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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poong Jun 19. 2023

:: “여러분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소격동 세계의 중심 (4/4)



:: 열쇠를 전기코드에 꽂으면 어떻게 될까. 집에는 금기가 있었다.

:: ‘송아지는 나를 좋아할까?’ 8살 나는 느닷없이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88올림픽 이후, 독일은 통일하고 소련은 붕괴한다.”

:: “여러분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가 “엄마 맘마” 등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부모는 내게 시조를 가르쳤다. '시조는 내용이 짧다. 글의 구조나 형식을 쉽게 익힐 수 있다.'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아주 소격동에 와서는 종로 서적에서 시조 책을 사와 본격적으로 시조를 가르쳤다. 엄마는 커다란 링 단어장을 가져다가 하나씩 넘겨 보였다.



어린이에게도 시조는 인상을 남겼다. 정몽주와 이방원이 서로 나누었던 시조도 인상적이었고, 이항복의 시조도 인상적이었다. 이항복은 오성과 한음에서 나름 밝은 이미지였지만 시조는 제법 어두워 대비가 되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시조도 있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 같은 그 은덕을, 어찌 다해 갚사올꼬.”



효도가 주제인 시였는데, “아버님 날 낳으시고”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가 아가를 낳는 것 아닌가. ‘낳은 것도 기른 것도 엄마. 아버지는 한 게 없어 보이니 낳았다고 해준 건가.’

  


엄마는 시조를 외워보라 시켜놓고는 무릎을 꿇고 방바닥 걸레질을 했다. 왜 걸레질을 하는데 무릎을 꿇냐고? 옛날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했다. 원래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제발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져 버리라고 말이다.



무릎 연골에 더 큰 충격을 주기 위해 아이들은 원숭이떼처럼 등판 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세를 잡고 엄마 머리를 잡아당기며 “으랴으랴, 달려라 달려!”를 외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동생도 함께 등에 올라타 시조를 외우곤 했다.

  


우리 소격동 방은 따뜻했다. 가끔 방안에 있으면, 남쪽 반투명 창으로 큼지막한 햇빛이 들어왔다. 집 먼지는 빛났다. 나는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 반짝이며 위로 솟아오르는 먼지들을. 길게는 못하고 몇 초 정도 말이다.



빛을 향해 팔을 내밀면 팔뚝에 있는 털은 갈색빛을 띄곤 했다. 내 팔에 달린 잔털들. 빛을 받은 팔뚝은 포동포동해 보였고, 잔털은 노란빛이 도는 듯했다.



책상 위 공책과 지우개와 연필깎이 위를 날아다니던 보풀 같은 먼지들. 가구의 열린 각도에서만 먼지가 보였고, 보이는 먼지들은 모두 하얗게 빛이 났다. 빛나는 먼지들은 햇살 속의 공간을 천천히 움직이며 천장을 향해 오르곤 했다.



내가 몸을 들썩이자 먼지는 햇살을 맞고 다시 뽀얗게 일었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토요일 오후에는 큰 창이 떨군 빛 아래에서 우리는 낮잠을 자곤 했다. 특히 나와 동생은 바닥에 침을 흘리면서였다.



언젠가 나는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열쇠를 전기코드에 꽂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집에는 금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태권도 끈으로 장난을 치지 말라고 했다. 지인 아들이 태권도 끈을 갖고 놀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줬던 것이다. 동생은 근처 성덕 체육관(태권도장)을 다니고 있었다.



또 아버지는 성냥에 대해서도 강력한 주의를 줬다. 아이가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집을 전부 태운 실제 사례를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끈과 성냥을 항상 유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기코드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은 110볼트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열쇠를 보면 마치 110볼트 전기 코트에 꽂으라는 것처럼 보인다. 얇고 길쭉했던 것이다. 디자인적인 일체감이랄까. 미학적 충동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코드에 열쇠 두 개를 꽂았다. 꽂자마자 돼지코 코드에서는 불꽃이 일었다.



“엄마! 엄마!! 엄마!!!!”



