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근묵자흑이라는데, 나는 흑이 되었을까.

변화는 스스로 주도해야 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다. 집안이나 돈, 지금 당장의 성패가 아니라, 그 친구들이라면 걱정되지 않는다. 사실 당장만 봐도 잘 살고 있다. 의사, 변호사, 사장, 대기업 직원. 인성도 좋아서 항상 배우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이 제일 걱정이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어깨동무하고 '우리 다 잘됐다!' 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해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이제 나만 잘 되면 된다.


사람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준이 맞아야 한다. 연봉이 10억 인 사람이랑 연봉이 3,000인 사람은 관심사도, 화제의 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얼굴을 비출 수 있어도 사이는 조금씩 소원해진다. 실제로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끌리고 편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위치에 맞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커뮤니티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성공학이나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주변 사람을 보라고 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수준이 자신의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자신의 목표로 하는 삶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가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근묵자흑'이 딱 그 소리다. 


때문에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가까이하고 있는 묵은 빛깔 좋고 향도 좋은 묵인 것 같은데, 나는 그런 흑일까 하는 것이다. 직업, 수입 이런 결과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단단함, 깊이가 비슷한 수준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며칠 전 친구와 에어비엔비에서 2박 3일 동안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일본에서 살고 있을 때, 여섯 번은 만나러 와준 정이 깊은 친구다. 7년 가까이 살았으니, 거의 매년 왔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일본에 올 수 있으면 다른 나라도 가고, 일본의 다른 지역도 괜찮을 텐데, 꼭 내가 있는 오사카로 와줬다. 1성급 호텔 이하의 설비를 갖춘 내 방에서 지낸 추억은 아직까지도 좋은 안주가 된다. 


이 친구는 변호사다. 박 씨니까 박변이라고 부르겠다. 올해 1월에 변호사 시험을 치러서 아직 결과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가채점해본 결과 합격 라인은 충분히 넘는다고 한다. 박변이 '내가 아는 건 다 풀었고 실수 안 했으니까 괜찮다'라고 밥 먹으면서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더라. 아, '이게 메타인지라는 거구나'하고 생각했다. 


박변은 온화한 곰 같다. 시기나 질투, 분노 같은 감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잔잔한 물결처럼 보인다. 지인이 삼성에 취직을 하건 SK에 취직을 하건 축하는 하지만 부러워하지 않는다. 돈은 있으면 좋아하지만 큰돈을 바라지도 않는다. 속세에 물들다 못해 속세가 되어버린 나는 그런 박변이 신기하기만 하다. 박변은 우직하기도 하다. 박변이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그때부터 지금이 되기까지 해야 할 일들을 묵묵하고 꾸준하게 해 나간다. 불평도 없다. 


그래도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박변은 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판사랑 검사가 변호사보다 대단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돈도 더 잘 버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란다. 사실 돈은 변호사가 제일 많이 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공부해서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명예욕이 박변의 엔진인 것이다. 그런데 법조인의 세계는 온라인 쇼핑몰처럼 칠전팔기가 어렵다. 시험 성적으로 서류심사를 하면 질타받는 이 시국에도 저쪽 세계는 그게 당연한 거란다. 그래서 계속되는 시험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그대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다들 독을 품고,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다. 


박변은 온화한 곰이 아니었다. 굶주린 불곰이었다. 부러운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욕심을 내는 방향과 대상이 뚜렷하여 그 이외에는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자신보다 어린데 성적을 더 잘 받는 사람이 있으면 증오감에 밤잠을 못 잔다고 하더라. 공부는 정말 치열하게 한다. 두통약을 씹어 먹고 손가락 관절이랑 허리가 아파서 파스를 달고 살며, 모의고사 전에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구역질이 나서 밥도 잘 안 먹는다고 한다. 박변은 변호사 시험에서 마킹을 실수해,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중요한 시험에서는 마킹 때마다 손이 떨려 미칠 지경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 길을 걷고 싶단다. 박변 눈에는 오로지 법조인이 빛나 보인다. 다 흑백인데 변호사 판사는 강렬한 붉은 색인 것이다. 왜 다른 사람들이 이 멋진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단다.    


멋지다.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의 삶에 반했다. 나는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봤을까. 내 삶에도 역경은 있었고 극복해온 문제도 있다. 그 순간마다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노력한다는 기준이 너무나도 달랐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고 있다. 노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노력하고 있거나 좌절해서 노력하기가 무서운 사람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노력의 기준치가 다르다. 누군가는 6시간 공부하고 만족하지만, 또 누군가는 16시간씩 해도 항상 부족하다. 기준에서 이미 성패가 갈린다. 



너도 열심히 사는 것 같더라.


박변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저만큼 치열하게 살았다는 확신이 없다. 아직도 스스로의 감정과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를 보낼 때도 많다. 늦잠도 자고,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이 친구 눈에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 그렇게 비쳤나 보다. 사람은 보이는 부분을 100%로 보는 경향이 있으니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냐.. 사실은 그렇지 않아.'. 그리고 입으로 이렇게 말한다. '더 열심히 해야지. 서로 힘내자.'. 박변이라는 '묵'이 내 옷에 튀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저마다의 기준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기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 기준을 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외부환경이 중요하다. 묵을 가까이하라는 이유가 이것이다. 저런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나면 내 삶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환경이 나를 바꿔주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 흑이 되지 못했다. 환경은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어느 날 툭, 묵이 옷에 한 방울 떨어지듯 환경은 그저 이런 것도 있다며 자극을 건넨다. 그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대로 세탁기에 넣어버리면 묵을 가까이 해도 우리는 항상 깔끔해져 버린다. 변화는 스스로 주도했을 때만 가능하다. 묵을 가까이했다면, 흑이 될 노력을 해야 한다.   




또 다른 관점과 의견, 조언 듣고 싶습니다!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하마터면 150만 원 결제할뻔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