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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Dec 23. 2022

약 먹고 살빼볼까?

약 먹으면 살은 '절대' 빠진다.

끝나지 않는 전쟁

엄마나이가 되면(할머니) 먹고 싶은것 원없이 먹을수 있겠다 하며 부러워한적 있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별로 할머니 혜택을 누리는거 같지 않다. 입맛이 돌아서 한동안 잘 드시다가 얼마지나지 않아  체중계에 올라서서  깜짝 놀란 다음 먹고싶은걸 참는 시즌에 돌입하신다. 여자는 평생 다이어트 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져도 체중 증가에 그리 관대해지지 못하는건 체중은 단지 몸의 무게라기 보다 나라는 존재의 특성이고 원치않는 체중 증가는 주체성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늘 원하는 체중을 위해 노력하다가 정상에 오르면 다시 미끄러지고 또 노력하는 반복적인 행동은 신화속 시지프스와 닮았다.

시지프스의 영원한 형벌


이런 끝없는 체중과의 전쟁은 아마도 체중유지기능인 항상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생명체는 모두 항상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현대인은 그 항상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초가공식을 만들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쉽게 흡수되는 고밀도 열량을 주는 가공식은 먹을때 쾌락을 주고 의지력이라는 인위적인 브레이크 없이 정신줄 놓고 즐기게 되면 체중이 오르지 못할 상한선은 없다.


초가공식만 안먹으면 되지...??

식품가공이라면 웬지 실험실이나 공장에서 일어나는 변신과정같지만 소화가 잘되게 하고 맛있게 만들기 위한 요리도 가공의 하나다.  생식이 아닌 이상은 가공식을 전혀 안먹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것은 무가공이 아니라 '가공이 적은 음식'이다. 이에 반해 초가공식(Ultra Processed Food)은 원재료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가공된 정제곡물(밀가루, 쌀가루), 설탕, 지방(오일)을 주재료로 하여 소금과 감칠맛을 추가해서 만들기 때문에 명확한 변신을 거친다. 마트 매대에서 손만 뻗으면 잡히는 탄산음표, ~~칩(혹은 ~~깡), 캔디(초코바, 사탕), 아이스크림, 시리얼, 레토르트식품, 냉동간편식이 대표적인 초가공식이다.  

집에서 도너츠가루를 반죽하고 튀겨서 설탕 뿌려 만들면 그건 자연식인가? 아무리 엄마가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도 주재료가 고도로 정제된 상태인 떡볶이, 돈까스, 머핀, 도너츠는 족보상 초가공식에 가깝다. 이렇게 적과 내가 구분안될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해 식탁을 차지한 초가공식은 아무리 건강에 해롭고 체중을 증가시킨다 해도 몰아내기 쉽지 않다. 이미 우리의 혀를 사로잡았고 많은 추억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최소가공→가공→초가공


나도 감히 초가공식을 그만 먹겠다고 결심을 하고 한 1년간 가공이 적은 자연식을 엄격하게 따랐었다. 물론 몸은 튼튼해졌지만 문제는 정신이었다. 아예 안먹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번만 먹기 어려운게 과자, 도넛, 아이스크림이다. 특히 어릴때부터 곡물가루+설탕+기름의 환상조합으로 삶을 위로 받았던 내가 과연 과일이나 구황작물로 만족을 할까? 잠깐은 나를 속일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인생에 짜릿한 즐거움이 사라진걸 느꼈다.    

결국 자연식으로 살겠던 결심은 일년 겨우 넘기고 좌초 되었다. 처음엔 그럴싸하게 변명을 했다. 이건 유기농 시리얼이니깐. 비정제 설탕, 메이플 시럽을 썼으니깐. 코코넛 오일이니깐 하며 하나 둘 예외를 인정하다보니 어느 순간 비싼 채식 초가공식(비건 정크)에 둘러 쌓여 있었다. 비건이든 유기농이든 정제된 재료로 대량생산하고 1회당 열량 라벨이 붙은 음식은 결국 초가공식이며 자기절제를 가로막는 것은 매한가지다.


고장난 것은 몸인가 마음인가 

초가공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의존이 생긴 것이고 의존은 중독을 부른다. 중독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 게버 마테 (Gabor Maté)박사는 어린시절 충분한 애착형성(Attachment)을 이루지 못하거나 자기정체성(authenticity)이 견고하게 형성되지 하면 끊임없는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는 자가치료가 바로 중독이라고 풀이했다. 불안, 지루함 혹은 고통을 지우려고 누군가는 담배, 마약 혹은 진통제를 사용한다면 나에게는 과자와 빵이 있었다. 얼결에 초가공식 중독이라고 커밍아웃 해버렸지만 의도한건 초가공식이 왜 의지력만으로 해결이 안되는지를 말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지인은 출산 후 급격한 체중증가로 씨름하다가 모두 실패하고 결국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3개월 먹고나서 그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칭찬하는 다이어트 성공사례가 된 것이다. 그 약물 구성이 궁금해서 난 슬쩍 처방전을 보여달라고 했다. 처방약에는 여러 약효의 약물이 복합처방되어있었지만 가장 내 눈에 띄는 것은 SSRI계열의 우울증약 그리고 진정제였다. 당연히 정신과가 아닌 일반의원에서 다이어트약이라고 처방 받은 약이다.

