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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Feb 20. 2024

먹을까 말까 고민될 땐

누구에게 물어볼까

떡으로 도파민 좀 올리자

애나 렘브케 박사는 저서  도파민 네이션 에서 참을 수 없는 유튜브 컨텐츠, 넷플릭스, 그리고 초콜렛과 과자들의 유혹이  도파민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에 납득당한 우리들은 이제 끊기 힘든  중독을 도파민이라 부른다. 그럼 내가 주기적으로 쫄깃한 떡을 목이 미어져라 먹고 싶어진 것도 바로 도파민의 농간이다. 물론 원인을 안다고 저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떡이 아니면 도파민은 꿈도 꾸지 말라는 몸의 협박에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식감때문에 백설기보다 인절미, 찰떡, 가래떡을 더 좋아한다. 쫄깃한 가래 떡 한줄에 밥 한공기이상 들어간다는  '괴담'(또는 사실)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떡이 도파민을 짜내  쾌락을 주는 것은 건강식품이라기 보다 에너지가 집약되어서다. 건강은 평소 먹는 밥에서 찾고 떡에게는 그냥 행복감만 기대해야 한다.


근처 떡집 가서 하나 사먹으면 되는데 무슨 엄청난 떡을 먹겠다고 습관처럼 쇼핑사이트를  이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만만한 네이버쇼핑에서 '떡'을 키워드로 넣고 평점이 높은 것부터 정독하니 주문떡은 크게 생떡냉동떡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주 유명한 떡집들은 주문을 받아 새벽에 갓지은 떡을 바로 배송해 준다. 받자마자 말랑 말랑한 떡을 맛본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대는 80~100g 1개에 2000원선으로 높다.

적당히 유명한 보통의 온라인 떡집들 혹은 대량생산하는 떡브랜드들은 떡을 만든 다음 급랭해 저장하고 주문을 받으면 냉동떡을 배송한다.

 바로만든 떡은 아니지만 냉동 떡은 50~80g 1개에 1000원 꼴로 저렴한편이고 배송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떡을 고를까

 말랑한 떡이 아무리 맛나도 1인 가구는  한번에 다먹지 못해 대부분 첫날부터 냉동실 행이다. 첫날의 감동만 포기하면 결국 둘다 해동해서 먹는거니 가성비 높은 냉동떡으로 결정했다. 물론 냉동떡집도 무수히 많아서 선택이 끝난건 아니다. 집요하게 훑다보니 후기좋고 먹음직스런 떡들이 몇개 레이더에 걸렸다.

내 원픽들만 모여있는 사진에 눈을 못떼는 것을 보아  이미 이집에 맘이 기운듯했다. 하지만 주문전 필수인 성분보기를 하다 갸우뚱한 점을 발견했다.


중국산 팥썼다느니 백설탕을 많이 썼느니 트집잡으려는게 아니다. 가격과 타협하려면 냉동떡에 비싼 국산 팥이나 원당을 쓸 수는 없다. 게다가 달달해서 맛있다면서 설탕양으로 뭐라하면 욕먹는다.


내 레이더는 읽어도 뭔지 모르겠는 '트레할로스'와 '슈퍼소프트 M'에 알람을 울렸다.  

과거에 떡을 만들었 선조들은 못 넣었을 저 영어재료는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이 떡이 특별한 이유는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면서 보존료, 감미료, 착색료가 안들어서라고  굵게 강조했다.

이미 깊은 풍미와 탱글탱글한 식감을 갖추고 있는 떡에 보존료, 감미료, 착색료도 아닌 트레할로스, 슈퍼소프트엠은 왜 들어갔나.  


역할 없는 식품첨가물은 없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공식기준은 식약처가 정해놓았겠지만 내 기준에선 그 음식에 꼭 필요한 재료가 아니면 모두 첨가제다. 두유에 콩(가루), 물, 소금, 설탕이면 된다. 그러니 시판두유를 보면 이 4가지 말고도 재료가 빼곡하게 한가득이다.  글리세린지방에스테르, 아라비아검, 산화규소, 탄산 칼슘, 햡성향료처럼 분명한 것과  혼합제제, 영양강화제라는 두리뭉실한 이름으로 감춰것까지 합치면 10개를 넘긴다.