나는 엄마를 불렀다. 전기 코드에서는 불꽃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당에 있던 엄마는 내 구호 요청에 곧바로 미닫이문을 거칠게 열고 신발을 신고 방안으로 들어와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무사처럼 열쇠 뭉치를 코드에서 뽑아내 던졌다. 빠르고 단호하며 강력하였다. 엄마가 뽑아 바닥에 던진 열쇠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코드 주변도 검었다. 엄마는 내게 고함을 쳤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심하지 않았다.



“열쇠를 넣으면 어떻게 해! 불나려고!"

  


그날 나는 20대 정도를 맞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봤듯 엄마는 체벌 기준이 없다. 큰 잘못에는 작게, 작은 잘못에는 크게.



저녁에 들어오신 아버지도 별말씀이 없었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전기 스파크 때문에 놀랐을 거라 생각했을까. 내가 그날 우황청심원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항상 받아쓰기 시험이 있다. 시험을 보고 오면 엄마는 짜파게티나 라면을 끓여 주었다. 잘 보면 짜파게티, 못 보면 라면이었는데 집에는 곤로가 있었고 그 위에 물을 끓였다. 작은 난로 같은 것인데, 시대적으로 볼 때 아궁이와 가스레인지 사이라고 보면 된다.  

  


한 번은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데, “삼촌”이 나왔다.

  


여자 담임 선생님은 교실을 천천히 걸었다. 뒷짐을 지고 분단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손가락을 껴둔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는데, 내 시선이 잠시 거기에 머물곤 했다.

  

“자. 삼촌! 삼촌 써보세요, 삼촌. 아버지의 형제들을 삼촌이라고 하지요? 삼촌 써보세요, 삼촌.”



‘삼촌인가? 책에서는 삼촌이었던 것 같고 선생님도 삼촌 발음인 것 같고. 집에서는 확실히 삼춘인데.’ 친외가 친척 모두는 충청 대전이었다. 때문에 나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는, 삼촌을 완전한 입모양으로서 -아래 입술을 조금 내밀며- “삼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 진짜 뭐지?'



나는 용케도 촌수 계산을 통해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아! 부모는 1촌이라고 하고, 형제자매는 2촌이라고 하지? 그런데 엄마를 두고 1촌이라고 하지는 않지? 동생을 두고 2촌이라고 부르지는 않잖아!’ 안타깝게도 나는 당시 ‘4촌’을 생각해 보지는 못했는데, 사촌은 촌수가 그대로가 명칭이 된 경우다.

  


‘그래 삼춘이라고 쓰자. 삼촌은 촌수라서 아닌 것 같다. 그래 맞다. 삼춘이 맞다. 집에서도 삼춘이라고 부른다. 그래 삼춘이다.’



결국 나는 “삼춘”이라고 적었다. 당연히 틀렸기에 그날 엄마는 라면을 끓였다.



한 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앞으로”가 문제에 나왔다.

 


“이번에는… 앞으로.” 선생님은 책장을 넘기시면서 문제를 내셨다. “앞으로를 써보세요. 앞. 으. 로.” 선생님은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서 발음해 주시기도 한다.


“앞으로 나란히 할 때 앞으로 쓰죠? 노래도 있죠?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선생님은 잠시 음을 실어 노래를 했다. 선생님은 노래도 꾀꼬리에 풍금도 잘 쳤다.

  


나도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람들이 발을 맞추고 팔 동작을 하며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피리 부는 아저씨와 멍청한 어린이들이 나란히 한 줄로 바다에 빠져 죽는 모습이 그려졌다. 꼴까닥 꼬르륵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철자가 어떻게 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정을 저지르고 말았다. 진짜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결국 옆 짝꿍 부반장 송아지 것을 훔쳐봤다. 커닝. 커닝이었다.


 

“이상호!” 선생님이 화살처럼 소리쳤다.

 


“네?!” 나는 뜨끔해 놀라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지금 친구꺼 훔쳐본 건가요?”

 


“네?” 아이들은 불리한 상황이면 시간을 벌기 위해 되묻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짝꿍 꺼 훔쳐봤냐고요." 선생님이 다시 한번 말했다.

