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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Oct 21. 2022

술의 짜릿함과 다음날의 울적함

술과 도파민 그리고 숙취에 대해서

나마비루윙크에 빠지다

요즘 내가 확 꽂힌 컨텐츠는 바로 '오사카사는사람들TV'다. (짧게 ㅇㅅㅅ)

뜬금없게도 이건 오사카의 부동산회사(오너즈플래닝)에서 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오너즈부동산은 일본오사카부동산의 해외사업부로 부장인  마츠다상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오사카의 추천 여행지와 맛집을 소개해 준다.


 마부장님의 매력포인트를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깔끔한 수트차림에  천천히 음미하는 먹음세, 그리고 수려한 한국말로 맛깔나게 표현하는 멘트 등등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미모와 화술을 다가진 마부장님이라도 식당, 카페탐방, 호텔소개만 했다면 내가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내 구독과 좋아요를 이끌어낸 것은 다름아닌 나마비루 한모금에 터지는 왼쪽눈의 윙크다. 

나마비루 윙크


나마비루는 생맥주의 일본말이다. 쨍하게 차가운 생맥주를 들이키고 나오는 격한 표정이 바로 마부장님 시그니쳐인 나마비루 윙크다.  나마비루의 알코올이 온몸에 퍼지며 뇌의 쾌락 중추가 방금 점령당한 생생한 리액션을 보자면 내가 알코올을 먹은것 마냥 뇌 속 도파민이 왈칵 솟구치는 체험을 하게된다

화면너머로 스며나오는 나마비루의 짜릿함

여기서 잠시 마츠다상의 종교의식과도 같은 음주루틴을 소개한다. 

그는 늘 식전에 나마비루 한잔으로 목을 열고 에피타이저를 하이볼(탄산섞은 위스키)과 즐긴다음 메인요리는 니혼슈(일본주)나 이모소주(고구마소주)와 함께 한다. 우리식으로 바꿔보면 생맥으로 식사를 개시하고 소맥으로 시동을 건다음 본격적으로 소주로 달리는 것이다. 요즘 재미나게 보고있는 성시경의 '먹을텐데'와도 매우 비슷하다.  


 성발라님이 수육한점에 소주한잔을 곁들이며 무슨 극락을 다녀온 표정을 지으면 원래 싫어하는 소주가 그렇게 달게 보일 수가 없다.  (특이하게 안주들은 그다지 강력한 유혹 아우라가 없다.) 

특히나 소주를 마신후 단전에서 끓어나오는 '캬아'는 마부장의 '나마비루윙크'처럼 화면너머 음주를 유도하는 주술이다.  

어둠의 주술 '넌 이미 술을 마시고 있다.' 

이쯤되면 인정해야 한다. 결국 난 '아저씨 술마시는 모습'에 빠졌다는 것을.


아저씨들 음주라 하면 회식문화, 폭탄주, 술주정, 술꼬장 처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마부장과 성발라와 같이 트렌디한 아저씨(?)들의 격조있고 찐한 리액션 덕에 구독자수는 폭증하고 있다. (2022.10.21 현재 ㅇㅅㅅ, 75만 먹을텐데 111만)

무수한 팔로워들은 멋진 아저씨들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술로) 삶을 위로받고 있다.


술과 도파민

술방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데는 도파민의 작용이 크다. 도파민이라 하면 좀 생소할 수 있지만 종목에 상관없이 우리가 쾌락을 느낄때 나오는 물질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면 성발라와 마부장  모두 첫 술을 마시면 '죽는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외  대박, 환장, 미쳐, 등등) 


죽어도 좋을 만큼 짜릿하다는 뜻이다. 

 

도파민은 우리가 즐기는 행위를 할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분비되고 쾌락추구나 고통회피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몸은 도파민을 기억해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특정 행동을 반복(탐닉)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같은 상태(항상성)를 유지하려는 몸은 과도하게 분비된 도파민에 대응하여 수용체를 늘이거나 반응성을 낮춘다. 그 덕에 늘 첫번째 술이 가장 짜릿하고 두번째 술은 항상 그보다 못하다. 따라서 첫 느낌을 또 느끼려면 술을 더 먹거나 도수를 더 올려야 하는 것이다. (생맥에서 소주 그리고 위스키로 넘어가는 과정 ) 

 술꾼이 술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알콜이 주는 도파민 킥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파민의 강력한 자극은 내가 과자를 먹을때, 커피를 마실때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는 야동을 통해 혹은 마약, 도박을 통해서도 느낀다. 

어디 한군데 낚이지 않은 현대인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중독이 도파민과 엮여있다. 


