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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리 Apr 15. 2021

역시나 답이 없는거지

사주팔자가 답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이 시대의 마법사전은 역시 유튜브다. 검색만 하면 보고싶은 영상이 쫘르르 보이는데, 이게 마법사전이 아니면 뭐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잠들기 전 마법사전을 유랑하는 일은 국룰이다. 현대의 마법사전에는 한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이놈의 알고리즘은 기똥차게 내가 관심있는 영상을 끌어 올리기도하고, 별 관심이 없던 영상도 다시 한 번 만나게 해준다. 나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이라고는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는 일 뿐이다.


그날의  역시 한명의 멋진 현대인으로서 마법사전을 뒤적거리고 있던 차였다.  와중에  영상을 만났다. 사주풀이 영상이었다. 알고리즘과 호기심이 더해지면 엄청난 효과를 보이곤 한다.  정확한 사주풀이를 위해 사주 어플도 깔았다. 생전 만날  없던 여덟 글자와 다섯가지 색이  앞에 아른거렸다. 세상에 신기하지 않은가. 고작 여덟개의 글자로 나의 삶을 알아볼  있다는 . 더 신기한건 세상 만물과 자연의 이치가 스며든 오래된 학문도 나에게 정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삶의 방향성이 정해져있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눈가에 힘을 준 채로 진지하게 사주풀이를 듣던 나 역시 몸은 이불과 하나된 채다.


  사주를 봤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첫 사주는 고등학생때다. 사주를 봐주던 선생님의 모든 말이 잘 이해되지도 않을 때였는데, 딱 하나가 기억에 박혔다.


“요행이 없어. 요행을 바라면 안돼. 이게 나쁜 게 아니야. 한 것은 얻어간다 이 소리야.”


그 뒤로 나는 다시는 사주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꽤나 요행만 바라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홀딱 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요행은 없지만 한 만큼은 얻어갈 수 있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된다. 적어도 원하는 걸 열심히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이건 의외로 큰 위로다.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 ‘열심’은 엄청나게 상대적이어서 파고들 틈을 잘 주지 않는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싶지만, 내가 지금 하는 거라고는 꾸준히 쓰는 일 뿐이다. 한 것은 얻어갈 수 있다는 사주팔자를 믿고 어떻게든 ‘한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이 쌓이면 조금은 튼튼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다음 달에는 사주를 보러 가야겠다. 나의 생년월시가 달라지는 일은 없으니 1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 넌 한 것은 얻어갈 수 있다 이 소리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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