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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커피 Sep 28. 2020

이제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섬 원산도에서

섬과 부부는 닮았다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그동안은 여객선을 타고 들어와야 했던 섬, 원산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이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번거로움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는 안면도 영목항과 다리로 연결되어 자동차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섬과 육지를 연결시켜주는 원산안면대교를 건너 섬에 도착했다.

원래는 충남에서 안면도 다음으로 큰 섬이었다. 안면도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제일 큰 섬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 다리로 연결되었으니 충남 제일 큰 섬이 아닌 걸까. 섬이 다리로 이어져 배를 타고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면 섬이 아닌 걸까. 섬의 특징을 잊게 되는 걸까. 한번 섬이 었던 곳은 어떤 교통수단으로 들어와도 섬인가. 아니면 육지인가.



섬을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하지 못할 땐 나름의 신비가 있다. 궁금증이 있고. 배 시간에 맞춰서 나가야 한다는, 안 그러면 섬에 갇혀 버린다는 조바심이 있다. 그래서 더 섬에 들어오려고 배를 탔다. 이제, 튼튼한 콘크리트 시멘트 교각으로 연결된 섬은 친근해졌지만 꼭 정해진 시간이 아니어도 된다는 갈구는 사라졌다. 그동안 싸매고 있던 미지의 보물 상자는 어떤 보석과 즐거움을 선사해줄까. 원만한 경사의 바닷가와 산, 풍부하고 다양한 물고기 어종을 잡으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충족시켜 줄까.


급하게 잡은 캠핑 계획이었다. 생각지 않은 휴가가 떨어졌다.

"유리 자재가 없어서 금욜 쉬라는데?"

캠핑과 낚시를 동시에 하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새로운 장소가 눈에 띈 모양이다. 원산도에 들어왔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손때가 덜 묻어 있는 곳이라 했다. "팔뚝 만한 우럭을 잡아 줄게" 너스레를 떠는 남편이 오늘따라 어색하다.


사실 요 며칠 동안 남편과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가까이 있지만 만날 수 없는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 멀리 있는 형제자매들의 아픈 소식에 날카로운 그였다. 나도 언니이자 부모 같은 언니네의 안 좋은 형편에 마음이 쓰였다. 며칠 전 무심히 던진 몇 마디에 난 화를 내며 "배려 없는 당신의 말에 상처를 받아!"라고 했다. 남편도 내 말에 당황하며 "어쩜 갈수록 인정이라곤 없어지는 건지"라며 맞대응했다.




그래, 섬에서 풀자.

부부에게 때로는 대천항과 원산도 섬을 여객선 배로만 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저기 있지만 그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적당한 때에 빠져나오는 긴장감도 있어야 하나 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채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은 안면도 영목항에서 아무 때나 연결해주는 다리로 건너왔다. 배를 타고 돌면 30분은 걸려야 했지만 채 5분도 안 걸려 섬에 닿았다. 막상 와보니 편하고 좋았다. 자동차로 구경하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다녀도 시계를 보며 배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도 된다. 긴장감보다 안정감이 감싼다.


20년 넘게 산 부부에게는 어떤 방법이 '섬' 즐기기에 맞는 걸까. 멀찍이 떨어져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할까. 채 몇 분도 안 되는 거리이니 늘 붙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맘껏 누리면 될까. 어떤 방법이면 어때. 원산도는 화해하기 좋은 섬이다. 낮 동안 선착장에서의 낚시는 꽝이었다. 신비의 섬이라는 명칭과 풍부한 어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남편은 성과가 없었다. 아니 우럭과 주꾸미, 고등어 새끼가 잡혀서 놓아주었고, 박하지를 잡았는데 몇 마리가 전부였다. 날씨도 받쳐 주지 않았다. 높은 바람과 거기에 비까지 왔다. 남편에게는 핑곗거리가 생긴 셈인가.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언제 우리가 싸웠던가' 웃어 버렸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오봉산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뒤로 오봉산이 보인다. 다섯 형제가 어깨동무를 한 것 같다는 낮은 산이다. 오봉산 해변은 백사장을 따라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서 텐트를 어느 곳에 쳐도 햇빛을 막을 수 있다. 어느 곳이든 명당이다. 전기 사용이 안 되고, 모래가 섞인 흙바닥이니 깨끗하고 깔끔함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캠퍼들에게는 비 인기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딱 알맞은 장소다.


캠핑장에서는 밤이 일찍 찾아온다. 저녁을 먹고 치운후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맥주 한 캔씩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예전엔 여름 내내 쑥과 익모초 등 여러 풀을 뜯어다가 모깃불로 사용했어. 마당 평상 위에서 감자, 옥수수 먹으며 여름에서 초가을 이맘때의 날씨까지 마당에서 지냈지."

"마당에 평상이 있었어?"

"내가 열한두 살 때 만든 거야. 동네에 목재소가 있었는데 자투리 나무를 가져다가 평상을 만들었어. 동네 어른들이 그 평상으로 낮에도 밤에도 모였는데 나 칭찬 많이 받았다"



경상도 예천의 산골짜기 시골에서 열한두 살 남자아이는 일찍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평상시 말이 없는 경상도 사나이는 캠핑 나온 들살이 때는 가끔 어린 시절 힘들기만 했던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

"한밤중 한두 개의 간식이 떨어지면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봤어. 오늘도 하늘에 별이 많지만 그때도 쏟아질 것 같았거든"

"별 보고 무슨 생각했어?"

"그냥 뭐, 산에 나무하러 가기 싫다. 소밥 주기 싫다. 논에 풀 메기 싫다... 그런 생각?"

가난이 뭔지도 모를 어린 시절부터 몸에 베인 노동을 해야 했던 그였다. 어린 소년은 그저 아침에 일하지 않고 학교 갈 수 있기를, 학교 다녀온 후 나무하러 산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꿈꾸었다고.


동네에서 소문난 한량이었던 아버지 덕에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소년을 가끔 캠핑하는 중에 만난다. 불쑥 튀어나온 그의 힘든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남편의 머릴 쓰다듬어 준다. 콘크리트 아스팔트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나오지 않는 말들을 그나마 털어놓는다. 남편에게 이제는 유년시절 기억이 늘 아픔이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들살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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