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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poong Jun 12. 2023

”초코시럽 같은 산 기세로 3개의 언덕을 만들었다“

::간단한 동네 구조 설명 :: 제2장 소격동 세계의 중심 (3/4)

:: 간단한 동네 구조 설명

:: 제2장 소격동 세계의 중심 (3/4)


학교가 끝나면, 나는 서쪽 정문을 빠져나왔다. 그네를 지나고 등목을 지나고 맨들맨들 철봉 옆을 지나면서였다.수업이 끝나면, 마치는 종이 울렸다. 마침종은 딩동뎅의 반복음이었고 음이 점점 멀어지는 종이었다. 이 작은 선율은 반복되었다.재동학교는 사실상 동산 위에 있는 학교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정문은 담장 서쪽에 면해 있었는데, 이후 도로가 나고 학교 운동장이 잘려나가고 남쪽에 정문이 생긴다. 도서관 언덕 도로도 아직은 나있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가스배달집과 고(古)가구집을 지나 얼음집과 연탄집 쪽으로 우회한 다음, 풍문여고-정독도서관 길을 따라 도서관 사거리까지 올라가야 했다. 재동학교 앞의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과 마찬가지로 정독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 역시 이후에 생긴 것으로 그 당시에는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학년 초 어느 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나의 반 친구가 나와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아이가 떡볶이집을 지나 정독도서관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익숙한 뒷모습과 가방이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같은 반 친구였다.  “야!” 난 친구를 불렀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 높였던 것이다.“어?” 분식집 근방에서 친구가 뒤를 돌았다. 한재혁이었다. “뭐 사 먹으려고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분식집 부근까지 가방끈이 흘러내리지 않게 양팔을 벌리며 달려갔다. 정독도서관과 덕성 여중고 사이의 길에는 많은 분식집이 있었다.“집에 가?” 친구가 말했다.“어.”“소격동 살아?”“소격동?” 앞서 봤듯이, 나는 학년초에 이사 왔기 때문에 동네 이름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어. 저기 저쪽에. 저기가 소격동인가.”“어.” 그리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너 뭐 먹게?” 내가 다시 물었다. 분식집 앞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내 별명은 똥배, 뚱보였고 또 제일 분식 검정빛 떡볶이가 항상 맛있었기 때문이었다.“어. …” 거기서 친구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더니, 텀을 두고 이어 말했다. “니!” 한마디로 “아니!”라는 뜻이었다. “뭐야 그게?”“아니라고. 어차피 돈 없어.” 친구는 ‘아니’를 ‘어’ 그리고 ‘니’로 시간차를 두고 발해 약간 재미를 주려는 것이었다. 친구는 재치가 있었다. 까먹을지 몰라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친구의 재치는 이런 류의 재치였다. 내 동네에는 사복경찰이 상당히 많이 깔려 있었다. 주요 기관 시설이 주변에 포진해 있었고 국군병원에 정부청사에 광화문, 나아가 청와대까지 있었다. 사복경찰 아저씨들은 길에 사복을 입고 서 있었지만, 누구나 그 모습을 보면 경찰인지 알 수 있었다. 글쎄 테가 다르고 늠름했기 때문이었달까. 길에 가만히 서 있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그렇다. 아저씨들은 한재혁이나 남준혁, 그러니까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얼음 땡을 하고 과자를 사 먹고 동네를 싸돌아다니고 있으면 말을 거는 것이다. 어디에 사느냐 그런 종류의 말이다. 세계 최고로 지겨워질 때, 어른들은 아이에게 이름과 어디 사는지를 묻는다. “이름 뭐야.”“네?”