즐거웠지만 다음날 죽고싶다

먹방이 결국 입에 음식이 들어가게 만들 듯, 술방 역시 음주를 유발한다. 나역시 먹을텐데를 보다가 바로 막걸리(내가 가능한 주종 )를 사러 나갔다.  유치하지만 내 주량은 맥주 한 캔도 되지 않는다. 주량은 유치해도 느끼는 황홀경은 여느 술꾼 못지 않다. 맥주 두모금에 세상을 가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병아리 눈물만큼 마셔도 후폭풍은 똑같다. 그다지 우울한 사람이 아닌데 유독 기분이 가라앉고 만사에 비관적인 날은 다름아닌 술마신 다음날이다. 술로 인해 붕뜬 기분은 즐긴 다음날에는 처참하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값싸게 황홀감을 느낀 대가를 크게 치루는 것이다.  


숙취로 목을 매다.

숙취를 hangover라고 한다는데 나는 진짜 목을 매야(hang)하나 하는 충동을 느낀다.  먹은 술이 얼마되지 않아 내가 느낀 우울감이 술과 연관있다는걸 알아차리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특히 우리나라는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능력자들이 많아서 나같은 쪼렙(?)이 느끼는 숙취는 어디 공유할 곳도 없었다. 우리 기준에 숙취라는 것은 소주 한 두병 정도(알콜권장량의 6배)는 마셔야 생기고   뻘건 해장국물을 연거푸 드링킹한 후 '캬~'하면 그냥 해소되는 것이다. (참고 성시경 먹을텐데 국밥편)  그런데 소주 한잔도 못미치는 알콜량을 먹고 '죽겠다'는 기분이라면 얼마나 과장되 보이겠나. 


그러다 우연히 술마신 다음 생기는 기분변화를 숙취(Hangover)+ 불안(anxiety)= Hangxiety라고 부르고 여러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국경너머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인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되니 신기하면서 반가웠다. 


알콜의 대가

알코올의 작용은 사람마다 달라서 하나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신장, 면역, 뇌세포, 호르몬, 대사 그리고 순환계까지 온몸 구석구석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술마신 다음날 몸이 그대로인게 더 이상하다. 

 

술 마신 다음날 자주 경험하것으로 불안이 있다. 이는 알콜 성분이 뇌에서 진정작용을 하는 가바(GABA)와 유사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우선 긴장감이 풀리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항상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우리 몸은 가바의 효과가 커지는걸 막으려 흥분물질인 글루타메이트의 활동을 강화시킨다. 그 다음날 초조하고 흥분되는 쉬운 것이 이때문이다.  

술에는 당(sugar)이 많이 포함되 분해되면 혈당을 더 올린다. 이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되면 급격하게 혈당이 떨어지고 슈가크래쉬(sugar crash)를 경험할 수 있다. 거기에  반응해 스트레스 호르몬(콜티졸, 아드레날린)도 분비되고  불안, 공황(panic)을 경험할때와 유사한 환경이 된다.  

음주는 수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잠을 잘 들기 위해 마신다고 하지만 술은 입면을 빠르게 해주지만 수면의 지속은 현격히 떨어트린다.  혈당강하와 글루타메이트 작용으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새벽에 금방 깨버리게 된다.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자면 다음날 더 예민해지고 피곤해지고 술마시기 전보다 삶은 더 팍팍해지게 된다.  

누군가는 젊을땐 안그랬는데 하며 나이듦을 탓하기도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젊을때는 소주 한병을 먹고도 괜찮았는데...(허세충만;;)  나이가 들면 간의 해독기능은 저하되고 알콜과 부산물 배출이 지연된다.  하지만 반대로 오랜 음주 훈련(??)으로 나이가 들면서 숙취에 더 강해졌다는 사람도 있긴하다.  나는 불행히도 나이들어 간이 더 늙어 버린 쪽에 속하는 것 같다.    


난 단지 마츠다 사마나 성발라님이 느끼는 절정을 느껴보려 술을 입에 대었는데 도파민이 주는 쾌락은 순간이었고 다음날의 나는 늘 과거의 나를 질타하고 있었다.  

이제껏 도파민을 끌어 올리려 시도한 여러 매개물 (과자,  카페인, 술)은 모두 급전 땡겨쓴 것처럼 당장은 여유로왔지만 그다음 이자를 갚는 것은 늘 혹독했다. 

나에게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다음생에엔 술을 퍼먹어도 숙취가 없고  과자를 맘껏먹어도 몸이 불지 않고 커피를 줄기차게 먹어도 잠잘자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소원을 빌어 본다. 


그 전에는 도파민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게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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