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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26. 2020

시계 이야기


시계

시계탑 아래서 만나자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역전 광장 시계탑은 곧잘 약속장소로 잡혔다. 친구들이 다 모이면 깔깔거리며 거리를 배회하거나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손목시계는 없더라도 집집마다 마루에 괘종시계 하나쯤은 내다 걸던 그때, 깊은 밤 종이 울리는 소리를 헤며 시간을 가늠하다가 스르르 잠속에 빠져들거나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댕 댕 댕’ 종소리를 내던 운치는 사라지고 세월 따라 시계는 모습을 바꾸었다. 이 집 저 집 집안 분위기를 생각해서 뻐꾸기시계가 걸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뻐꾸기들이 매시간 문을 열고 나와 ‘뻐꾹뻐꾹’ 울다 들어갔다. 산속에 든 듯 고요하고 정신이 투명해졌다. 뻐꾸기시계가 밀려나고 그 뒤에 전자시계가 벽을 장식했다.

출근 시간에 쫓길 때였다. 탁상시계는 알람으로 다섯 시에 나를 깨웠다. 밥을 안치고 세탁기가 돌아갈 동안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며 연신 시계를 흘깃거렸다. 눈에 아직 잠이 붙어있는 아이들을 씻기고 준비물과 가방을 챙겼다. 밥술을 뜨는 동안에도 다그치며 등 떠밀어 학교에 보내고 나면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 정신이 없었다. 다시 서둘러 집을 나서던 날의 허둥거림들. 이제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아이들을 보며 그동안 시계가 돌아간 거리를 짚어보니 참 아득하다. 


늦은 밤 혼자 책을 읽고 있으면 ‘째깍째깍’ 시계의 숨소리가 들린다. 낮에는 다른 소음들에 묻혀 있다가 들려오는 소리.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돌고 있었구나. 고요하면 비로소 들려오는 소리는 그동안 달력을 넘기고 해를 넘기며 나를 조금씩 시들어가게 했다. 깨어 있을 때는 주파수가 다른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가 가끔씩 일깨우는 시계소리.

째깍거리는 소리를 의식하자 그만 부담스러워진다. 곁에서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듯 채근하는 것 같다. 시계가 진화되어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입으로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TV 속 광고가 잘 대변한다. 

“더 빠른 속도는 더 많은 시간이 될 테니까요.” 

초고속 연결망을 자랑하는 통신사들은 자꾸만 질주를 외쳐댄다. 빨리하면 시간이 많아질까? ‘빨리빨리‘라는 말을 곧잘 뱉어낼 만큼 조급증은 이미 체질화 되어 있다. 빨리 일을 한 만큼 또 다른 일거리가 빈틈을 다시 채우기 때문에 더 많이 바빠질 뿐인데. 


시계도 없는 자연은 어떻게 때를 알고 찾아오는지. 저마다 다른 리듬의 생체시계로 꽃이 피고 나무들이 자란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어머니들은 분꽃이 피면 저녁쌀을 안쳤다. 꽃이 시계를 대신한 셈이다. 자연은 사람들처럼 과속하지 않는다. 

시계의 숫자판 뒷면은 정밀하다. 시곗바늘 뒤에서 아주 작은 톱니들끼리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내는 째깍거림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시계가 움직이지 않을 때 죽은 시계를 살리느라 태엽을 감는 일을 시계 밥을 준다고 했다. 시간을 알려주던 요긴한 시계의 자리를 지금은 휴대폰이 차지했다. 컴퓨터를 켜도, 지하철 전광판에 붉은 글씨로, 어디서나 시간을 알려주는 것들은 그다지 요긴함을 모를 정도로 흔하다. 다만 결혼 예물이나 액세서리가 된 시계는 고가품으로 차별화되었다.


하루가 시계에 맞춰 편집된다. 종일 애를 쓰다가 자리에 누웠을 때, 시곗바늘이 건너간 자리가 촘촘하면 피로마저도 흡족하다. 하루 치의 노고가 보람이 되는 그런 날은 미래에 대한 꿈을 꿀 때이다. 쳇바퀴를 돌듯 반복되는 삶은 지루하다. 자정의 갈림길에서 어제는 오늘에게 시간을 물려주고 도돌이표처럼 돌고 돈다. 손목에 붙들린 시간은 느슨하거나 촉박하거나 정작 시계와는 무관하다.


오늘 아침 숲에서 상수리나무에 기대어 본다. 꺼칠한 감촉을 어루만지며 풍경을 마음에 받아 적는다. 저마다 다른 생체시간으로 이 계절에 얼굴을 내미는 것들. 초록의 잎과 꽃들에게도 안부를 물으며 눈인사를 건넨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난 새의 길. 나의 길은 시계 속에 있는가. 쉬지 않고 째깍거리며 하루의 태엽이 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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