“니들 이름 뭐냐고.”“전 이지훈이요.” 먼저 내 동생이 말한다. 내 동생의 이름은 이지훈이다. “저는 한재혁이고요. 얘는 이상호, 얘는 남준혁이에요.” 자 이제 한재혁이 말을 하는 것이다.“그래?”“네.”“그럼 니들은 어디 살아.”“저요?” “어. 니들.”“저는요...” 그리고 한재혁이 말하는 것이다. “집이요. 바로 집에 삽니다요.” 나와 동생과 남준혁은 모두 웃었다. “저희는 지붕 밑에 살아요! 으하하하.” 다른 놈이 거든다. 경찰 아저씨도 약간 웃겨 했지만 웃지는 않았다. “니들 장난쳐? 어른들한테 장난쳐?” 그러면서 경찰 아저씨는 발을 굴렀다. 그럼 우리는 갑자기 기마자세가 되어 달릴 준비를 하고 약간 거의 달릴 뻔하게 된다. 신발 바닥이 삐빅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 장난을 치면 가끔씩 붙잡히기도 하는데, 그럼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고 한 번 봐달라는 소리를 지르게 된다. 어른들은 손에 힘을 주면 진짜 아프게 되는데, 그럼 이런 비명이 나온다. “사람 죽는다! 경찰이 사람 죽인다! 여기 경찰이 사람 죽여요!” 그럼 아저씨는 재빨리 팔을 놓는 것이다. 그러면 못쓴다면서 말이다. 이런 식이다. 내 말은 이런 식이 한재혁의 유머라는 이야기다. 또 언젠가는 할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골목에서 놀기도 한다. 주먹 야구나 헐랭이 멍청한 제기차기 같은 것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면 항상 행인들이 지나간다. “이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나?” 초행길 할머니가 묻는다.“이쪽으로 가면요?” 강북 쪽의 골목길은 꽤나 복잡하다.“으응. 그래. 뭐가 나오지?”“네. 이쪽으로 가면요-" "바로 골목이 나옵니다요.” 바로 한재혁 식이다. 태도는 아주 덤덤 당당하다. 너 어디 사니? 저는 집에 살아요. 너 어디 사니? 저는 한국에 살아요. 너 어디 살아? 저는 지구에 삽니다. 니네 집 어디에 있어? 우주 속에요. 지구 속에요. 이런 식인 것이다.친구는 자기가 소격동 경복궁 옆에 산다고 했다. 경복궁 옆에? 잘 그려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친구 말은 경복궁 옆 도로에 학고재가 있는데, 그 뒤쪽이 자기 집이라는 것이었다.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도서관 쪽으로 올라갔다.“그럼 니네 집이 이쪽이야?” 내가 물었다. “어.” 친구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거 또 뒤에 ‘니’라고 말하면서 뒤집히는 거 아닌가’하고 생각했지만, 뒤에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진짜로 집이 부근인 것 같았다. “저기.” 국군병원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쪽 길로는 인왕산이 바라다 보였다. 경복궁 담장과 나무들 너머로 인왕산이 짱박혀 있었던 것이다.이 길 한쪽은 국군병원 담벼락이 전부 차지하고 있는데, 이 담벼락에는 버찌 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계절이면 담장 아래로 보랏빛이 물들어 있곤 했다. 국군병원 앞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정문을 지키고 있었고 당시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국군병원을 기무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나중에 국군병원은 세계에서 가장 멍청하고 개떡같고 한숨 나오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된다.)그 뒤 나는 학고재 친구와 하굣길을 함께 하곤 했다. 팔판동과 화동에 사는 다른 친구들과도 같이 어울려 화동길로 하교할 때도 있었다.미안하지만, 여기서 잠시 동네 구조를 보고자 한다. 우리 동네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로 여기에는 3개의 언덕이 놓여 있었다. 북한산 산줄기는 대단해서, 동네에 초코시럽 같은 산 기세로 3개의 언덕을 만들었다.그리고 각각의 언덕마다 학교가 서 있었다. 가운데 언덕인 재동 언덕에는 세계 최고의 명문 재동국민학교가 있었다. 서쪽 언덕인 화동 언덕에는 정독도서관(옛 경기고 자리)이 있었다. 그리고 맨 동쪽 계동 언덕에는 대동 학교가 있었다. 