉 면에서 깊은 집중력을 요하고 그래서 대중들의 차가운 무관심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음악의 예술성이란 '듣기 좋은 것'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때때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이 듣기에 좋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해해보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을 거란 거예요. 누가 저에게 그의 음악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전 대답할 거예요. 그냥, 멋있잖아요! 그저 느껴보아요. 그리고 춤춰 보아요. 이해는 어느 순간 따라오는 것이니까요.




+ 추천 링크. Dave Brubeck - Take Five 흑백 영상 (Live in Belguim 1964) 감상하기





## 이 주의 스토리 :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Pulp Fiction>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또 하나 있죠. 바로 <펄프 픽션> 속의 빈센트 베가(존 트라볼타)와 쥴스 윈필드(사무엘 L. 잭슨)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들과 끝도 없이 무질서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영화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자꾸만 사랑스러운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요. 삶이란 '혼돈'이라는 거대한 질서를 따른다는 위대한 모순에 공감하기 때문일까요. 그 모든 혼돈들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 때문일까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혁신적으로 선보인 편집과 스토리텔링 기법의 기발한 재치 때문일까요. 무엇이 됐든, 저는 아무래도 이런 괴짜스러운 고민이 엿보이는 흔적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구원과 능욕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까만 양복을 입고 권총을 겨누는 쥴스 같은 인물을요. 5/4 박자 위에서 스윙을 해내는 데이브 같은 뮤지션을요.





글 한시하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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