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스팸) 전화로 경험한 영업의 심리학
며칠 전, 한 통의 영업 전화로 재미있는 심리학을 체험했다.
사업자 등록을 한 이후로 하루에 다섯 통 이상의 광고, 대출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야 아무것도 모르고 전화를 받았지만, 이제는 전화번호나 걸려 오는 시간대만 봐도 영업 전화겠거니 하고 무시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일본에서 영업직이었고, 전화영업의 경험도 있어서 고생이 많구나 하며 살포시 차단을 누른다.
보통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다 무시하면 된다. 중요한 전화라면 두세 번 더 걸려 오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은 카톡으로 연락하는 시대다. 그러나 알면서도 사업 초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르는 번호라도 받아 보게 된다. 혹시나 거래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심리를 아는 영업 사원이라면, 회사 전화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전화한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렇게 받은 한 통의 전화로 하마터면 150만 원을 결제할 뻔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걸려 온 전화가 스팸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구글에 전화번호를 검색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더 콜'이라는 전화번호부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스팸인지 아닌지 평가를 해두었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보니, 전화가 오면 그냥 바로 검색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스팸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나면 다시 집중하기도 쉽다.
http://www.thecall.co.kr/bbs/board.php?bo_table=phone
내가 받은 전화는 스마트 스토어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로부터였다. 영락없이 영업 전화. 글로 쓰거나 읽으면 단순해서 누가 속을까 싶은데, 부끄럽게도 이야기를 듣다가 한 번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대략 두 시간 정도. 미드 멘탈리스트를 보고 심리학에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번 일은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멘탈리스트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지원팀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요즘은 사장님이 아니라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사장님 하면 뭔가 낡은 이미지가 있다(주관입니다). 대표님이라고 하면, 하얀 티셔츠에 파란 재킷을 걸친 IT벤처 CEO 이미지가 있다(굉장히 주관적입니다). 이미지에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 됐든 대표라고 불려서 기분이 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업해서 꿈을 이루겠다고 희망에 가슴을 부풀린 젊은이라면 더더욱 입꼬리가 씰룩 일 수밖에 없다. 전화는 사업가 등록이 끝나고 통신판매 신고까지 끝난 당일에 걸려왔다.
끝이 아니다. 그 기업, 네이버의 이름을 꺼낸다. 뭔가 들어봐야 할 것 같은 향기가 솔솔 난다. 주어를 교묘하게 숨겼을 뿐이지, 완전히 틀린 말을 한 건 또 아니다. 상대방은 확실히 소속 기업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지원팀'의 일원인 것이다.
통신판매업 신고가 끝난 순간 전화를 하는 것은, 정말 네이버에서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등록절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추가적으로 제출해야 할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닌가. 처음 사업 등록을 진행하다 보면 없던 불안과 걱정이 피어난다. 이야기도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절차 확인 전화처럼 물꼬를 튼다. 그 후에 자연스럽게 초보 스토어 대표를 위한 지원 서비스라고 소개하여,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네이버가 추진하는 서비스로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바쁜 네이버가, 굳이 인건비를 들여서 전화로 연락을 한다는 것은 잘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다. 매출도 없는 신생 스토어면 말할 것도 없다.
의심을 해소해주면 확신으로 바뀐다.
요즘 사람들은 똑똑하다. 해외에서 생활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특히 한국사람은 똑똑하다. 그런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 사업처럼 중요한 일일수록 혹시 모를 이야기고 그게 돈 이야기라면 듣게 된다. 그리고 똑똑해서 금방 믿지 않고 다각도로 의심하고 확인한다. 문제는 상대가 그 방면으로는 경험도 지식도 많다는 것이다. 미리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카운터 토크를 준비해둔다. 회사에서 매뉴얼을 만드는 곳도 많다.
의심할 수 있는 요소가 해소된다는 것은, 새로운 의심을 찾기 어렵다는 것과 같다. 아직 믿지는 못하겠는데, 딱히 의심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무서워하고 불안해한다. 빨리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전화 상대가 전문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어설프게 의심했다가는 이렇게 당하는 것이다.
나에게 전화한 업체는 나름의 사력이 있었고, 재능마켓 크○에서 활동도 하고 있었으며, 회사명으로 검색했을 때 기사도 나왔다. 그밖에도 마케팅 이외의 사업도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솔직히 믿을뻔했다. 거의 다 넘어갔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특별한 행운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거의 다 넘어간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나에게 너무 좋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응모했던 이벤트에 단 한 번도 당첨된 적 없는 나에게 하늘이 어떻게 아시고 사업을 시작하는 당일 이런 기회를 주었을까. 일이 너무 잘 풀린다. 그래서 독이다.
내가 지불한 노력에 비해서 돌아오는 가치가 크다면 그것은 독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번에는 노력을 할 시간도 없었다. 정말 행운이다. 그런데, 행운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하나의 사건은 100% 어딘가에서 발생하지만, 나 하나를 주체로 두고 보았을 때 그 확률은 0%에 가깝다. 도전의 횟수가 부족한 나에게 발생할 사건이 아닌 것이다.
그밖에도 파워 셀러 등급 '보장'이라거나, 열심히 함께 '노력할 사람만 대상'이라거나, 지금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다른 후보'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거나한 작은 전략도 총망라되어 있었다. 읽는 순간 알겠지만, 미래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고, 그렇게 확실하면 직접 돈을 벌면 될 일이지 남 좋은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대상자가 수긍할 수 있는 조건과 페널티의 제시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고, 결단을 재촉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을 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케팅에 관련된 전문용어나 지식을 꺼내며, 알고 있는지 확인도 했다. 당신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던 정보를 대량으로 주입하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무너지고 태스크가 범람한다. '이런 것들도 다 잘해야 성공할 수 있어'라는 뉘앙스를 슬쩍 풍겨주면, 더더욱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눈앞의 전문가를 의지하고 싶어 지지 않을까. 다행히도 경영학부 마케팅학과 출신에 흥미로 읽어 온 책들 덕분에 이 부분에서 당하지는 않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1. 기분 좋은 호칭, 말로 좋은 인상을 만든다. (후광효과)
2. 보편적으로 신뢰받고 있는 것의 이름을 빌린다. (영향력의 무기)
3. 서비스를 간단히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다. (의심 해소)
4. 서비스를 상세히 소개하며, 전문지식을 방출한다. (위기 자극)
5. 함께 열심히, 잘만 따라와 주면 수익을 보장해주겠다고 한다. (안심시키기)
6. 결심, 결단, 결제 등을 재촉한다. (클로징)
이외에도 자잘한 스킬이 많았지만, 핵심은 다 적은 것 같다.
글로 쓰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이미 지식으로 알고 있고, 복잡하지도 않은 영업 전략이다. 그런데도 당할뻔했다. 자신의 일로 닥치면 이성적인 판단이 이렇게 어렵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그냥 이런 판단에 약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정말 좋은 업체일 가능성도 있다. 담당자는 친절했고 하는 말이나 서비스 내용은 납득할 수 있었다. 보증금 같은 형태로 150만 원을 선결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거부감을 느꼈을 뿐이지, 정말 매출이 올라서 보증금을 돌려받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바이럴 마케팅을 대표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키워가는 과정에서 이런 영업도 필요하다는 것은 경험한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판단은 자기 몫인 것이다. 충분한 노력이란 존재하지 않고, 노력 여부에 따라 반드시 성공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마땅한 노력 없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선택하고 행동하면 된다.
자기계발식 착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