건강한 식물성 우유로 알려진 어메이징한 오트우유도 내가 쉴드 쳐주기 어렵다. 산도조절제, 유화제 거기다 심지어 식용유까지 첨가(?) 하지 않았나. (고소한 맛을 내는데 기름만한게 없지)

유명한 두유와 오트우유  속 첨가물들


 이들 성분을 나열하지 않아도 콩과 물로만 두유를 만들때 아쉬운 목넘김, 맛, 질감 등을 보완하고 보존기간을 늘려주는 각각의 필수역할이  있음은 분명하다. 두유, 오트유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 떡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떡은 만드는데는 다채로운 기술이 필요할지 몰라도 재료는 비교적 단순하다.  떡의 베이스는 (찹)쌀가루, 설탕, 소금, 추가로 쑥정도면 충분하다.  근데 꿀, 기름 혹은 밀가루도 아닌 생뚱맞은 트레할로스, 슈퍼소프트M을 썼다니. 혹시 이것은 마성의 맛을 내는 은밀한 재료인가?   갑자기 먹거리 X파일 PD가 된것 마냥  비밀을 찾으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다행히 이들 정보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트레할로스

트레할로스(trehalose)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당분이지만 독특한 특성으로 가공식품에 잘 사용된다고 한다.  당분의 일종인데 과당(Sucrose)보다 단맛은 45%정도로 낮고 대신 건조나 냉동과정에서 식품의 질감 잘 유지시켜  냉동식품, 구움 과자, 건조과자 등 가공식품에 두루 쓰인다.  

혹시나 했지만 다행히 미국 FDA 유럽 EFSA에서는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보고 적정사용량내에서 특별한 사용규제가 없었다.  먹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길거 같은 물질은 아니지만 냉동떡의 쫀득한 식감에 기여하는것 같다.


슈퍼소프트엠

슈퍼 소프트엠은 알파아밀레이즈(alpha-amylase)를 옥수수 전분에 섞은 식품첨가제이다. 침속에도 있는 아밀라아제는 전분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다.  침성분을 를 왜 쓰나지 싶지만 나름 식품첨가물 시장에서는 인기 물질이었다. 떡성형을 하는 인절미, 바람떡 등에 쌀가루대비 0.3~0.5% 넣으면 떡 노화를 방지한다고 한다.

 빵을 구울때 크러스트 색을 먹음직스럽게 하고  씹는 맛을 높여줘서 제빵에서도 쓰인다고 한다. 알파아밀레이즈 역시 비교적 안전해서 위험경고가 내려진 적은 없는것 같다.  (대량생산 과정과 관련한 과민반응, 알러지를 일으키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다.)


사실 언제부턴가 떡이 의심스럽긴 했다.  찹쌀떡 맛집이라고 유명한 곳을 직접가서 사왔는데 어찌나 말랑말랑 맛있던지.. 그런데 냉동시키는 것을 잊고 이틀 마루에 방치시켰다가 발견했을때도 처음 모습 그대로 말랑거렸다. 웬지 떡에 뭔가 장난친게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생겼는데 마치 한 달, 일 년이 지나도 말짱한 맥도널드 버거를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냉동떡이 아니라도 첨가물이 들어갔을 거 같은 합리적인 의심에 이르렀다. 그래서 생떡을 배송하는 떡집에서 공개된 성분을 몇개 찾아 보았는데  역시 있었다.

이름하야 파인소프트.

