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신이 휴가에서 단 일주일 만에 돌아올 것이란 생각은 지극히 한국인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주 5일을 기준으로 앞에 주말 이틀, 뒤에 주말 이틀을 합쳐 무려 9일을 쉴 수 있으면 가장 행복한 한국인의 휴가이겠지만 유럽이나 미주 같이 다른 대륙으로 여행을 하려면 그 정도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에게도 적어도 2주간의 휴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신은 혀를 끌끌 차며 한 달을 쉰다는 유렵인의 예를 내세우며 반발할 것이 눈에 선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시간이 주어진 만큼 지난번에 끝내지 못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서 마저 신의 힌트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지하 9층 주차장 같았던 지옥에 이어 지상 건물 연옥과 천상 건물 천국에 대한 연구이다.
먼저 연옥은 지옥이나 천국과 달리 상당히 난해하여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옥과 천국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옥은 누가나 쉽게 가고 천국은 입장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반면 대부분의 가능성은 여기 연옥이라는 학교에서 교화 과정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옥은 신이 인간에게 상당히 기회를 부여한 자비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법카로 성심당에서 빵을 백만 원어치 먹지만 않으면, 참사를 당한 유가족을 비하하지만 않으면, 좌우파 영화와 배우를 나누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지만 않으면, 환승연애 하지 않고 생전에 솔로지옥을 미리 경험했다면,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티몬이나 위메프 사기만 치지 않았다면, 웬만하면 지옥에 가지 않고 이 연옥에서 반성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갱생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먼저 연옥의 구성부터 살펴보자. 연옥을 아주 쉽게 설명하면 7층 짜리 단층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데 1층은 필로티 구조라서 실제 1층은 2층부터 시작되어서 실제 높이는 8층이고, 여기에 옥상에 지상낙원이라는 옥상정원이 있는 특이한 구조를 나타낸다. 각 층은 일곱 가지의 대죄,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에 특화되어 있다. 필로티 구조를 만든 이유는 참회에 태만했을 경우 연옥에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자신의 인생만큼 이 필로티에서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게 끔 일종의 대기 장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전연옥 : 입구가 있는 아파트 필로티에 해당한다. 파문된 자들이나 뒤늦게 참회한 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평생직장이 없어진 마당에 파문이라는 정리해고 제도도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이 필로티의 역할은 일처리 지연에 따른 구청 민원 대기 장소 비슷한 용도로 쓰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상 1층 교만 연옥 : 교만의 죄를 지은 자들이 죄의 무게에 따라 바위를 짊어지고 있다. 바위로 트레이닝을 하는 헬스장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오데리시'라는 화가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가들은 은근히 그리는 실력을 뽐내기를 즐겨했으리라고 추정되며 요즘으로 치면 인스타 같은 데서 자랑질과 잘난 채를 일삼으면 전망 안 좋은 1층이 배정된다고 보면 된다.
지상 2층 질투 연옥 : 질투의 죄를 지은 자들이 눈꺼풀이 철사로 꿰매진 채 벌을 받고 있다. 질투심에 잘 보이고자 쌍꺼풀 수술을 받고 있는 것을 단테가 오해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지상 3층 분노 연옥 : 분노의 죄를 지은 자들이 짙은 연기 속에서 벌을 받고 있다. 지하 5층 분노 지옥과의 구부이 모호하다. 격노하면 지옥, 격노의 불의를 보고 단순히 분노하면 연옥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일 수도.
지상 4층 나태 연옥 : 나태의 죄를 지은 자들이 계속 달려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러닝 머신이 대량 설치된 종합 헬스장이다. 살도 빼고 천국에 걸맞은 외모를 얻을 수 있다.
지하 5층 탐욕 연옥 : 탐욕의 죄를 지은 자들이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위그 카페'란 더러운 정치 공작을 일삼는 자가 수용되어 있는데 정치 검사를 위한 특별 공간으로 보인다. 검사는 여기서도 우대를 받고 있다니 놀랐다. 형벌도 굴욕적이지만 비교적 쉽다.
