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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오 Nov 25. 2021

2 예술가로 살기

예술가는 태어나는 것이라 믿었다.

예술은 고상한 것이지만 둘째 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셨을 아버지께 물으면

'다음에 해라'라고 완곡하게 불가함을 말씀하셨을 터,

예술가란 범속하지 않은 특별한 존재라서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빛나는 존재였다.

그러니 미리 그리될 수 없다 막을 치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을,

해본 적도 없는 창작의 고뇌와 고통보다  먼저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창조적 본성을 찾아내 보자고' 아티스트 웨이' 도서를 읽고 내 안의 한껏 위축된 꼬마 예술가에게  말을 걸어본다.

우리  만날 수 있을까. 오래 구겨 놓았던 묵은 옷감을 꺼내어 과연 옷을 지을 수 있을지, 세상에 내보내도 될지 가늠하고 망설인다.  과연 내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은 불씨라도 지펴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나는 예술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만약 올봄에 시작된 이 작은 불씨를 지펴서 내 안에 어떤 의외성처럼 숨겨져 있던 예술성이 툭툭 튀어나온다면  뒤늦게 나의 생은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과연 아름답지만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될 것인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어보자. 반 고흐,  미치광이 같은 예술가, 타고난 천재적 상상과 재능을 그저 화폭에 옮겨 놓기만 해도 되는 그런 천상 예술가였을, 그의 편지를 읽는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는 50프랑을 받으며 의기소침하면서도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서 편지를 쓰는 돈벌이 못하는 못난 형의 모습이 있다. 50프랑에 안도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가족의 신뢰를 되찾고 싶다고 테오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생계유지를 하기에는 자신이 가진 것이 보잘것없다고 자책하는 생활인의 모습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라고 쓰는 편지 말미엔 '네가 떠난 후 밤거리를 걸어 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초상화를 그렸다'라고 쓰고 있다.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는 '재능과 반복'이라는 칼럼에서 말한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재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예술가의 길은 아름답지만 외롭고 고독한 길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길은 꾸준히 하루에 몇 걸음씩, 몇 미터씩 나아가는 길이다. 몇 번을 뛰다가 걷다가 할 수도 있다.

때로 갔던 길로 돌아 나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가는 나는 예술가다. 아니 예술도 결국 삶의 일부 아닌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반추하거나, 누군가를 탓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오늘 하루의 성실과 열심이야말로 그날의 재능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래, 이슬아가 (무척 늦은 나이인 것처럼) 스물아홉에 깨우쳤다고 고백하는 재능과 꾸준함에 대해서 가졌던 나의 평생의 오해를 내려놓아야겠다.

내 안의 꼬마 예술가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저 지금을 생각하면 된다.

이슬아가 말하듯이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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