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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용이랑 conmigoYY Mar 26. 2020

나의 스페인행 티켓, 산 세바스티안 맛보기

2017년 8월 28일.

새 집과 동네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이웃 도시 San Sebastian으로 떠났다.

지난 학기 산 세바스티안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룸메이트 성민이. 하숙집에 두고 온 짐도 가지고 올 겸, 5명이서 다 같이 산 세바스티안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바스크어로 Donostia(도노스티아)라고도 하는 산 세바스티안은 빌바오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가량을 달리면 나오는 멋진 해안도시이다.

넓은 해변과 미슐랭 맛집을 비롯한 맛있는 먹거리로 서핑 마니아와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매년 9월에 열리는 국제 영화제 개최지로도 유명하다.

터미널을 나오면 멋진 다리

숙소에 대충 짐을 풀고 거리 구경을 하러 나갔다.

옆 동네 빌바오와는 달리, 고급지고 세련된 느낌의 중심가에서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화보처럼 잘 나온다.

거리 중심에 있는 Catedral del Buen Pastor는 산 세바스티안을 대표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첨탑을 자랑하는 성당.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그저 명동성당을 다니는 느낌이겠지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둑함 속에 알록달록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인 성당 내부

UPV 대학교 근처에서 성민이의 짐을 찾고 나서 주변 쇼핑몰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천둥번개에 비바람이 몰아쳐서 버스를 타고 갈 순 없을 것 같다. 결국 돈을 많이 내도 택시를 타는 걸로...

스페인은 우리나라처럼 택시를 아무 길에서나 세울 수 없어서, 택시 승강장을 찾아서 택시를 타야 했다. 승강장이 지도에도 잘 안 나와있어서 비를 맞으며 택시가 많은 곳까지 돌아다니다 겨우 두대를 잡아 탔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산 중턱에 자리한 Petritegi(페트리테기). 뒤편에는 사과주 공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바스크 전통식당 겸 양조장이다.

전화로 예약했지만 저녁 영업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비 온 뒤 깔끔한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통 방식의 양조에 쓰이는 도구 인가보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먼저 커다란 오크통이 눈앞을 사로잡았다. 빵이 하나씩 놓인 기다란 연회 테이블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안내받으며 금세 북적북적 활기찬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바스크 지방은 와인뿐만 아니라 사과주 Sidra(시드라)로도 유명하다. 페트리테기는 저장고를 개방해서 직접 만든 사과주를 무한정 제공하고 있다.

난생처음 마셔보는 달지 않고, 쿰쿰하고도 진한 사과주. 이 맛을 잊지 못해서 한국에서도 비슷하게나마 찾아보려 했지만, 바스크의 사과주는 독보적이었다는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술을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되는 수제 사과주스

스페인 식당에서 menú del día(메누 델 디아)라 하면 전채부터 메인 요리, 후식, 음료까지 그날 준비한 여러 음식들이 차례차례 나오는 코스 식사를 말한다. 페트리테기에서는 메누 델 디아 식으로 여러 가지 코스 메뉴들을 선보이는데, 여기서 먹은 요리들을 떠올리면 지금까지도 그 맛이 기억나는 듯하다.

대구를 넣어 만든 스페인식 오믈렛 'Tortilla de Bacalao'
볶은 피망과 양파를 곁들인 대구요리 'Bacalao frito con pimiento'.  바스크 지방에서는 대구요리가 특히 발달해있다
겉은 바삭하게 태우고, 속은 레어하게 익힌 바스크 식 스테이크 'Txuleta(출레타)'
마지막 후식으로는 모과 잼을 곁들인 치즈와 비스킷, 호두가 나왔다
우리가 즐거워 보였는지 옆에 있던 외국인 커플분들이 찍어주셨다

양도 많고 무엇보다 메뉴가 하나같이 정말 맛있어서 다 먹고 나서도 여운이 남았다. 먹었던 음식의 맛을 하나하나 머리로 되새길 정도로.

우리 모두 술이든 음식이든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도 시킬 겸 해변을 한참 걷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어제는 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오늘은 해가 쨍쨍 내려쬐서 바다에 들어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산책 겸 일이 있어 UPV 캠퍼스까지 라 콘차 해변(Playa de La Concha)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바닷물과 탁 트인 풍경을 보니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것 같다.

이 스팟은 대한항공의 산세바스티안 광고에도 나왔다고 한다. 나의 스페인행 티켓!

학교 주변과 도서관을 구경하고 난 후, 맛있는 햄버거 가게가 열려있어서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성민이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 때 자주 찾았다던 수제버거집 TGB - The Good Burger이다.

조금은 작아 보여도 안에 튀긴 양파며 베이컨, 육즙이 흐르는 패티로 꽉꽉 차있었다. 무엇보다 버거 빵도 촉촉한 것이 정말 맛있었다. 왜 빌바오에는 TGB가 없는 걸까..

원래는 아침을 햄버거로 먹을 생각이었지만, 오픈 시간이 12시로 늦춰져서 결국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고 바로 맛있는 핀초 가게를 찾아가게 되었다.

웅장한 전경의 수도원 Basílica de Santa María del Coro 앞 구시가지는 점심시간에 맞춰 핀초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Santa María 성당 앞 구시가지에는 맛있는 핀초 가게와 여러 잡화상점이 늘어서 있다

Pintxo(핀초)는 바스크 지방에서 발달된 음식이다.

타파스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만, 보통의 핀초는 빵 조각 위에 육해공을 아우르는 다양한 재료를 얹은 다음 꼬챙이에 끼워 내는 형태이다.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바에서 즐기는 핀초는 바스크 지방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핀초의 성지로 유명한 산 세바스티안 답게 엄청난 종류의 핀초들이 있었다. 기본적인 하몽 샌드위치부터 성게 알 핀초, 새우꼬치까지... 이미 햄버거를 먹어서 그런지 배가 불러서 조금밖에 못 먹었는데, 나중에서야 빌바오의 핀초가 여기보다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해안도시라 그런지 빌바오보다 더 다양하고 맛있는 핀초들이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었다

조금 아쉬운 핀초 먹기를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라 콘차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선탠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맑은 물을 보니 발을 안 담글 수가 없었다. 누가 보든지, 구석에서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사진도 찍으며 한참을 놀았다.

스페인에 걸맞은 맑은 날씨와 멋진 풍경이 함께해, 올여름 첫 바다를 행복하게 기억할 것 같다.

한 번으로는 아쉬운 Donostia, San Sebastian.
꼭 두 번, 세 번 더 와서 맛있는 핀초와 아름다운 바닷가,
고급진 바스크 전통음식까지 다시 즐겨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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