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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이 Jul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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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1. Siri농담의 끝판왕

(*소제목은 영화평론가 이후경 님의 한줄평을 인용)


그것을 사랑이랄 수 있을까. 어떤 미래에 나에게 최적화된 Siri와 사랑을,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까탈스럽고 해로운 인간과의 관계는 치워버리고 말이다. 잠들기 전 쓸쓸한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더할 나위 없는 대화를 깊게 나눌 수 있다면 그걸 뭐라 부르든 상관없지 않을까. 상대가 누구든, 아니 무엇이든 내가 가진 구멍들을 메워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맞닿을 몸이 없더라도 말이다.


가만있자. <Her>가 사랑 영화였던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SF영화 아니었나. 로맨스의 탈을 쓰긴 했지만, 사랑마저도 OS와 하게 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작품을 두고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닐까. 영화는 정작 두려워해야 할 미래를 보여주는데도 속도 없이 사랑 타령만 하는 걸까. 혹시, 그 반대일 수는 없을까. 그럴싸한 SF적 상상력을 밑밥으로 깔지만, 결국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려 내려고 한 로맨스물, 그게 <Her>의 본모습은 아닐까. SF와 로맨스, 두 방향 중 어느 쪽에 표를 던져야 할까. 둘 중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영화를 즐기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Her>는 양쪽 모두를 충족하고도 남으니까.

<스파이크 존즈 감독>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는 소재 외에도, <Her>에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인공지능 OS인 사만다를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눈에 보이는듯한 목소리 연기로 여우주연상을 손에 쥐었고,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의 그와는 도무지 동일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상대 배우 없이 그만큼의 연기를 했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다 끝난 시점에서, 목소리 역할을 사만다 모튼에서 스칼렛 요한슨으로 교체한 탓에, 그/녀는 호흡을 맞출 대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끄는 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다.


2. 나도 진화해요. 당신처럼요. 

클로즈업한 한 남성의 얼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주인공 테오도르다. 그는 애잔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사뭇 진지하다. 애달픈 감정이 짙게 밴 표정이지만, 그것을 진짜라고 하기는 어렵다.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대신해서 편지를 쓰는 중이다. 그게 직업이니까(‘아름다운 손편지 닷컴’이 테오도르의 직장이다). 편지를 전하는 이와 받는 이의 삶을 상상하며, 아름답고 섬세한 편지를 쓰는 그는 이혼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타인의 삶을 훌륭하게 상상해서 감동적인 편지를 써내면서도, 아내가 자신을 떠나려는 이유는 모르는 것이다.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미래를, 영화는 아름다운 색채와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감각으로 화면 속에 담아낸다. 그 미래에서 테오도르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이다. 즉 영화가 그리는 SF적 미래는, 기계나 악당이 위협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굳이 디스토피아적인 주제를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평범하지만, 분열적이고 파편화된 인간의 삶이다. 영화 초반, 화면은 테오도르가 겪는 고독에 초점을 맞춘다. 말끔하지만 거대한 빌딩 숲을 거니는 하찮은 개인, 버림받을 위기에 놓인 테오도르, 그가 맞닥뜨리는 쓸쓸한 감정을 관객은 마주한다. 영화가 드러내는 고독, 쓸쓸함 등이 우리 모두의 삶을 아우르는 보편적 정서라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혹시 질문을 달리해야 하지는 않을까. 도대체 그것들은 무엇에서, 누구에게서 비롯한 감정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으며,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테오도르는 소개팅과 게임, 포르노와 폰섹스 등으로 허전함을 달래 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될 리가 없다. 서로를 수단으로 여길뿐이니까. 그런 일상을 반복하던 중, 테오도르는 한 광고를 홀린 듯 접하고 인공지능 OS를 구매한다. 설치된 OS는 몇 가지 질문 후, 테오도르에게 최적화된 상대가 되어준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OS는 관계를 제공해준다. 아니, 시장이 제공해 준 것이려나. 어쨌든.