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경복궁 너머로는 인왕산이 있었고, 창덕동 너머로는 대학로가 있었다. 경복궁 위로는 청와대가 있었으며, 창덕궁 위로는 성균관대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소격동, 세계의 중심은 화동 언덕과 경복궁 사이에 있었다. 이 소격동 아래로는 사간동과 안국동이, 북쪽 위로는 삼청동과 팔판동이 있었다. 이것이 내 동네인 것이다.“너도 이쪽 동네 살아?” “응.” 나는 작은 골목을 가리켜 보았다. 그 길을 조금 들어서면, 북악산이 바라다 보인다.그러니까 나와 친구 모두 소격동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는 약간 더 멀리 살고 있었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친구네 집이 우리 집보다 경복궁에 더 가까이에 있었다.“나는 이쪽인데….” 내가 소격동/화동 골목 쪽을 가리켰다. 화동과 소격동이 서로 면한 곳에는 골목이 있었다. “그리로도 갈 수 있어. 나도.” 친구가 말했다.친구는 우리집 골목으로 들어서 주었다. 소격동/화동 골목에도 작은 구멍가게며 조명가게며 쌀집 등이 늘어서 있었다. 나중 일이지만 학교 언덕에 도로가 날 때, 정독 언덕에도 도로가 나게 되고, 그러면서 주변은 쓰레기 컨테이너가 들어온다. 물론 이 일은 조금 나중 일이다. 아무튼 이후에는 도서관 언덕을 지나, 또 정독도서관 옆에 있는 수령이 오래된 보호수 나무를 지나, 도서관을 면해서 화동 골목에 들어서곤 했다. 등하굣길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언덕들 위로 도로가 뚫리기 전이라 우리는 지금 안국동 아래를 돌아서 올라오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수령 오래된 나무 앞에 거대한 녹색의 쓰레기 컨테이너 박스가 생기고, 화동 쪽으로 향해있는 정독도서관 담벼락에는 리어카들이 손잡이를 하늘로 향한 채 무리를 지어 세워지게 된다. 보호수 주변은 일종의 중간단계의 쓰레기 정류장이라고 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리어카 주차장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리어카의 배에는 검정색 타이어가 달려 있었고, 타이어와 리어카는 철사 같은 것으로 결착되어 있기도 했으며, 청소부 아저씨들이 내리막길 같은 곳에서 속도를 줄이고자 할 때에는, 마치 롤러스케이트의 뒷굽처럼 손잡이 부근을 약간 들어 속도를 줄이곤 했다. 타이어가 바닥에 닿는 마찰을 이용하는 것이다.가끔 이 골목 초입, 정독도서관의 담벼락을 등지고서는, 뻥튀기 아저씨가 와서 뻥튀기를 팔곤 했다는 점도 적어 둔다. “뻥이요~!” 하면 폭발음이 들리곤 했다.   한재혁은 그날 삼청 파출소에서 왼쪽 길로 꺾어 자기 집으로 향했다. 나로서는 하굣길의 길동무가 생긴 것이라 기분이 좋았다. 누구나 국민학교 첫 번째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한재혁은 내 국민학교 첫 번째 친구였다. 한재혁네는 슬레이트 지붕 집으로 식구로는 누나와 할머니가 있었다. 아버지는 사우디인지 어디인지 중동 있다고 했다. 한재혁네 가게 되면, 남준혁이 같이 놀러 와 있곤 했다. 남준혁은 한재혁 유치원 때부터 친구로, 역시 모두 같은 반이었다. 할머니들끼리도 같이 친구 사이였다. 언젠가 한재혁네 집 앞에서 한재혁을 같이 기다릴 때였는데, 남준혁은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 숨죽이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재혁 누나는 친 누나가 아니라고 말이다. 어린이치고는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정치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아무튼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듣는 그런 내용이 어딘지 거북스러웠던 것이다.참고로 남준혁은 팔판동에 살고 있었고, 형이 있었다. 하루는 팔판동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야구를 할 때였다. 팔판동에서 청와대로 오르는 길에 턱을 진 곳에 돌 축대가 있는데, 그 아래로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고 아이들은 그곳에 모여 야구를 하곤 했다. 공은 테니스 공이었다. 