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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Feb 08. 2023

채식주의자가 보는 육식

보기 드문 극한 이기주의 관점

이런 사람도 채식한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채식을 한다고 밝히면 대부분 상대는 어떤 계기로 채식을 시작했는지 물어본다. 

뭔가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는 상대의 눈빛을 보면, 하늘의 별이 된 럭키나 순심이를 기리기 위해서 아니면 매년 해수면이 3-4mm 상승하는 지구를 지키겠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지어내서라도 말해야 할거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태어나서 한번도 동물을 길러본적이 없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걱정은 말로만 하지 일상에서 휴지는 펑펑 쓰고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에서 시리얼을 주문하는 등 탄소발자국을 덕지덕지 남기는 삶을 살고 있다. 아직 내 고통이 제일 아프고 가장 먼저 돌봄받아야 된다고 여기는 이기적인 인간이 나 혼자 잘살겠다고 시작한 것이 채식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나 이타심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 채식인이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채식을 권하지 않는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자발적으로 물어보면 답 해주는 정도지 붙들어서 이거 먹어라 저거 먹지마라하며 강요하지 않는다. 

이 글은 육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이나 정당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육식을 보는 시선에 대해 풀어본 것이다. 소수자의 시선에 대한 너그러운 포용을 기대한다.   


동물과 식물의 서열

지금이야  '먹는다'는 행위가 즐기는 행위,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되었지만 근본 목적으로 보면 섭취는 생명체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에너지로 흡수하는 것이다.  공기나 돌 같은 무생물은 음식이 아니고 물은 생존에 중요하지만 음식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음식으로 불리는 것들은 모두 식물이나 동물(혹은 미생물)로 현재 살아있거나 과거 살아있던 것들이다. 

내가 동물을 안먹는게 동물의 생명이 먹기에 너무 소중해서는 아니다. 나에겐 식물도 소중한 생명이다. 물론 식물을 베는 것과 동물을 베는 것이 같지는 않겠지만 생명들을 소중한 정도로 나래비를 세우는 건 너무 주관적이고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등수 매겨 먹지도 않는다. '더 소중해서' 혹은 '덜 소중해서' 먹는다라는 설명은 어떤 쪽이든 설득력이 낮다. 

사자가 사슴을 사냥할때는 전력을 다하고 수고한 만큼 얻은 먹이의 에너지로 생명을 이어나간다. 사냥 전에 사슴에게 고맙다 혹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사자가 사슴을 함부로 대하거나 재미삼아 죽인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오늘먹은 고구마나 감자도 스스로를 버리고 포식자인 나를 구성하는 영양분으로 변환된 고마운 존재들이다. 난 잎채소도 고맙고 콩도 과일도 모두 고맙다. 이들이 고기보다 귀하지 않아서 먹는 것이 아니다. 


식육동물과 반려동물의 차이점

예전에 개를 먹는 상황에 대해 친구와 얘기한 적이 있다. 그가 강조한 이슈는 개는 소와 다르게 인간과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개는 무조건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개'를 먹는건 아니지만 (개도 소도 모두 안먹지만) 그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축사 속의 가축과 집안의 반려동물이 같아 보인다. 더 정확히는 식육동물과 반려동물의 차이가 단지 운빨인거 같다. 운나쁘게 축사에서 인공교배로 태어난 송아지는 태어날때부터 '식용'으로 낙인찍혀서 인간과 눈맞춤을 하지 못하고 성체가 되면 도축장으로 향한다. 만약 그 송아지가 운좋게 우리집 거실에서 태어났다면 어찌됬을까. 매일 아침마다 그 큰 눈에 내가 담기고 내 얼굴을 기억하며 꼬리를 흔드는 애완송아지로 자라고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할 것이다. (소도 감정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식용고기에 대한 논쟁에서 특이한 점은 개고기에서는 강아지의 맑은 눈과 비윤리적인 뜰장과 같이 생명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결부시키면서 소고기를 생각할때는 지글지글 시어링되는 소리와 입안의 퍼지는 감칠맛같이 사물이 주는 혜택만 연상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반대로 개고기를 사물, 소고기는 생명체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이들과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 (돼지나 소를 안먹는 나라는 우리를 이해못하고, 개를 안먹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을 이해 못한다.)  그래서 난 이런 논쟁에 가타부타 개입하지 않는다. 누군가 생존을 위해서 육식을 했다고 할때 함부로 어떤 고기는 옳고 그른지 판단할 자격이 없기때문이다.  