지상 6층 탐식 연옥 : 탐식의 죄를 지은 자들이 비쩍 마른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다. '포레세 도나티'란 자가 수용되어 있는데 피렌체 출신의 교황파 귀족이자 시인이었다. 탐식은 원래 지옥행인데 지역 연고 찬스는 여기서도 통한다고 보면 된다. 쥬비스 다이어트에서 광고 협찬을 받아 쥬비스 다이어트 연옥이라는 명칭을 검토 중이다.
지상 7층 색욕 연옥 : 색욕의 죄를 지은 자들이 불의 장막을 지나가는 벌을 받는다. '귀도 귀디첼리', '아르노 다니엘'과 같은 시인들이 수용되어 있는데 사랑의 시를 읊다 보면 쉽게 색욕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지하 2층 색욕 지옥과 겹치는데 내로남불이 여기서도 통하는 것일까?
옥상 지상 낙원 : 연옥의 꼭대기에서 단테는 지상낙원에 도달하여 마침내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천국으로 가기 위한 대기 장소로 보인다. 나름 펜트하우스인데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연옥의 특징은 뭔가 지옥과 죄목이 비슷한데도 누구는 지옥에 누구는 연옥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하 2층 색욕 지옥과 7층 색욕 연옥은 죄가 겹치는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이때에도 이중적 잣대를 드러낸다. 더군다나 단테가 금사빠에 빠졌던 베아트리체는 유부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상낙원에 있는 것은 지옥 교도소장인 단테의 특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지하 3층 폭식 지옥과 6층 탐식 연옥도 비슷한데 폭식만 하지 않으면 기회가 주어진 다는 점에서 먹는 데는 너무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는 점에서 긍정적 발견이었다.
연옥도
피곤하지만 신이 언제 휴가에서 돌아올지 모르므로 마저 천국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천국은 지상에 위치한 아파트는 아니고 하늘, 혹은 우주에 떠 있는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구조인데 하늘에 떠 있을 뿐이지 아파트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필로티가 있는 9층 구조, 그러므로 실제는 10층 높이의 아파트이고 연옥과 마찬가지로 꼭대기에 옥상 정원이 존재한다. 이 당시에는 지붕이 막힌 펜트하우스 보다 지붕 없이 뻥 뚫린 자연에서의 호화 캠핑, 즉 글램핑을 더 높게 쳐주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옥상 정원을 제외한 9층까지는 단테의 평생의 연인이자 천국공인중개사 베아트리체가 안내를 도와준다. 지옥과 연옥이 3일간 안내를 받은데 피하여 천국은 1일간 숏타임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단테도 지옥과 연옥을 쓰다가 마찬가지로 피곤하였음이 짐작된다.
필로티 화염천 : 지구와 달의 중간 경로이자 불의 근원이 있는 곳. 용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단테 당시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가장 아래층에는 필로티 구조, 가장 위에는 옥상 정원 구조가 필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천상 1층 월성천 : 착하긴 한데 끝까지 충실하지는 못했던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착해 빠져 가지고"라는 말이 생각난다. 착하기만 해서 야무지게 뭔가를 해내지 못하거나 답답하게 보였던 사람들이라면 비록 전망이 좋지 않더라도 마음껏 뛰어도 되는 1층이라도 분양받을 수 있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천상 2층 수성천 : 야심 있는 자들이 머물고 있다. "야심 있는 것이 천국에 갈 일인가?" 의문이 들지만 천상 1층의 '착해 빠진 사람들'과 대비하여 뭔가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보다 위층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착해 빠진 게'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천상 3층 금성천 : 사랑에 불탄 자들이 머물고 있다. 색욕에 빠지면 지옥 또는 연옥행인데 사랑에 빠진 자들은 무려 3층이라니 불타게 사랑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다.
천상 4층 태양천 : 지혜로운 자들이 머물고 있다.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 왕을 비롯하여,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들어본 이름이다. 지혜가 학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천상 5층 화성천 : 용감한 자들이 머물고 있다. '카치아구이다'라는 단테의 고조부도 머물고 있는데 단테는 무척 용감하게도 자신의 가문을 용감한 집안으로 추켜 세운 것 같이 보인다. 신성로마 제국의 시조로 여겨지는 '카룰루스' 대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 등이 머물고 있다. 불의와 싸우는 파이터라면 주저함이 없어도 괜찮을 듯싶다.
