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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an 13. 2022

위로를 건네는 손

-위로를 건네는 손




송복련




손은 거짓말을 못한다. 볼품없는 손에 매니큐어를 발라보았지만 잠시 기분전환만 되었을 뿐이다. 살아온 날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불거진 힘줄과 반점들은 감추려고 했으나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한동안 손에 주목햇던 화가의 그림에서 위로를 받는다<감자먹는 사람들>에서 고흐가 나타내고 싶었던 건 손이다. 램프 불빛 아래서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는 농부의 손은 하나같이 거칠고 손마디가 굵다. 누에넨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이 작품은 그루트 가족을 모델로 그린 것인데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족들을 한 명씩 따로따로 40번 이상 그리면서 인물을 탐구하였다, 마치 자신이 농부가 된 것처럼 그들과 일과를 같이 하며 그들을 화폭에 담았다. 손으로 하는 노동과 그 노동으로 정직하게 거두어들인 양식을 그대로 전달하기를 원했다. 이는 ‘인간의 실존을 자극하고 떠올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예술작품일 수 있다‘고 한 하이데거의 말처럼 고흐의 <구두 한 켤레>와도 일맥상통한다.

고흐가 태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그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된다.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을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황금색과 잘 어울릴 것이다. 혹은 짙게 그늘진 잘 익은 곡물 색의 벽지를 바른 벽 위에 걸어놓아도 잘 어울릴 것이다. 램프가 하얀 벽 위로 뿜어내는 열기와 불빛은 관찰자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 장면을 황금색 불빛 속에서 보게 된다.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말아라.” 여동생 빌헬미나에게도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감자를 먹는 농부를 그린 그림이 결국 내 그림들 가운데 가장 최고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가장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이라고 여겼던 고흐의 자부심을 알 수 있다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을 그린 또 다른 화가도 있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다. 친구의 우정에 답하는 그림으로 뒤러를 위해 헌신했던 친구의 손에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뒤러에겐 젊은 날 화가가 되기 위해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가난해서 그림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들은 둘이 번갈아 육체노동을 하여 돈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먼저 뒤러의 친구가 일한 돈으로 뒤러는 열심히 그림공부를 했고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친구에게 이제 교대하고 그림공부를 하라고 하자 거칠고 힘줄이 불거진 손을 보여주며 예술을 할 수 있는 손이 아니라고 했다. “자네의 손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네. 세계의 제일 아름다운 작품이 바로 내 눈앞에 있네. 그건 자네의 그 뒤틀어진 기도하는 손이네" 뒤러가 친구의 손을 그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이 그림을 남겼다는 우정이 어린 이야기는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기도하는 손>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손처럼 위로가 되어 주었다.

화가의 식탁에 놓인 감자를 본다. ‘마디 굵은 우리 식구들의 손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 소리들이 꿈속에서도 들리는 것 같다’는 김선우의 시가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땀흘려 농사짓던 아버지들의 모습이 삽화처럼 떠오른다. 쪼그라든 감자에 촉을 도려내어 심던 계절도 지나 보리가 누릿누릿해지면 감자포기도 누렇게 시들시들 무너지기 시작한다. 밭두둑이 쩍쩍 갈라지도록 씨알이 굵어 가는 감자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끝나간다.


하지 무렵 소쿠리를 끼고 감자밭으로 달려갔다. 흰 꽃과 보라 꽃으로 감자의 색깔을 짐작하며 호미로 흙을 파헤치면 크고 작은 씨알들이 쏟아지던 날의 충만감을 잊을 수 없다. 그날은 감자를 푸짐하게 삶아 평상에 앉아 먹는 날이다. 간식이 따로 없던 시절 감자는 궁금한 입을 달래기 좋았다. 지금도 하지가 다가오면 햇감자가 먹고 싶다. 찐 감자를 둘러싸고 식구들이 앉는다. 껍질이 툭툭 터져 속살이 분처럼 하얗게 일어나는 뜨거운 감자를 양손으로 옮겨가면서 베어 물면 설탕처럼 사르르 입 안에 녹아드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고흐는 자주 밀레의 그림들을 보고 그렸는데 <키질하는 사람〉과 〈씨 뿌리는 사람〉,〈이삭 줍는 여인들〉,〈양치기 소녀〉와 〈낮잠>을 보며 두 화가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밀레의 농촌 풍경과 농부들은 저의 멍든 가슴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라고 했듯이 감자먹는 사람들 또한 그런 것이리라.


씨감자의 눈에서 나온 탯줄로 길러지는 감자는 두 토막 세 토막 잘려진 몸으로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다. 여름날 마루 밑에 쌓여 있던 감자들이 햇빛을 받으면 아릿한 맛이 났다. 감자의 촉에도 독이 있지만 그건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내는 농부의 손과 닮아서 밭두둑에서 씨알 굵은 감자들을 오지게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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