3개월만에 환골탈태한 효과는 분명 항불안제가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그녀의 체중이 계속 증가했던 것이 애초에 마음의 병이라해도 이상하지 않다. 힘든 인생시기에 겪는 불안과 고통(malaise)을 잠재우는데 초가공식의 쾌락을 치료로 썼다면 다른 대안 없이 현재 치료만 중단하려할때 실패는 예견된 결과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소위 잘듣는 다이어트 비방에 항정신성 약물이 흔히 포함되는 이유일 것이다.


살 잘 빼주는 히트상품(약)  

미국은 오젬픽 열풍이 불고 있다. 킴카다시안이 16파운드(7.25kg)를 빼서 마를린몬로의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해준것이 바로 오젬픽 덕분이라고 틱톡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다. (진위는 알 수 없다.)

심지어 테슬라의 일론머스크역시 약의 도움으로 살을 뺐다고 트위터에 고백을 한 이후로 미국에서 이 오젬픽은 동이나서 구할수 없는 희귀약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한달치 비보험약가가 100만원을 훌쩍 넘는데도 말이다.($1200~1500선)

같은 옷- 좌 킴, 우 마를린

상품명 오젬픽(Ozempic)은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성분을 가진 주사 약의 당뇨약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식약처 허가전이라 사용할 수 없다. 기존약중 가장 유사한 약으로 그 유명한 삭센다(liraglutide)가 있다. 이들은 글루카곤유사체(GLP-1)수용체 길항제로 인크레틴 작용을 증가시켜 위장관 운동감소, 식욕저하의 효과를 보인다. 삭센다는 하루 한번 피하주사를 맞아야 하는 반면  오젬픽(마운자로)은 일주에 한번만 맞으면 되니 편하고  뿐만아니라 오젬픽은 임상시험에서 정상인, 비만인 모두에서 원래체중의 20%를 빼주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학적인 면은 여러기사에서 나오니 더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겠고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배고픔은 기가막히게 없애주는 약이라는게 분명하다. 어느정도냐면 허기를 못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때론 밥먹는 것도 까먹을 때가 있단다. 부작용이 미식거리나 구토 설사라니 이 또한 살빼주는 효과를 더해준다.  


이렇게 강력한 효과를 보여주지만 이 약이 비만을 완치시켜주는 약은 아니다. 삭센다도 오젬픽도 모두 약을 쓸때만 허기를 잊을 수 있고 살은 안먹기때문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약을 중단하면 다시 허기가 찾아오고 더먹으면 살은 도로 찐다. 허기란 본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반응이니 허기를 암세포처럼 완전히 도려내는 치료는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오젬픽으로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져지만 식도락이 사라지고 속이 불편한 부작용을 심하게 겪고나서 그냥 살찐채로 사는게 났겠다고 고백한 경험자도 있었다.


살은 잘빠진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삭센다든 오젬픽이든 항우울증 약이든 모두 살은 잘 빼준다. 하지만 결국 약을 끊으면 잠시 유배보냈던 허기가 사나워진 늑대로 돌아온다. 뭐 평생 약을 먹을거라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뭔가 불편하다.

 예전 한 친구는 한달간 초절식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때 나는 그 방법은 요요를 예고하기 때문에 옳지 못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주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대꾸했다. 우선 지금 눈앞에 있는 체중계 숫자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체중이 변했다면 그 허기가 생긴 원인을 찾아 교정하는 것이 우선일거 같은데 당장 몸을 바꿔 버리고 싶은 조급함은 방해가 되는 허기 혹은 추가된 살만 어떻게든 치워버리려 안달이다.

모두가 무거운 돌덩이를 들고 정상으로 오르자마자 굴러떨어지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속에 있는 듯하다.


우리는 자꾸 살과 체중에 집중하지만 살을 빼는 것은 단지 체중계의 숫자를 떨구어 주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계산기를 두드려 적정체중과 내체중의 차이를 열량으로 환산해 먹는 양과 운동량을 정하고 의지력을 불태우고 이도 저도 실패하면 약으로 허기를 틀어막는 기계적 다이어트 치료는 모두 미봉책이다.  

 그 사람이 몸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식에 스스로 절제를 못하고 있는지부터 마음속에는 어떤 고통과 두려움, 혹은 불안을 가지고 있는지 까지 숨겨져 있는 인자를 모두 드러내 평가해야 한다.  


 건강식에 몰두하고 에너지 섭취와 소모의 관계를 고민하던 긴 시간동안 난 늘 쳇바퀴를 돌았다. 하지만 내 안에 배고픈 영혼이 있음을 인지한 순간 내가 갖힌 미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 몸은 과학의 영역이면서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 무언가가 해결된건 아니다. 하지만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곳에 내 고민의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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