개와 소의 차이를 모르겠다는 입장이 개도 소도 먹지 말라고 들린다면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난 뭘 먹으라 먹지마라고 말하지 않았다.  인간이 부여한 지위에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하위 동물은 상위 포식자의 섭취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육식동물? 채식동물?

내가 채식을 하니깐 '인간은 채식동물이다'라고 주장할거 같다. 물론 소장의 길이나 치아의 구조로 볼때 채식동물의 특성에 더 가깝다고 보기는 한다. 하지만 과거 인간의 유적지에서 인간이 사냥한 동물의 뼈무더기를 보면 살점을 떼내 먹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다. 누가 가르쳐 준것이 아닌데 살기위해 사냥을 하고 육식도 했던 것이다. 

만찬중인 네안데르탈인 vs 만찬중인 현대인

시대나 지역에 따라 비중은 다르겠지만 인간은 채집과 농경과 더불어 육식을 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는데 채식동물로 태어났다고 우기는 것은 인류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채식동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육식동물도 아니다. 육식동물은 오로지 고기만 먹는  사자나 호랑이를 말하는데 보편적인 사람은 '고기도' 먹는 것이지 '고기만' 먹고는 살수 없다. (소수의 아주 특이한 케이스 제외) 

과거기록과 현재의 식생활을 모두 종합해 볼때 인간은 잡식(omnivore, 다먹는 사람)에 해당한다. (물론 나야 식물성 식단의 비중이 높은 잡식이라 보지만...) 인류가 생존을 위해 식량으로써 동물도 먹었다는 것은 팩트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먹는 식생활에 대한 가치판단,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으면 된다.    


생존을 위한 음식과 가치를 따져 먹는 음식

결론적으로 동물과 식물이 같다고 생각하면서 왜 동물을 안먹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내가 선택한 가치의 문제라고 답하겠다. 

인간이 생존에 필요해 먹은 음식에 대해서는 먹을 가치를 논할 수 없다. 농사를 할 수 없는 광활한 몽골의 고원에서 혹은 알라스카에서 사는 이들에게 왜 나같은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하냐고 다그치는 것은 철없는 행동이다. 생존과 동떨어진 가치판단이기 때문이다. 

어릴적 밥을 남기면 아버지가 반복해서 들려주시던 그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즐겨 드셨던 미군부대 소세지, 통조림 고기을 두고 난 육류소비가 어떠니 가공식품이 저떠니하며 평가하지 않는다. 그건 아버지의 생존문제였기 때문이다. 


생존은 가장 중요한 가치


너무나 운이 좋은 나는 말고기, 양고기를 먹지 않아도 미군부대 소세지를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곳에서 살고 있다. 농사가 가능한 땅에서 전쟁도 없는 나라에서 살면 칼로리와 영양소를 모두 채울수 있는 다양한 식물성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올드보이 혹은 수도자처럼 한가지 음식만 먹으며 죽지못해 사는것도 아니다. 주위에는 쾌락도 체중도 높이는 가공식품(비건정크)이 차고 넘친다. 생존의 문제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난 이거 먹을까 저거먹을까를 가치관 따져가며 먹는 호사가 가능하다. 