 


“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그럼 돼요?"

 


“아니요.”



“이리 옆으로 나와 손들고 서있어요.”


 

나는 재빨리 자백하고 형벌을 받았다. 손을 들면서 한참을 생각해 봤다. 팔이 아팠다. 그러다가 문득 작은 전구가 반짝였다. ‘“압”이 아니다, “앞”이다’ 하고 답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다. 손들고 있을 때 생각났다면, 책상에서도 생각났을 거 아닌가. 다음부터는 시험시간을 끝까지 쓰자고 생각했다. 시험시간이 있으면 시간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생각하고 계속해서 기다리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고로 그날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 점을 맞은 사람은 없었다.



1학년 내 담임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착하고 예쁜 우리 반 여자 부반장 송아지 이야기다.



학년 초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있잖아….”

 


“왜?”

 


“짝꿍이 있는데.”


 

“으응 왜?


 

"짝꿍이… 싫어.” 나는 웅얼거렸다.


 

“싫다는 거야? 왜?”


 

“…….”


  

나도 짝꿍이 왜 싫은지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짝꿍 이는 썩어 있었다.


 

“싸웠어?”

 


“아니. 짝꿍이… 못생겼어….” 내가 말했다. 아이들은 대쪽같다.

 


“못생기고 이빨이… 썩었어.” 저학년들은 치아가 썩곤 한다. 그리고 내 짝꿍 앞니가 썩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튼 내 취지는, 이빨이 썩고 못생겨서 짝꿍을 바꿔달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짝꿍을 했으면 하는 아이가 있었다. 마음에 품고 있던 여학우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반에 송아지가 있는데….” 송아지는 별명으로 내가 커닝한 우리 반 부반장이다. 물론 똑똑하고 야무진 여학우였다. 아이들은 보통 달리기를 하면 볼이 빨개지고 광대 주변으로만 동그랗게 열이 오르는데 그 아이는 특이하게도 거의 턱까지 복숭아처럼 빨개지곤 했다.

 


자 그럼 왜 송아지냐? 많은 별명이 간단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그러했다. 박 씨의 별명은 바가지가 되었으며, 육 씨는 육개장, 주 씨는 주전자, 송 씨는 송아지가 되었다. 안 씨는 안성탕면이 되었는데, 신 씨는 신문지나 신라면이 되었다. 정 씨는 “정나미 떨어져”의 정나미였다. 일종의 마구잡이로 작법이었다.

 


어머니는 내 건의를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학부모 간담회에서였다. 아들이 누구와 짝꿍을 하고 싶어 하더라. 담임선생님은 이를 귀엽게 봐주셨다.

 


그리고 다음 주 나는 송아지와 짝이 되었다. 세상에. 짝 바꾸기 시간에 보니 내 짝이 송아지인 것이었다. 우리는 가장 앞자리였다. 내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하지만 나는 짝꿍을 잘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 난데없는 벼락같은 축복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짝꿍은 내 왼쪽, 교탁과 칠판은 내 오른쪽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선생님에게 과도하게 집중하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 두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일종의 ‘매직아이’(입체 그림책) 현상이었다.



‘나는 송아지를 좋아하는데, 송아지도 나를 좋아할까?’ 8살 나는 느닷없이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알고는 싶었다. 물어보면 될 거였지만 물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도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죽으면 송아지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송아지가 운다면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죽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자 그럼 내가 죽었다고 소문을 낸다면? 죽지는 않고 그냥 소문만 낸다면? 그렇다면 마음을 알아낼 수 있다. 슬퍼한다면 날 좋아하는 것이다. 울고 있을 때 내가 짠하고 나타난다면, “상호야, 죽지 않았구나!” 그런 웃는 눈물로 나를 반긴다면, 그럼 송아지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내 멍청한 머릿속에서, 송아지는 이미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억이 난다 이게. 누구나 처음 언젠가 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언제인가. 내가 묻는 것이다. 그 처음이 언제인가. 나는 이때이다.