특유의 쫀득함으로 인기를 얻은 영양찰떡집의 비결은 파인소프트

파인소프트

파인소프트는 히드록시프로필 전분과 설탕 분유가 석인 혼합물로  떡의 굳고 갈라지는 노화현상을 방지해주는 첨가물이다. 사실 떡에 들어가는 혼합물인데 탈지 분유가 섞여 들어간다는 사실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떡이 완전한 채식음식이라 여겼다.  검증되지 않은 음식은 모조리 아니라고 생각해야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다. 덕분에 너무 말랑한 떡은 채식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의심병을 얻었다.

떡의 홍보 문구

이 영양찰떡집은 10년의 떡개발에 열정과 정성을 다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떡의 말랑함의 비결에 10년간의 정성 보다 파인소프트의 역량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떡도 이젠 가공식품

식당에서 먹는 백반이 집밥이 아닌것처럼 밖에서 사먹는 떡은 더이상 내가 아는 '떡'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 찹쌀밥을 하고 뜨거울때 치대고 고물을 무치고 뚜걱뚜걱 떼어 먹는  떡은 냉동시켜두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어김없이 딱딱해진다.

사람들은 떡이 계속 말랑하기를 바라고 식품회사는 사람들의 바램을 충족시키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자연적인 떡의 노화를 이겨낸 슈퍼 떡이 팔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거의 일년동안 상하지않고 바삭바삭한 과자가 바로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 가공식품아니었던가.  대량판매되는 떡도 아닌척했지만 슬금슬금 가공식품이 되가고 있었다.


끽해야  트레할로스와 슈퍼소프트엠, 그리고 파인소프트 세개의 첨가물은 과자에 들어가는 열댓 개 첨가물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다.

 과자와 음료의 아스파탐은 발암물질이라고 밝혀졌지만 뉴스까지 나서서 10캔까지 괜찮다고 두둔해주는 마당에  트레할로스 등은 심지어 건강 이상도 알려진바가 없다.  

아이들의 초코송이에는 대체 몇가지 첨가물이 들어간건가

과자는 되는데 떡은 안된다는 내 편파적인 기준은 비난받을만 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트레할로스, 슈퍼소프트엠, 파인소프트가 들어간 떡을 주문하지 않았다. 기어이 쌀, 소금, 설탕, 쑥으로는 떡집을 찾아내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50, 60대가 되어도 주름이 하나도 없고 입술이 더 도톰해질때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서 조금 당황스럽다. 떡의 노화는 이런 인간의 늙음과 비슷하다 느낀다.  

떡의 부드러움과 말랑함은  만든지 얼마안되었다는 표시이고, 딱딱해짐만든지 시간이 지났으니 참고하라자연의 암묵적 사인이다. 그런 상호 약속을 저버리고 이틀 삼일이 지나도 처음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미이라 떡은 아무래도 입에 넣고 싶지 않다.

  

할머니 판별법

먹는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음식 칼럼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이런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In Defense of Food]  

"할머니가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 무엇이 됬든 먹지 말아라. 뭘 먹든 간에 뒤에 니가 발음하기도 힘든 성분이 5개이상되는 건 고르지 마라." 


가공식품을 평가할때 우리 몸에 해로움이 분명해지기 전까지는 계속 먹어주는 현대인의 너그러움에 일침을 가하는 표현아닐까 생각한다. 

 

나이많은 우리엄마는 분명 파인소프트나 트레할로스가 뭔지 몰랐다.  게다가 난 떡의 첨가물을 5개까지 허락할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후기가 좋은 여러 떡집들이 탈락했다.


여튼 난 심플한 재료의 냉동떡을 주문했고 엄마에게는 바로 만들어 배송해주는 유명떡집을 주문해주었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부모님 집이 멀어서 도착부터 떡이 좀 단단했단다. 냉동시키고 자연해동해도 말랑하지않자 이번 떡집은 별로라고 엄마는 막 투덜투덜 하신다.


엄마에게는  '이런...  렌지 돌려 드셔야겠네요'하며 아쉬움에 동조했지만,

속으로는 '진짜 첨가물 안 쓰는 집이구만! 담에 나는 거기주문해야지' 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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