가장 큰 핵심은 내가 지금 먹는 것으로 아무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고 건강한 몸과 정신이라는 이득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추가로 경제적인 이득도 좀 있다. (아무리 유기농 채소와 간식으로 극심한 사치를 부려도 일반잡식하는 친구보다 한달 식비가 적게든다.)  뭔가를 참아야 하거나 손해보는 상황이라면 즐기면서 지속가능할 수 없다. 

하지만 다들 처한 상황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시각 같은 나라에서 사는 다른이들이 나와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 아는 선배는 내가 이 식단으로 특별히 손해본게 없다는 말을 듣더니 늙으면 생각이 달라질거라며 입을 삐쭉거렸다. 뭐 늙을때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당장 내일이라도 손해봤다고 느끼면 난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것이다.    


합리적인 육식에 대한 의견

내가 건강하다고 여기는 음식의 가치는 나의 몸에서 드러나야하고 아끼는 사람과 그 가치를 공유하고 싶은 맘이 우러나와야 한다. 당연히 그 가치는 무언가를 참는게 아닌 즐기며 좋아해야한다. 나도 가족과 친구들이 내 식단을 함께하며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가족 혹은 친구들은 각자 '나잘난' 음식철학을 가지고 있어 곧 죽어도 내말은 잘 안듣는다. 이기적인 나는 싫다하는 사람들에게 관계를 불사르면서 까지 '강매'할 마음이 없다.  

근데 참 이해가 안되는 건 이보다 더 좋게 먹을수 없다고 자부하는 그 음식들을 매일 먹고 있음에도 나만보면 여기 저기가 아프다, 원하는 체중이 유지가 안된다며 나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나한테 왜그러는 건데;;;)


  난 지병도 없고 감기는 일년에 한번도 걸릴까 말까인데 걸려도 약없이 하루 밤 좀 헤롱거리다가 말짱해진다.(지금까지 코로나를 경험하지 못했다.) 정작 툭하면 감기 걸려 골골하거나 이래저래 병원에 갈 이벤트가 생기는 건 내 가족과 지인이다. 현재시점이나 아니면 과거 동일조건(같은 나이대기준)으로 병원비 혹은 검진결과로 배틀을 붙어도  가족과 지인 중에 나를 이길 사람이 없다. 하지만  맨날 나만 보면 풀만먹어서 기운이 없어보인다느니 역시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느니 하며 정신승리를 하신다. (언젠가 내가 크게 쓰러질때 '내 이럴줄알았다' 그 한마디 할 날만 기다리며 사는 듯)


난 내 입에 넣는 음식을 모두 귀하고 소중해서 못먹어 버리는 걸 가장 싫어하고 한번에 많이 사서 냉장실에서 썩히거나 냉동고의 미이라로 만들지도 않는다. 풀만먹는 내가 고기에 대해 아는바는 없지만 짐작컨데 고구마 채소 과일이 식탁에 오르는 것보다  소와 돼지 혹은 닭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더 공임이 많이 들거같다. 그런 고기라면 내가 유난떠는 식물성 식재료보다 더 소중해 할만도 한데 우리 가족이나 주변인의 생활에서 언듯언듯 비치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치킨을 먹다가 다이어트한다며 남기고 버리질 않나 외식해서 고기를 굽다가 태우거나 배부르다고 남기고... 말로는 고기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하지만  정작 귀한 대접은 커녕 때론 먹고 후회하기 까지 한다.   

 마이클 저커버그는 자신이 먹는 고기는 자신의 집에서 도축한다고 한다. 아주 기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일리 있다고 본다. 직접 사육과 도살을 체험해야 생명이 음식이 되기까지 들어가는 공임과 희생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상추를 기르는 과정을 다 지켜보면 상추대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먹게 된다.)  

'고기를 먹는 것'과 '필요없이 많이 먹거나 낭비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참고로 의학계에서 권하는 육식의 적정량은 일주 3번,  한번에 120~180 그람이다. 어떻게 해석해도 한자리에서 삼겹살 한근 혹은 1인 1닭은 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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