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H Jul 04. 2023

나는 너무 예민한 사람

Higly Sensitive Person의 특성

기억이 남아있는 가장 어린시절부터 난 남들과 다르는 걸 알았다. 뭐가 다른지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무리에 섞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작은 변화에도 불안하고 잔뜩 긴장해 있었다. 커가며 내 모습이 집단이 정상이라고 하는 것에서 많이 벗어나면 이상하게 본다는 걸 깨닫고  가급적 불안정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려면 주위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해야 하고 억지로라도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척 해야했다. 피곤해도 얼굴에 미소를 고정시키고 남들처럼 리액션 하며 여유있는 척하는 것은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표준분포곡선에서 표준편차범위 밖에 존재하는 마이너

인위적인 보호막을 치면 사람들의 의심은 피할 수 있지만 활동 에너지는 급속도로 닳는다. 친한 친구는 내 본 모습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보호막이 풀리는 시점은 귀신같이 캐치했다. 컨디션이 안좋을땐 만난지 두시간쯤지나 에너지가 방전되어 어쩔 수 없이 보호막이 풀리면 순간 무표정과  피곤한 기색이 그대로 번져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벌써 피곤해진거냐며 놀리면 급하게 내일 쓸 에너지를 땡겨와서 애써 활력이 있는척 했다. 하지만 머리속은 온통 집에 빨리 돌아가  충전기 잭을 머리에 꽂아 드러눕는 생각만 가득차게된다.  

방전직전까지 몰고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저 사회성이 부족해서 혹은 에너지가 딸려서 그렇겠거니 여겼는데 내가 정상인간의 기준에 못미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 인간과 다른 기준을 가진 특이한 집단에 속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임상심리 전문가인  엘레인 애런(Elaine Aron) 박사는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감각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인구 집단과 다른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들의 공통적인 감각반응 특징을 따서 '너무 예민한 사람' (Highly Sensitive Person, HSP) 이라고 이름 붙였다.   


HSP 성향을 묻는 질문에  줄줄이 YES를 체크하게 되자 마치 오랫동안 숨어지내던 토착 스파이가 얼결에 정체를 들킨듯한 충격을 받았다. HSP 집단은 그저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이라거나 쉽게 상처받는 인격장애 혹은 은둔형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것이 아니었다. 예민한 사람들에게 가질수 있는 흔한 인식과 달리 HSP의 30%는 외향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고 여성적 성향으로 보이지만 남녀의 비율은 동일했다.


의외로 HSP는 전체 인구의 15% 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 내 주위엔 나말고는 안보이는 걸로 보아  아마도 나같은 부류의 종족들 중 많은 이들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거나 나처럼 아닌척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혹시나 내가 HSP성향인지 아닌지 궁금하거나 주위에 이런 비슷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이해를 돕기 위해 HSP를 나타내는  4가지 특징(DOES)을 간단히 요약해 보았다.    


HSP가 사는 방식, DOES

Depth of procession (사고의 깊이)

우리 모두가 주위의 다양한 자극에 노출되 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에 따라 별거 아닐수도 있고 태산에 짓눌린듯 압도 당할 수 있다. HSP성향들은 대부분 모든 자극의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의 경험과 견주어 이리 저리 곱씹고 판단한다. 이것은 일부러 그런다기 보다는 습관이나 본능에 가깝워서 스스로도 힘들지만 바꾸지를 못한다. 그래서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면 다른 이보다 깊게 생각하느라 죽도록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춰질때가 있다.   


Over stimulation (과자극)

세세한 변화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반응하기 때문에 상황이 복잡하거나 길게 지속되면 더이상 소화하지 못하고 자극에 포화되어 흔히 말하는 컴퓨터 다운되는 상태가 된다  HSP들에게 낮에는 하루종일 관광하고 클럽에서 저녁을 불태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낮동안 들어온 자극을 소화하는 것도 벅차 오후가 되면 하루에 할당된 에너지는 바닥나게 된다. 이런 한정된 배터리 량을 이해못하고 남들 따라 계속 에너지를 써대다간 정말 완전방전을 경험하게 된다. 완전 방전이 되면 배터리 수명이 닳는 것과 마찬가지로 HSP는 예비력을 남기않고 몸을 혹사시키면 그 어떤 것도 할수 없는 셧다운 상태가 된다.


