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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야기 요약>
중학교 1학년, 처음 들어간 교실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도현.
기다리던 수학여행 날, 남학생 무리가 과자더미를 들고 나를 찾았다.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라며 과자를 건네던 도현... 옆의 키 크고 말 많던 남자애.
한편, 도현은 그 상황이 왠지 못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나는 집에서 꽤 먼 학교에 배정받았다.
그 학교엔 유난히 돈 많은 집 아이들이 많았다.
정말 그사세였다.
우리 학교 문과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얼마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뛰쳐나가 복도를 배회하던 학생을
교장선생님이 발견하고는 너의 미래를 위해서
들어가서 얼른 공부하라고 타이르자 그 학생이
"엄마아빠가 가지고 있는 빌딩 물려준데요.
공부 안 해도 그걸로 잘 먹고 잘 살 건데요?"
라고 되받아치는 소리가 복도에 울릴 정도였다.
공부를 안 해도 미래가 보장된 그 아이들과 달리,
그렇지 못한 나는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고1, 나는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분일초라도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했다.
대중교통으로 30분, 자전거로 15 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도현을 우연히 마주쳤다.
너무 멀리서 보았기에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그날, 우리 반엔 전학생이 왔다.
담임 선생님께서 전학생을 소개한다며 들어오라고 하셨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큰 키에 커다란 무쌍의 눈을 지닌 훈훈함 그 자체였다.
지나가는 생각으로
'와 저런 애랑 사귀면 어떤 기분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문과 전교 2등이던 나는 학업에 미쳐있었고,
그 생각은 떠오름과 동시에
학업에 대한 집착에 밀려 무의식 어딘가로 튕겨 날아갔다.
우리 학교에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얼마 없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뒷자리를 선호했다.
따라서 앞자리는, 부탁만 하면 받을 수 있는 공짜 구역이었다.
난 언제나처럼 담임 선생님께
맨 앞자리를 배정해 줄 것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자리를 바꾸는 날,
역시나 맨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짝꿍이 글쎄,
바로 그 전학생이었다.
우리 반은 남자는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짝이 되는 시스템이지만
남학생, 여학생이 모두 홀수라
남는 한 명의 여자와 남는 다른 한 명의 남자는
유일하게 한 쌍의 남-여 짝이 되어야 했다.
선생님... 앞자리를 부탁드렸지 전학생을 부탁드리지는 않았는걸요!
전학생 뒷자리에는 나와 친했던 혜인이가 앉아있었고,
책만 들여다보던 내가 알아챘을 즈음에는
혜인이와 전학생이 유독 친해져 있었다.
둘은 점심시간에 밖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학교 끝나고 남아 대화를 하기도 했다.
"오~ 뭐야, 뭐야! 혜인이 사귀어?"
"아, 그냥 고민이 있다고 해서 들어준 거야. 그런 것 아니야."
물론 저 말은 절대 믿지 않았다. 누굴 바보로 아나!
하지만, 저 말은 진실이었고, 믿었어야 했다.
바보는 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내 자전거의 잠금장치가 풀려있었다!
다행히 자전거는 멀쩡했지만,
우리나라는 핸드폰도, 지갑도, 노트북도 안전하지만
자전거만은 도난당하는 엄복동의 나라가 아닌가!!
학생이었던 내게 그 자전거는 꽤나 비쌌기에
나는 충격에 빠져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전학생이었다.
"아.. 아니, 이거 잠금장치가 풀려있어서... 누가 훔쳐가려고 했나 봐."
"어, 그러게? 이거 비밀번호 바꿔야겠다."
"어떻게 바꾸는지 알아?"
전학생은 잠금장치를 한참 보더니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부분의 뚜껑을 열었다.
"여기 리셋 보이지? 이쪽으로 돌리면 돼. 지금 바꿔줄까?"
난 내 우리 집 비밀번호였던 비밀번호를 새것으로 바꿨다.
내 생일로ㅋㅋㅋ
더 어려운 걸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던 걸까?
내가 더 쉽고 멍청한 비밀번호로 바꾸는 동안,
전학생은 비밀번호 보호를 위해 눈까지 감아줬다ㅋㅋ
지금 생각하니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네.
어쨌든, 그렇게 비밀번호를 바꾸고 대화를 시작한 우리는
지하철 역까지 같이 걸어갔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알고 보니, 혜인이가 해주던 전학생의 고민상담은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공부만 해서 짝인데도 말 한번 걸기가 너무 어렵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비밀번호가 풀린 그날도, 원래 다른 길로 가려했는데
내가 자전거 앞에서 멍 때리고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다시 돌아서 온 것이라고...
그는 내가 학업에 미쳐있는 것을 알았기에
방해가 안되게 배려해 주겠다 약속했고,
그렇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
수학이 약했던 나는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했다.
도현이었다!
그 역시 대치동에서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도현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내 손톱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내 손톱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나 뭐라나
그 당시 나는 어쨌든 만나던 남자친구도 있었고,
오랜만에 도현을 봐 반가웠지만
반가움,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이게 도현을 보는 마지막이겠지?
이젠 다 잊을 것 같다!
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중학교 때 친했던 진구가 자신이 도현과 함께
동네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같이 놀자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다시 마법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다음 이야기: 19살, 다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