내 차례에 배트를 휘두르자, 공이 타석 앞을 튀어 높게 올랐다. 나는 방망이를 던지고 1루로 열심히 뛰어갔다. 공은 제법 튀고 굴렀다. 내가 먼저 1루에 도착하고 3루수가 공을 잡아서 1루로 던졌다. 공이 1루수의 앞에 떨어지고 동동 굴러 도착했다. “세입!” 내가 소리쳤다. 내가 공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뭐가!” 어떤 형이 소리쳤다.“어. 제가 빨리 들어오지 않았어요?”“공이 더 빨랐어!”“제가 더 빠른 것 같았는….” 내가 이의를 제기하는 듯하자, 팔판동 그 형이 급작스레 소리쳤다. “니가 공보다 빨라?!” 내가 공보다 빠르다는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꾸를 하다가는 때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닌 것 같은 데의 표정을 짓고 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표정은 거의 숨길 수가 없었고, 이 표정을 본 이후로, 팔판동 형은 길을 가다가 나를 보면, “똥배 이리 와봐!” 하고 소리쳤다. 이제부터 내 별명이 똥배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장난 조로, 그러나 충분히 위협 조로 내 팔뚝을 때리곤 했다. “어디 가. 어?” 팔뚝을 때리는 건 별로 아프지가 않았다. “집에 가는데요?” 길에서 만나면 항상 이런 식이다.“너 이쪽에 살아?” 다시 때리면서 말했다. “네.” “그래?” 그런데 갑자기 팔판동 형은 상대를 향해 찍기라도 하려는 듯 팔꿈치를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손으로 팔꿈치를 긁었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장난이었다.  “장난이야, 장난.” 팔판동 형은 웃었다. 다시 형은 찍기라도 할 듯이 무릎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또 손가락으로 무릎을 긁었다. “또 속냐?” 팔판동 형은 웃었다. “잘해, 똥배!”“예.” 하지만 이런 것 이외에도 가끔 만나면 가슴팍을 주먹으로 툭툭 치기도 했다. 이건 실제로 굉장한 위협이 된다. 견디다 못한 나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일러바쳤다. 물론 이런 일은 좀처럼 없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부모님에게 전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어딘지 당당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어떤 형이 나를 괴롭힌다고 말하자, 엄마는 “그 흰옷을 주로 입고 다니는 그 아이?” 하고 되물었다. “어.”“그 애, 남준혁 형인데?” 엄마가 말했다. “형이라고?”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엄마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다음 주부터인가, 그 형은 나를 다르게 대해줬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나를 만났는데도, 갑자기 호의를 보이면서 잘해준 것이다. 엄마는 대체 그 형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 이후부터 그 형은 내게 호의적으로 대해줬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사탕 같은 것도 주고 그랬다. 이 형제가 팔판동의 양옥 2층 집에서 살고 있었다. 조부모와 함께였다.“그 형한테 한대 맞으면, 학교까지 날라가. 하와이까지 날라가!” 그 형은 싸움을 아주 잘하거나 짱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순위권이었으며 나이가 더 어린애들에게는 “정말 무서운 형”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서 팍 때려!” 내 똥배라는 별명을 그 형이 지어줬다니까, 한 친구는 설명했다. 윗옷의 소매를 안으로 말아 넣은 다음, 안쪽에서 소매를 잡아 쥔 손으로 펀치를 날린다는 걷었는데, 반팔이었지만 열심이었기 때문에, 친구는 어깨가 드러날 정도로 팔을 휘둘렀다. “이렇게!”




(3부 끝. 4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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