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미리 Mar 01. 2021

그 동치미에는 사이다 맛이 난다.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나.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았던 나는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의 어깨를 주무르러 교탁 앞에 나서곤 했다.


어깨를 주무르며 이야기를 쏟아내면 ‘응 그러니 응응’ ‘어머 그래서 어떻게 했니?’와 같은 리액션이 돌아오곤 했다.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엄마와 아빠,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태어난 동생, 장애가 있던 할머니를 둔 11살의 K-장녀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그 교탁 앞에 있었다.


개학을 하고 두 달쯤 지나면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돌아온다. 초딩에게는 초딩의 사랑법이 있기 마련.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선생님께 드리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쯤의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건, 엄마가 담가주는 사이다 맛이 나는 동치미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난 신발주머니를 아무 곳에나 던져버린 채 엄마를 찾았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부모님들이 와서 점심 배식을 하고는 했는데, 운 좋게도 스승의 날 전날이 우리 엄마의 배식일이었다. 최고의 상황이 아닌가!


엄마, 내일 학교에 올 때는 동치미랑 같이 와!”

뭐라고?”


엄마는 동생을 엎은 채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내가 선생님이랑 얼마나 친한지, 선생님에게 엄마가 담가주는 동치미가 얼마나 맛있는지 매일 자랑했다는 것, 마침 운 좋게 내일이 엄마의 배식이라 타이밍까지 완벽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엄마는 김치냄새가 밴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래? 정말 그러고 싶니?”

응. 정말 정말 그러고 싶어.”


엄마는 약속대로 동치미와 함께 왔다. 동치미만 온 건 아니었다. 유모차에는 이제 걸음을 뗀 동생도 함께였다. 나는 신이 나서 동치미를 들고 선생님께 갔다. 꼭 드셔보고 후기를 알려달라고 당부를 했다. 선생님은 난감하게 웃었고, 아이들은 줄을 섰으며, 엄마는 국을 펐다. 그리고 나는 너무 신이 나 있었다.



그 동치미에는 많은 사랑이 담겨 있다. 엄마의 동치미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과,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싶은 학생의 마음과, 정신이 쏙 빠지는 하루하루에도 동치미를 담가둔 엄마의 마음이 있다.


선생님의 난감한 웃음 속에도 많은 의미가 있다. 학생을 향한 기특함과, 딸의 성화에 동치미를 담가 온 학부모에게 보내는 감사와 미안함과 같은 의미가.


훌쩍 커버린 딸과 부쩍 늙어버린 엄마는 ‘동치미 사건’으로 불리는 그 4학년의 봄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동치미를 가장 좋아한다. 엄마도 여전히 혼자 사는 딸을 위해 몇 달에 한 번씩은 동치미를 담가 올려 보낸다. 고구마랑 먹어. 작은 쪽지는 덤이다.


좋아하는 것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해주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마음을 받아주는 마음.고작 11살짜리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마음이 그 동치미에 있다. 그래서 엄마의 동치미에는 사이다 맛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에서 마케팅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