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가자 하면 나는 강변으로 가고 싶고, 그는 공원으로 가고 싶어 한다. 나는 탁 트인 전망이 좋고 그는 나무가 무성하여 그늘도 있고 앉아서 쉴 벤치도 많은 안정적인 공간을 좋아한다. 강변은 5분이면 가닿고, 공원으로 가려면 20분 이상을 햇볕 속을 걸어야 하는 데도. 나가기 싫어하는 그와 산책을 가려면 공원으로 가는 수밖에.
오후 늦은 시간 산책을 나갈 때는 강변으로 간다. 저물어가는 강가 벤치에 앉아 편의점 맥주 한 캔을 할 수 있다는 거부하기 쉽지 않은 유혹이 있으므로.
그마저도 코로나 이후는 어렵다...
산책 취향이 맞지 않으니 평일에 혼자 산책을 즐긴다. 오래된 아파트 내의 어디를 봐도 울창한 정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가꾸지 않았지만 나의 정원처럼 즐기는 기쁨이 크다. 뒤늦게 알게 된 꽃들의 이름, 나무 이름이 정다워서 자꾸 눈길이 가고 안부가 궁금하다.
오늘 나가서 할 일을 마친 다음 아파트 내 큰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동네 산책을 했다. 천천히 10분 걸리는 거리를 하나하나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다보니 20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키 크고 웅장한 메타세쿼이아, 유난히 균형이 좋고 잘생긴 건장한 은행나무, 조팝나무, 낮게 도열하듯 심어진 아직 이름을 모르는 관목의 두터운 이파리들을 잘 살피며 걸으니 그런 시간이 들었다.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전북 장안군의 마이산이라는 곳으로 등산을 갔다. 5월이었던가 벚꽃이 아름다운 길을 하산길에 만나도록 계획하고 갔는데 그 해에는 벚꽃의 북상이 늦어 겨우내 뿌리로부터 길어 올린 물길이 이제 막 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모습까지만 보고 아쉬워하며 귀가한 다음 날, 집 앞 주차장에 웅장하고 오래된 벚꽃나무가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벚꽃을 가득 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파랑새는 집에 있다더니, 전북 장안군까지 가서 보려 했던 벚꽃이 집 앞에 화사하게 팔을 벌리고 있을 줄이야.
그러니, 동네를 산책하는 일은 아직도 새롭다. 오래 살아온 동네건만 호기심을 가지고 자연을 들여다본 건 올봄이 처음인 듯하다. 빵집 옆에 활짝 핀 무궁화 한 그루도 올봄에 처음 만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