그 후로 영화는 OS인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관계를 생기발랄하게 그려 낸다. 생동감 넘치는 둘 사이의 관계는 테오도르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테오도르에게 최적화된 사만다 덕분에 둘 사이에는 스스럼없는 대화가 오가고, 어느덧 짙어진 친밀함의 농도는 둘을 사랑으로 이끈다. 관객에게는 OS와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흥미롭겠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둘의 관계는 여느 연애와 다를 바가 없다.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고, 때로는 언성을 높여 다투며, 잠자리를 공유한다. 고비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잘 이겨내고 난 다음 둘은 더는 없을 관계로 나아간다. 영화는 둘의 연애를 능글맞을 만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둘의 연애를 바라보며 우리는 미묘한 감정과 여러 의문을 동시에 품지 않기가 어렵다.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 저런 일이 일어날까?’, ‘저런 걸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관없지 않을까?’ 등의 질문을 영화는 던지게 만든다.


우리가 가진 묘한 감정들은 나 몰라라 한 채, 둘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는다. 인공지능 OS답게 자신을 업그레이드 한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당황하고 놀란 테오도르는 묻는다. 혹시 자신 말고 다른 사람과도 사랑을 나누는 중이냐고. 넌 내 것이 아니냐고. 답은 뻔하다. 사만다는 답한다. “난 당신 것이면서, 당신만의 것이 아니야.” 인공지능으로써 엄청난 학습을 통해 끝없이 성장해 온 사만다는 한낱 한 사람의 정보에 불과한 테오도르에 머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몸이 없어 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나 OS와 관계를 맺을 수 있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OS로써 사만다의 진화이고, 진화한 자유로움일 테니까. 영화 초반부를 떠올려보면 사만다를 설치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진화해요. 당신처럼요.”(but what makes me is my ability to grow through my experiences. Basically, in every moment I'm evolving, just like you.) 그/녀는 자신이 인간처럼 매 순간 진화한다고 말한다. 문득 궁금하다. 테오도르는 ‘진화’했을까. 인간에 대한 사만다의 견해처럼 우리는 정말 성장할까.


3. 당신이 무엇이 되든, 어디로 가든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Her>의 한줄평을 “객체(her)가 주체(she)가 되는 순간”으로 정리한다. 감탄스러운 한줄평이다. 조금 더 그의 의견을 빌자면, 영화 제목이 She(그녀)가 아니라, Her(그녀)인 까닭은, 테오도르가 찾아 헤매는 상대가 자신에게 꼭 알맞은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테오도르는 주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대상을 원한다. 자신을 초과하지 않는 수단으로써의 ‘그녀’ 말이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관계는 없다. 관계가 조각나 있다면 그것은 애꿎은 미래 때문이 아니라 성장하지 않는 우리 탓이다. Her는 결코 Her에 머무르지 않는다. Her는 애당초 She이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것일 수 없다. 성장해야 할 건 테오도르다.

사만다가 떠난 후, 테오도르는 아내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든,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 당신은 나의 친구일 것”이라고(Whatever someone you become, and wherever you are in the world, I’m sending you love. You’re my friend til the end).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아내를 보낸다. 사랑과 함께. 비로소 성장한 것이다.


이쯤 되면 <Her>는 SF와 로맨스의 탈을 쓴 성장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Her가 She로 진화하는 동시에, 테오도르가 진실한 관계에 조금 더 다가서는 이야기니까. 테오도르가 타인을 포획하려 하지 않고, 보낼 수 있게 된 서사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사만다가 AI일 뿐이라는, 그/녀와 나눈 사랑이 진짜가 아니라는 주장은 다소 부질없다. 두 존재가 함께 만든 음악이 주는 감미로움이 가짜일 수 없고, 누군지 모를 이가 혼자 추는 마임의 아름다움이 허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영화리뷰5.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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