역시나 멍청한 생각을 조금씩 하며 교탁 앞 책상에서 과도하게 집중하던 어느 날,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말이다. 하지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나는 꽤나 모범적이었지만 집에서는 형들에 속아 돈도 훔치고 열쇠도 코드에 꽂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다. 뜨거운 물이나 찬물에 갑자기 손을 넣으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아냐고 말이다. 난 뜨거운 물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나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이동 반지하에 살 때, 멍청한 저녁 어린이 프로 손오공 인형극을 보다가 뒷 지게를 진다는 게 그대로 국그릇에 손을 담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난리가 나고 할머니는 내 손에 된장을 발라줬다. 아직도 내 오른손에는 흉이 있다. 아무튼 그래서 대신 나는 찬물을 떠올렸고, 손을 들어 대답했다. 찬물 손이 처음에는 뜨겁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맞다 칭찬을 해주셨다.



이후 언젠가 선생님은 마술 하나를 보여주었다. 노란 고무줄을 하나 꺼내시더니, 손가락 하나에 묶어 보이는 것 아닌가.



“자 오른쪽에 있지요? 여러분이 보기에는요. 저한테는 왼쪽이지만.” 구리시 거울처럼 이쪽에선 왼쪽이지만 저쪽에서는 오른쪽이다.



“자. 봐요.”



선생님은 로마자 “II”자 모양으로, 검지와 중지를 들어 보였다. 고무줄은 오른쪽에 묶여 있었다.



“잘 보세요. 마술입니다, 수리수리!” 그러고는 정말 한 0.5초간 고무줄 손을 감싸 쥐었다.



“짜잔!”



“와!”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고무줄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선생님은 고무줄의 위치를 몇 차례 더 바꾸어 보였다. “짠” 하면 왼쪽으로 움직였고, “짜잔” 하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계속 계속 움직였고, 몰래 안 보이게 어떻게 다른 손으로 고무줄을 옮겼다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였다.



선생님은 이후 이 마술의 해답과 원리를 알려주었다. 나는 이를 잘 익혀 놓고 있고 잘 써먹게 된다. 다른 어린이들을 보면 이 마술을 써먹는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여기서 마술의 해법은 말하지 않겠다. 영화 시나리오에 써먹을 생각이다. 지금 이 주변 문장들은 나중에 지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제목은 “진경소녀”다. 이 글이 잘 돼야 영화까지 갈 수 있다.  



* * *



"자자. 조용히 하세요. 다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난 가을이다.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급작스레 끝난 것처럼 느껴졌으면서도 민족적 행사가 남긴 여운은 계속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4위라는 높다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우리 어린이들은 이 순위에 놀라지 않았다. 왜? 이제 88올림픽이 좀 사람 같은 사람이 되고 나서 본 최초 올림픽이었기 때문이었다. 4위. 그것은 우리들의 기본값이었다. 우리 세대부터는 그 정도 순위가 우리나라 원래 위치였던 것이다.

  


올림픽 1위 국가는 공산진영의 소련이었고, 2위는 자유진영의 미국이었으며, 3위는 역시 공산권인 동독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올림픽 2년 뒤 서독은 동독과 통일한다. 흡수통일이었다. 그리고 3년 뒤 소련은 이른바 소련 붕괴로 여러 나라로 쪼개져 버린다. 88올림픽 이후, 독일은 통일하고 소련은 붕괴한다.

  


“여러분 어때요? 올림픽이 끝났지요?” 선생님이 말했다.

  


"네!" 아이들은 대답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대답은 잘했다. 모두 “네” 할 때면 아이들은 서로 간에 모두 합창 같은 것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이제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끝마쳤어요. 우리나라가 몇 등했지요?”


 

“4등이요!” “꼴등 꼴뚜기요!” 멍청한 애들이 멍청한 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네 맞아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4등을 했어요. 그 정도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해줬어요.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들이 왔어요. 봤지요?”


 

“네!” 아이들이 대답했다.


 

“백인도 있었지요?”


 

“네!”


 

“흑인도 있었지요?”


 

“네!