Emotional reactivity/ Empathy(감정적 반응성 혹은 공감성)

HSP는 주변의 감정경험을  할때 풍부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감정 경험을 할 수록 사고와 인지능력의 잠재력이 증폭된다. 상대의 감정에 이입도 잘되어 사진속 사람들의 표정으로도 행복감 혹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뇌의 거울신경세포는 우리가 다른이의 행동을 관찰할때 그 행동에 작용하는 신경세포의 거울이미지 처럼 유사한 신호를 전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를 모방하는 거울신경세포가 하는 것처럼 HSP는 주변인의 감정과 의도까지 복사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공감을 형성한다. 쉽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은 가스라이팅도 쉽게 당할 수 있는 약점이 된다.  


Sensing the subtle (예민한 감각)

HSP를 가장 대표하는 특성이 바로 감각 자극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600만불의 사나이 혹은 소머즈(올드 미드)처럼 시력이나 청력이 일반인 보다 월등하거나 초인적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반적인 냄새 촉각 미각에 대해 남들보다 과하게 반응하는 특징이다. 예를 들자면 옷 안감에 붙은 택은 대부분 신경쓰지 않는데 HSP 타입은 계속 쓸리고 통증까지 느끼기 때문에 새옷을 사면 바로 제거해버린다. 촉각 뿐아니라 청각 시각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예민함은 자폐스펙트럼장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드라마에도 큰 소음이나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자폐 성향주인공이 등장한다. 남들은 기본 배경으로 지나칠 수 있는 일상적 감각자극이 하나하나 의미있는 강도로 누적되어 감각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길고 어렵게 설명했지만 짧게 종합해 보면 HSP 타입이라는 것은 흡사 조그만 자극에도 팔딱팔딱 난리가 나는 유리멘탈 개복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HSP가 살아남는 법

무던하고  은근한 사람이고 싶지만 이건 내가 노력한다고 바뀌는 영역이 아니라 이렇게 타고난 결과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내가 HSP 성향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후  왜 남들과 다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쓸데없는 마찰로 에너지를 잃지않을까를 연구한다.


옷이 조이거나 불편하면 하루종일 몸을 뒤틀게 되고 신발에 굽이 3센치라도 있으면 발이 쪼개지는 통증으로 다리를 절어야 한다.  예전에는 그런 고통을 참아가며 패션을 추구할때도 있었지만 만족은 잠깐이고 이로인한  데미지의 복구는 너무 더뎠다.  결국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고 삶이 부드럽게 흘러간다는 결론을 내렸고 메이컵, 굽이 있는 구두, 타이트한 스커트 등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카페인과 알코올은 아주 미약한 수준에서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까지만 즐긴다. 비록 우리사회에서는 소주 한병까지는 즐겨야  인기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인기인이 되는 건 다음생을 기약해야할 듯하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량을 줄이는 요령이 생겼다. 기가 쎈 사람들은 HSP성향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격한 감정들은 내가 소화하지도 못하고 꼬여있는 감정선에 얽히면 내 행복감도 같이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가급적 편하지 않은 상대는 깊은 대화로 엮이기 전에 요리 조리 빠져나간다. 물론 그들이 단정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의사결정이나 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사교적인 모임 혹은 친구들과 노는 자리에서도 모두가 엔딩을 선언할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는 것을 하지 않는다.  남들따라 끝까지 견디다가 회복불가의 방전 이벤트를 여러번 겪고 나서 이제는 누가 뭐라든 내가 지치면 벌떡 일어나 귀가양해를 얻어 나간다. 물론 나의 특수한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 모임이 한창 재미있어지려는데 집에 가겠다는 나를 재미없게 여긴다. 하지만 나의 가치는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내가 정하기 때문에 크게 게의치 않는다.


요즘 이전에 몰랐던 내 몸의 특징을 하나하나 발견하는것이 재밌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제거리도 아닌 것들에 규칙을 세워야 하는게 삶의 제약으로 비춰질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을 제대로 몰라 결국 셧다운까지 감수했던 지난날과 비교하자면 이제는 내가 편안하게 주위를 세팅, 기획해서 좀더 능동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

 

세상엔 온갖 형태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내가 그들을 대표하는 인간 타입이 아니라고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다.  인생에서 가장 빈곤한자는 내가 가질수 없는 것을 가지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런면에서 지금의 나는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월 구독료 150만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