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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Feb 12. 2021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

<블랙호크다운>

리얼리티 경쟁?
지친다. 쉴 틈이 없다. 전쟁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하필 선택한 전쟁영화의 대부분을,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계속된 전투 장면이 차지한다. 숨을 고를 틈이 없으니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용도 못지않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반복한다. 목적이 분명했던 전투는 어느새 구조를 위한 전투로 바뀌고, 여러 이유로 낙오한 병사들과 부상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영화 속 인물들은 전투 장소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올 게 분명한 데도 말이다. 이런 내용과 형식을 연출자는 왜 선택했을까.

<블랙호크다운>은 실제 사건을 다룬다. 미국은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다. 내전의 주범인 아이다드를 제거하려는 목적에서다. 본국으로부터 임무를 빨리 완수하라는 압박을 받은 사령부는, 디데이를 정해 1시간 이내의 작전을 세운다. 공중 병력과 지상병력을 쏟아부어, 적의 수뇌부를 잡아들이는 계획이다. 하지만 계획은 틀어진다. 미군은 안일했던 반면, 아이다드의 군대는 미군과 싸울 준비가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위풍당당했던 블랙호크(헬기)는 추락하고, 지상병력은 뿔뿔이 흩어진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1시간 이내를 예상했던 작전은, 끝을 알 수 없는 시가전으로 바뀐다.

그 외엔 딱히 줄거리라고 할 만한 내용은 없다. 시가전의 생생함만이 영화를 가로지른다. 다만, 영화 속 전투의 성격이 바뀐다.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줄 임무는 어느샌가 서사에서 사라진다. 목적이 분명했던 전투는, 동료를 구조하기 위한 전투로 바뀐다. (실제로 영화는 아이디드라는 인물에는 관심이 없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헬기가 추락한 현장을 사수하고, 흩어졌던 대원들이 어렵사리 다시 합류하는 과정을, 영화는 힘겨우면서도 사실에 가깝게 그려낸다. 한 평론가는 <블랙호크다운>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하며, 전쟁에 관한 보고서라고 평했다. 영화가 한 두 인물에만 시선을 두지도 않고, 흔한 영웅 서사나 비장한 정의감, 가혹한 슬픔 같은 것을 애써 담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리들리 스콧은 전쟁의 생생함만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을까? 리얼리티를 경쟁하면서?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는 플라톤의 말로 영화는 시작한다. 삶 전체가 곧 전쟁이라는 의미일 테니, 전쟁이라는 틀을 빌려 삶까지도 생각해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삶과 전쟁이라니. 이미 닳아빠진 유비가 아닌가. 자칫하면 진부하기 그지없을 주제를, 리들리 스콧은 어떻게 다룰까.

리들리 스콧, 1937 ~ 현재

분대장의 갑작스런 질환으로, 임시 분대장을 맡게 된 에버스만(조쉬 하트넷)은, 자신들(미국)이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이유를 정의 때문이라고 믿는다. 수십만이 피해자로 죽어가는 걸 방관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참여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수줍은 듯 말하는 인물이다. 굳이 말하자면, 정의로운 사명감을 가지고 소말리아로 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대의나 정의로 우리를 안내하지 않는다. 도드라지는 악이나 선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난무하는 총알과 폭격, 그것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발버둥과 부상당한 동료를 구해내려는 처연한 사투로 영화는 가득하다. 영화 끝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끝내고 귀환한 에버스만이, 무덤하게 다시 군장을 꾸리는 후트(에릭 바나)에게 ‘또 가려고요?’라고 묻자, 후트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싸우는 건 전우애 때문이며, 그게 전쟁’이라고.

전우애라는 단어 때문에 군뽕인가 싶어 거부감이 들지만, 그 대사를 곱씹어보면, 후트는 전쟁에서 의미를 걷어낸다. 대의에 따른 사명감이나, 연민 때문에 싸움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동료가 전장에 있기 때문에 그는 싸움에 뛰어들기를 반복한다. 그게 전부고, 그게 의미다. 그럴듯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은 그에게 없다. 전투가 있고, 거기에 동료가 있다. 국가가 타국 내전에 개입한 명분에 후트는 무관심하다. 명분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에게 전투는 개인적이지만, 그 싸움이 동료를 점에서 그는 공적 인간이다. 그것이 영화 초반부가 서로 다른 개인과 그들의 개별성을 비춰준 이유인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큰 이야기에, 개인이 파묻히지 않도록.

<블랙호크다운>은 미국이라는 의미의 추락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국제 정세를 알지도 못하고, 굳이 알 필요도 없겠지만, 미국이 자신들을 경찰국가로 여기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블랙호크다운>은 정의를 위해, 혹은 옳기 때문에 소말리아 내전에 참여한다고 자신하는 말하는 미국과 그것을 상징하는 블랙 호크의 추락을, 절묘하게 맞물리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미국, 전쟁, 국뽕이나 군뽕 등으로 인해 생기는 거부감을 한쪽에 제쳐두고, 긍정적으로 영화를 평가하더라도,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미군은 개인들에 주목하는 반면, 추락한 헬리콥터에 몰려드는 소말리아인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검은 파도처럼 묘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전투로 인해 목숨을 잃은 19명의 미군을 애도하는 듯하면서도, 소말리아 민병대의 사망자가 2000명가량이라는 자막이 무심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당혹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무래도 리들리 스콧의 영화를 몇 편 더 봐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리뷰4. <블랙호크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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