 

“우리나라가 이제 가을에 올림픽을 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외국인들이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어요. 저기 추운 나라에서 온 백인들은 이랬어요. “와-, 여기 대한민국 정말 따듯하다, 내가 있던 추운 나라는 정말 추웠는데, 여기 한국이라는 나라에 올림픽을 구경하러 와서 보니까, 진짜 따뜻하고 좋은데? 최고! 한국 최고! 정말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넘버원!”” 선생님은 아래턱에 미소를 담았다.


 

"으하하하하!" 아이들은 좋아하며 박수 쳐 웃었다. 앞니가 빠진 애들도 시원하게 웃으며 책상을 두들겼다


  

“이제, 저기 더운 나라에서 온 흑인들도 있었어요. 흑인들은 우리나라에 와보니까 딱 이런 거예요. “와-, 여기 대한민국 코리아 정말 시원하다! 내가 있던 더운 나라, 정말 덥고 그랬는데, 여기는 정말 시원한걸? 한국 최고! 여기 대한민국 최고! 대한민국 넘버원, 코리아 넘버원!“”

  


"으하하하하!" 아이들은 역시 또 좋아했다. 비슷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말을 들으면 왠지 뭔가 더 좋아진다. 어떤 아이들은 감격해서 “와-“ 하고 감탄하며 좋아했다.


  

“해외에서 온 손님들이, 한국인은 질서도 잘 지키고, 길도 잘 가리켜 주고, 길거리에 쓰레기도 별로 안 보이고 그래서 정말 좋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잘 마칠 수 있었어요. 여러분들도 길거리에 쓰레기 안 버리고 잘 하고 그랬지요?”

 


“네!” 참새들이 대답했다.


 

“그래요. 네. 그래요. 네. 잘했어요 여러분. 여러분들 잘했어요. 여러분들이 잘 해줘서 서울 거리가 깨끗해졌어요. 길 가다가 쓰레기를 보면 줍기도 해주고 그래서에요. 여러분 길을 다니다가 쓰레기 주워 본 사람? 자기가 버리지 않았는데도 주워 본 사람?” 네댓 명의 아이가 팔을 흔들며 손을 들었다. 남준혁도 손을 들었다.



“준혁이. 어.” 선생님이 발언권을 주자마자 남준혁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있잖아요! 제 친구가 있는데요. 걔가요. 그냥 과자도요. 길에서 막 먹구요. 사 먹지 말라고 했는데도 먹구요. 쓰레기 봉지를요. 그냥 막 버렸는데요. 길가에다가 버렸는데요. 과자는요 저한테도 주고 그랬어요. 근데 그래 갖고요, 제가요 그 쓰레기 주웠어요. 근데 있잖아요. 그 걔도요, 얼마 전에 자기도 쓰레기 봉투 주운 적이 있어요. 길 가다가요. 그런데 걔요, 저번에요 자다가 오줌 쌌어요. 불나가지고, 꿈에서 불나가지고 불을 끄려고 그랬대요."

 


“으하하하!” 아이들은 오줌 얘기에 부서져라 손바닥으로 책상을 쳐댔다. 횡설수설 남준혁이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 꼬마 아이들은 약간 횡설수설한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조용조용!. 우리 학생, 잘했어요. 남준혁 우리 친구 잘했어요. 쓰레기를 주운 것은 참 잘한 일이에요. 그 친구도 잘했어요. 우리 학생처럼 길거리 쓰레기를 주워서 올림픽을 깨끗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우리나라는 더 좋아진 나라가 되고 잘 사는 나라가 된 거예요."


  

"여러분!"

  


"네."

  

“여러분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네.”



“여러분들이 이제 나중에 어른이 되지요?”



“네!”



“여러분들이 그때~!” 선생님은 끝음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들이 그때, 우리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돼요~!"


  

"네."


  

"여러분은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네!"


  

"여러분! 선생님은 여러분만 믿겠어요. 알겠지요?”


 

“네!”



“여러분들 꼭이에요~!”



“네에!”



“여러분이 우리나라를 꼭 더 훌륭하고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해요!”



“네에~!” 아이들은 목청껏 대답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세계의 중심에서였다.




끝.




(제2장 소격동 세계의 중심, 끝.

제3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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