천상 6층 목성천 : 정의로운 자들이 머물고 있다. 특이하게 개개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독수리의 일부로 머물고 있는데 밧세바와 불륜을 저질렀던 '다윗'이 지하 2층 색욕 지옥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것은 역시 내로남불의 의문이다. 뭔가 형량 거래가 가능하다는 증거인데 로마제국의 최전성기의 황제 '트라야누스', 밀라노 칙령을 공포한 '콘스탄티누스 1세' 등도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건을 재심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천상 7층 토성천 : 사색에 빠진 자들이 머물고 있다. 구분이 다소 모호하다. "사색 이라니?" 천국의 도서관 같은 곳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하루라면 천국에 들어가고도 남겠다고 생각되었다.
천상 8층 항성천 : 악과 싸워서 승천한 개선의 영혼들이 머물고 있다. '야고보', '사도요한'과 같은 성경 속 인물들이 머물고 있지만 요즘으로 치면 빌런과 싸우는 슈퍼히어로들의 본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천사를 제외한 사실상 민간인이 분양받을 수 있는 최고 전망의 층이다. 그만큼 빌런은 많고 그들과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히어로는 중요하다.
천상 9층 원동천 : 물리적 우주의 마지막 영역. 천국의 펜트하우스. 이 펜트하우스는 회전식으로 건물 자체가 돌아 사방의 전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세라핌, 케루빔과 같은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원래 천국의 조합원이나 가능한 영역이다. 수분양자에게는 뭔가 아쉬운 층이다.
옥상 지고천 : 신이 사는 곳. 신뿐만 아니라 신의 혈연관계, 일부 천사, 아담과 이브, 심지어 베아트리체도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입주 기준이 들숙날숙 의심이 가는 곳이다. 왜 건물주를 갓물주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갓물주, 신이 바로 이 최고층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 당시는 펜트하우스 보다 글램핑을 선호하였기에 옥상에 머물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신은 재건축을 한다면 더 이상 옥상에 살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연옥과 천국은 아래는 필로티, 위에는 옥상 정원을 갖춘 각각 7층과 9층이라는 그 당시로는 꽤 높은 초호와 빌딩으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현재로서는 천국 입주권에 대한 메리트는 현저하게 떨어졌으며 오늘을 살기에도 바쁜데 나중에 천국을 갈 수 있다는 여행 상품은 부도 직전에 이르렀다. 티몬과 위메프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신이 보증한다고 해도 언제 부도가나 천국 상품권이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신이 굳이 이 시점 휴가를 간 이유는 뚝뚝 떨어지는 천국 아파트 가격과 미분양 사태에 대해 종합부동산 대책 같은 것을 수립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추론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분당 아래 천국이라는 말이 생겼으며, 이제 천국 아파트는 과거에 비하여 가격이 반토막 나고 미분양에 강남 아파트와는 견출 수도 없는 보다 애물단지 구축 아파트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강남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원하지 누가 겨우 천국빌라 잘해야 5~7층을 원할 것이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연옥이나 천국은 지옥보다 훨씬 더 리모델링, 아니 시대에 맞게 재건축이 필요해 보였다. 천국은 땅값이 높으므로 용적률 완화 혜택을 받아 현재 10층 미만에서 100층의 초고층 파라다이스로 재건축을 해서 분양하면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국 입주권에 대해 전매 제한을 풀면 상당한 메리트가 될 수도 있다. 지하 9층 지옥 주차장에 이어 지상 9층 천국 아파트를 분석하니 더욱더 신의 고민이 이해가 되었다. "다음에는 천국 아파트 재건축 계획 의뢰를 제안해 볼까?", "신이 휴가 중이라고 선을 넘지는 말자. 일단 성격연구 보고서부터 마무리하자고" 그래도 단테를 통해 신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더욱 한걸음 다가간 것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