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게요.
사실 저는 제가 침팬지였다는 걸 깨닫고 한동안 상실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침팬지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기 위해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고 당선까지 했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침팬지 학교였습니다.
게다가 집은 어떻고요. 학교에 다녀올 때면 언제나 침팬지 두 마리(암컷과 수컷)가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고 있었죠. 저는 처음에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침팬지가 되고 보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하등 생물이고, 지적 수준이 떨어져 싸워야만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걸. 그래서 그들을 죽인 거랍니다.
사이트에서 민수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저는 단번에 민수의 DNA 구조를 알아차렸습니다. 그 역시도 침팬지였고 낙오된 인간이라는 걸 말이죠. 그래서 저는 민수를 도와주기로 한 거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침팬지라도 인간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살인을 결심한 민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죽일 거지?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을 거지?”
“네... 확고해요.”
저는 웃으며 민수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그래, 민수야. 잘 생각했어.”
그리고 누굴 죽이고 싶은 건지 물었죠. 민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고개를 들며 대답했습니다.
“그 년이요. 그년부터 죽이고 싶어요.”
여기서 그년이라 함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이제 민수가 살해할 인간을 맞출 차례입니다.
“그년이라는 건 여동생 연희를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지 위치도 모르고 사사건건 깐죽거리는 게 입 좀 다물게 하고 싶어요.”
“알았어. 형이 도와줄게.”
저는 메모지 한 장을 떼어내 민수에게 주었습니다. 메모지에는 주소가 적혀있었죠.
“여기가 어디예요?”
“시멘트 폐공장이야.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동생을 이리로 데려와. 그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걸리지 않게 죽일 수 있는 거죠?”
“물론. 네가 발설하지 않는 이상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고 약속할게.”
민수가 메모지를 쥐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기뻐하고 있었고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랐죠.
저는 민수와 헤어진 후, 산뜻한 걸음걸이를 했습니다. 기분이 들뜬 채로 집으로 향했죠. 상쾌해지기 위해 중간에 동네 슈퍼에 들렀습니다. 사이다 한 캔을 집은 후, 계산도 하기 전에 벌컥벌컥 마셨죠. 그리고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입에 털었습니다.
“총각,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네? 그제는 죽을상이던데.”
주인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그제 제가 여길 왔었나요?”
“그래, 말 걸어도 아예 대답도 안 하던데. 그건 무슨 약이야?”
“정신과 병원에서 주는 약이요.”
“정신과? 왜? 어디가 안 좋아?”
“네. 정신병이 있거든요.”
“어쩐지 가끔 이상하더라니. 어쨌든 총각, 그 일은 고마워. 덕분에 그 개 잘 먹었어.”
“아니에요. 저도 아저씨한테 보답하고 싶었어요. 가게 올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주시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또 부탁해도 될까? 요새 반려견이다 뭐다 해서 보신탕집도 없고, 눈치 보여서 먹을 수가 없다니까.”
“네,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개 잡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크크, 고마워. 용선이 아줌마한텐 비밀로 할게. 사이다는 그냥 가져가. 심심하면 주전부리할 것도 챙기고.”
“아니에요. 오늘은 약만 먹어야 해서.”
저는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슈퍼 아저씨를 소개하자면, 그는 개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개에게 원한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진돗개에게 새끼손가락을 물려 절단을 당했거든요. 아저씨는 그때부터 개만 보면 기겁을 했습니다. 큰 개 작은 개 할 것 없이 개만 보면 움찔거렸죠.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13번째 되는 생일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웬걸 보신탕이 올라온 것이었죠. 아저씨는 콧잔등에 식은땀이 나도록 놀랐습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개를 보니 절단된 새끼손가락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죠.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병국아. 뭘 놀라고 그러노. 맛있어 보이지 않나?”
맛있기는커녕 아저씨는 비위가 상해 당장이라도 토할 기세였습니다. 비린내가 사방에 진동을 했죠. 어머니가 사발에 보신탕을 퍼주며 말했습니다.
“괜찮다 아이가. 돼지고기라고 생각하고 먹어봐라. 너도 이제 극복 좀 해봐야지.”
그때 아저씨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눈 꼭 감고 딱 한 번만 먹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어차피 이 개는 죽은 개니까 나를 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갈비뼈에 붙은 살을 씹었을 때, 아저씨는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음식에서 희열을 느낀 것이죠. 그 희열은 뇌를 관통해 트라우마를 깨부술 정도로 짜릿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람 고기도 이런 식으로 짜릿해서 그때 그 진돗개가 내 손가락을 씹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때부터 아저씨는 개를 사냥하기 시작했습니다. CCTV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를 순방하며 몽둥이로 개를 때려잡아 포대에 담아 갔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조롱하는 세상이 오자 아저씨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아저씨가 개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저만 보면 짖는 개에게 다가가 다리를 물린 후, 정당방위로 죽이게 된 거랍니다. 용선이 아줌마가 땅속에 묻은 개를 파내 아저씨에게 납품한 것이죠. 저는 그 대가로 가게에 있는 식품이나 음료수, 과자 따위를 얻고 있는 중입니다. 아저씨와 저는 ‘비즈니스 사이’라고 하는 게 알맞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